/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서대문구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살고 있는 노모씨(25)는 15년이 넘는 지난 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노씨는 "홀로 어머니를 돌봐야 했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며 "하지만 누구에도 이 상황을 말할 수 없었고, 말하더라도 진정으로 이해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뗐다. 때론 어머니의 병환이 인생의 약점이 될 것이란 생각에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병을 지켜보는 것조차 힘든데 숨 돌릴 곳조차 없었다"고도 털어놨다.
노씨와 같이 늙고 병든 부모나 조부모를 홀로 부양하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 부른다. 지난해 대구의 20대 청년이 홀로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다 돌봄을 포기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저학년이던 시절엔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며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희망도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가 시작될 무렵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됐고, 의심과 망상 증세까지 나타났다. 노씨는 학업과 동시에 어머니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가 나왔지만 주 수입원이 없다보니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렸다. 학교에서 근로일을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생활을 이어갔다.
다행히 지난해 서대문구가 '영 케어러 발굴 및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도움받을 곳이 생겼다. 지원금을 받아 청소기 등을 구매했고, 반찬 지원도 받고 있다. 노씨는 "무엇보다 '영 케어러'라는 용어로 내 어려움을 규정하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지원사업이 시작된 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노씨는 "금전 지원만으로는 삶의 구조적인 면이 바뀌진 않는다"며 "제 경우엔 어머니의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삶이 가족을 돌보는 데에만 침식되지 않도록 거주 지원이나 환자 상담 등 가족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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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 케어러가) 새롭게 발굴된 집단인 만큼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 케어러는 학업과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시기가 맞물린 만큼 생애주기 한가운데서 좌절하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경제적 지원을 포함해 가족을 돌보느라 생긴 학업·경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지원책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