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또 한 번 이러한 바람을 일으킬만한 분야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이들은, 비록 쉽지 않지만 한국의 ‘예능’을 꼽는다. ‘K-예능’이 언젠가 전 세계 웃음의 기준이 되는 날, 이러한 날을 바라보며 진군하는 연출자가 있다.
프로그램의 틀은 단순하다. 아무런 정보가 없이 특정 테마로 꾸며진 ‘존(ZONE)’에 들어가는 멤버들은 4시간 동안 그곳에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 시간 안에 정해진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각자 주어진 스마트워치에 있는 ‘포기’ 버튼을 세 명이 동시에 누르지 않는 이상에는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 프로그램은 1회 ‘아이 존(EYE ZONE)’을 시작으로 2회 ‘워터 존(WATER ZONE)’, 3회 ‘바이러스 존(VIRUS ZONE)’, 4회 ‘세이프티 존(SAFETY ZONE)’, 5회 ‘브레인 존(BRAIN ZONE)’을 거쳐 6회 ‘머니 존(MONEY ZONE)’을 공개했다. 곧 ‘불’과 ‘전쟁’을 주제로 한 회차까지 포함해 8회를 공개한다.

조효진PD의 프로그램은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연출자가 만든 예능이 세계로 나아가기 쉬워진 OTT 시대가 되기 전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많이 끌었다. ‘런닝맨’의 경우에는 동남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이광수의 경우 ‘런닝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PD는 OTT 시대가 움트던 2018년부터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 시리즈와 팬을 찾아가는 여행 예능 ‘투게더’,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뤄 각종 미션과 반전을 도모하는 ‘신세계로부터’를 연출했다. 국내 예능 PD 중에서는 OTT의 시대 그리고 세계화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한 연출자 중 하나다.
그의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순한 게임 위주의 예능으로 문화권을 넘나드는 확장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X맨’도 사실 캐릭터 버라이어티로 발전했지만 그 틀은 두 팀의 게임 대결이었고, ‘패밀리가 떴다’에서도 수시로 게임이 등장했다. ‘런닝맨’은 아예 야외 게임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등에 붙은 이름표를 때면 탈락’이라는 단순한 규칙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번 ‘더 존’의 경우도 버티기 자체가 콘셉트이므로 복잡하지 않은 형식을 갖고 있다.
사실 ‘K-예능’의 세계화를 언급하려 하면 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사실이었다. 웃음은 눈물이나 분노, 감동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감정이다.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문화권의 코드를 맞추기도 해야 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K-예능은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려면 막대한 양의 말자막이 필요하다. 이는 타국인들에게는 해독의 어려움을 줘 큰 장애물이 된다. ‘더 존’이 상황자막 조금을 제외하고는 자막을 극도로 줄인 것도 어쩌면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조효진PD와 ‘더 존’은 이렇게 예능의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의 프로젝트를 넘어가며 교훈으로 체득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삼고 있다. 비록 예능이나 웃음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공신력을 인정받는 시상식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오징어 게임’처럼 세계적인 OTT를 휩쓰는 한국 예능이 하나쯤은 나오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
‘더 존’과 조효진PD의 도전은 이러한 ‘전인미답’의 경지를 위한 단계인 것이다. 코미디의 경우에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무언극 즉 넌버벌(Non-Verbal)을 위주로 조금씩 시장을 넓히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OTT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예능을,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한 방향으로 달려온 조효진PD와 그의 스태프들에게 조금씩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