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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현이 미워질수록 알아야 할 사실들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2.09.2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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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남지현, 사진제공=tvN'작은 아씨들' 남지현, 사진제공=tvN




"가난한 건 괜찮아. 그 상태로 이렇게 살아왔잖아. 그런데 가난해서 도둑이 되는 건 싫어."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극본 정서경, 연출 김희원)에서 세자매 중 둘째이자 방송국 기자였던 오인경(남지현)은 언니 오인주(김고은)가 비자금 20억원을 얼떨결에 손에 넣자 이렇게 말한다. 급기야는 "신고하겠다"고 말하며 강하게 경고한다.

인경에게는 정의 한 스푼이 더해진 신념이 가난마저 지배한,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함이 존재한다. 때문에 인경은 '작은 아씨들'의 숨은 빌런으로 불린다. 그가 주장하는 신념들은 타인의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20억원은 세자매를 개미가 들끓는 집에서 탈출하게 해줄 수 있는 구원이 될 수 있었고, 부자이지만 지독하게 구는 고모할머니(김미숙)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경은 인주에게 검은돈을 쓰는 게 "죽는 거 보다 더 싫"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뱉은 말의 의미는 그 돈을 포기해야 하는 인주의 희생이 뒤따른다.



가난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도둑 누명을 써왔던 인경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방송국 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가난해서 부모가 아이와 동반 자살을 하는 사건들을 보도할 때 그는 카메라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는 사건을 보도할 때 감정을 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음에도. 바로 자신의 가난한 가족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알코올 중독자로도 만들었다. 기자를 하는 내내 인경은 해서는 안 될 일을 반복해왔지만, 잘못을 판단 짓는 기준에서 자신은 제외했다. 그래서 인주는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자신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정의감에만 사로잡혀 있고, 이 지독한 신념이 누군가가 죽거나 곤란해지는 피해를 낳았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 남지현, 사진제공=tvN'작은 아씨들' 남지현, 사진제공=tvN
이와 동시에 인경은 가난했지만 머리 하나는 타고났고, 때문에 대부업을 하던 고모할머니의 눈에 들어 궁전같은 집에서 잠시 키워졌다.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완에도 눈이 밝으며, 조금만 다른 선택을 하면 세자매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인경은 그런 선택은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가난에 머무르며, 그 가난으로 자신의 신념이 보다 정당성을 찾도록 하는데 이용한다.


'작은 아씨들'에는 돈과 권력이 곧 행복이라 믿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자금을 빼돌리려는 친언니 인주와 부잣집에 기생해서 그림을 그리는 친동생 인혜(박지후)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마다 딴죽을 걸던 선배 기자도 있다. 비단 '작은 아씨들'뿐 아니라, 많은 드라마가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이러한 돈의 논리를 반영한다. 돈, 참 비참하리만큼 현실적인 주제 앞에 유일하게 이상을 파고드는 건 인경만이 가진 특별함이다. 그래서 때론 그 모습이 이상하거나 미워보일 수 있겠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빛과 어둠, 겉과 속처럼 인간의 이면을 비춰주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걸. 그리고 인경이 있어 '작은 아씨들'이 보다 극적인 재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도.

반드시 알아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런 인경을 연기한 남지현의 존재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3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쌓아온 연기 내공은, 인경에게 완벽한 숨을 불어넣는다. '작은 아씨들'에서 가장 완전무결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몸의 미세한 떨림과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의 디테일은 몰입 그 이상의 경지를 이끈다. 그리고 남지현이 미워질수록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단순히 겉핥기 식의 눈에 머무는 연기는 이같은 잔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남지현의 연기는 정확하게 마음에 머물며 시청자들의 감정까지 동요하게 만든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의도치 않게 빌런이 된 이 웃픈 상황. 놀랍도록 품넓은 배우임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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