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기술 통해 韓 강제징용 피해 파악
-46번 유골, 유가족 DNA와 99.99% 일치

20일 과학계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9년 10일 '타라와 46'번으로 불리던 유골을 한국인 최병연 씨라고 판명했다. 그 이후 한미일 3국이 DNA 분석을 재차 실시했고 모두 해당 유골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도 2020년 유골 봉환을 추진했지만, 키리바시가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해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타라와를 수도로 하는 키리바시는 미국의 하와이와 호주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남태평양 섬나라다. 타라와 전투는 1943년 타라와섬을 강제 점거하던 일본군에 맞서 미군이 상륙작전을 벌였던 전쟁이다. 총 60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추후 DPAA 문건에 따르면 일본군 4500명 중 3000명 이상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도 약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DPAA에서 일하던 한국계 진주연 박사가 이를 알려오면서 2017년 정부도 과거사 조사일환으로 현장 감식과 DNA 분석을 시작했다. 일본도 DNA 분석을 실시했다.
당시 한미일 3국은 아시아계 유해 중 DNA 분석이 가능한 145구의 유해를 삼등분했다. 3국의 데이터를 비교해 이견이 없으면 각국의 데이터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정부도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로 추정되는 유가족 184명의 DNA를 확보해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타라와 46번 유골과 유가족 최금수 씨 DNA가 99.999% 일치한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이를 통해 해당 유골이 고(故) 최병연 씨로 확인됐다. 한미일 3국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고인은 1942년 당시 24살로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타라와에 끌려가 이듬해 전투에서 희생됐다. 현재 두 아들 모두 80대를 넘어선 고령으로 유해 봉환만을 기다리고 있다.
국과수 관계자는 "정부도 국경을 봉쇄한 키리바시와 접촉해 유해 봉환을 계속해서 추진 중"이라면서도 "유가족 DNA를 추가 확보해 한국인 강제징용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와 DNA를 대조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없었다" 日 발뺌…무릎 꿇게 한 DNA 분석가-김응수 국과수 유전자과장 인터뷰 DNA 분석 통해 강제징용 사실 입증


김 과장은 "당시 한미일 3국이 유해의 동일한 부위를 나눠 가져 DNA 분석을 시작했고, 데이터를 비교해 이견이 없으면 각국의 데이터를 인정하기로 했다"며 "46번 유해와 한국인 유가족 간 친자관계를 확인하고 미국과 일본도 이견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일본은 그동안 '강제징용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집했지만, 타라와 46번 유해와 국내 유가족이 99.999% 친족 관계라는 DNA 분석 결과 앞에서는 더이상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첨예한 과거사 관련 갈등을 과학기술 역량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입증한 순간이었다.
김 과장은 "국과수가 과거 강제징용 희생자에 대한 DNA 신원 확인 업무까지 하면 업무가 과중하지 않냐고 묻는 분이 있다"며 "그럴 때마다 해야하는지 또 안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고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강제동원된 희생자에 대한 DNA 분석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관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0일 국과수에 따르면, 지난해 국과수가 소화한 감정 전체 65만1066건 중에서 DNA 분석 건수는 23만2833건(35.8%)으로 집계됐다. 국과수가 수행한 감정 3건 중 1건 이상은 DNA 분석이었던 셈이다.
국과수의 전문 감정 인력 부족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된 난제지만, DNA 감정 분야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1996년 2639건으로 전체 감정건수의 3.4%에 불과했던 DNA 감정의 비중이 25년 만에 10배 이상 불어났기 때문이다. 건수로는 23만여 건에 달한다.
이는 최근 들어 DNA 감정이 폭넓게 활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인·강도·성폭력 등의 강력사건은 물론 절도사건에서도 범죄현장의 증거물에 대한 DNA 감식이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고, 변사·실종자는 물론 아동과 치매노인, 지적장애인 등의 신원확인 역시 DNA 감정은 빠질 수 없다.
우리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인 독립유공자, 6·25 참전용사 등의 후손 찾기 등도 역시 국과수 DNA 현장 인력들의 몫이다. 아울러 각종 범죄현장의 증거물과 구속 피의자 등의 정보 등이 담기는 DNA 데이터베이스의 지속적인 업데이트, 검색, 품질 관리 등 행정 업무 부담도 피할 수 없다. 이달 초 이 DB에만 증거물 16만건, DNA 7만건 등 23만 건의 정보가 수록돼 있다.
그러나 강원도 원주의 국과수 본원을 비롯해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지방연구소 5곳, 제주출장소까지 합쳐도 DNA 분석 역량을 갖춘 전문가는 90명뿐이다. 작년이라면 1인당 연간 약 2600건, 주말·공휴일 등을 제외하면 하루에 전문가 1명이 10건의 DNA를 들여다봐야 하는 셈이다. 특히 인구 과밀화로 과학수사 수요도 덩달아 늘어난 서울·수도권의 인력 부족이 극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직원들도 피로감을 호소한다. 국과수 관계자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실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모두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라고 토로했다. 더욱이 산더미처럼 쌓인 감정 수요 탓에 "제대로 분석물을 들여다 보기 어렵고, 이러다 부정확한 감정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들의 직업적 자존심마저 해칠 수 있는 요소다.
이와관련, 일각에서는 최소한 과거사 관련 피해자의 유해와 유가족의 DNA 신원 확인 업무는 별도기관이 수행토록 하거나 아니면 국과수가 이를 체계적으로 전담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증하는 DNA 분석수요에 대응할 전문인력 증원과 육성 필요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