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지하주택 급증, 노태우 정부 200만호 공급대책 영향 컸다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2.09.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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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인근 빌라촌에서 수방사 35특임대대 소속 장병들이 침수 피해를 입은 반지하주택을 찾아 대민지원을 하고 있다. 2022.08.10.지난달 10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인근 빌라촌에서 수방사 35특임대대 소속 장병들이 침수 피해를 입은 반지하주택을 찾아 대민지원을 하고 있다. 2022.08.10.


서울에 반지하주택 급증세는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200만호 공급대책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시 주택 매매, 전세 가격이 치솟자 가격 안정을 위해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에 대규모 공급을 추진했고, 동시에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에 다가구를 허용하고 공동주택 지하층 기준을 완화하는 등 정책을 병행한 것이 반지하주택 급증세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지하주택 20만 호 중 60%인 12만호가 1986년~1995년 사용승인
15일 서울연구원이 서울 건축물대장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말 기준 시내 지하·반지하주택 규모는 20만2741호로 추정된다. 이는 시내 전체 가구(404만6799가구)의 5% 수준이다.



주택 유형별로 다가구주택 8만303호(39.6%) 단독주택 7만3581호(36.3%) 다세대주택 4만2130호(20.8%) 다중주택 6727호(3.3%) 순으로 집계됐다.

서울 지하·반지하주택의 80%가 넘는 16만3131호가 1995년 이전에 사용 승인받은 노후주택으로 파악된다. 특히 1986년~1995년 10년간 전체 약 60%인 12만430호가 사용이 승인됐다. 이 기간 시내 지하·반지하 주택 준공 물량이 집중됐다는 의미다.



/자료=서울연구원/자료=서울연구원
연구원은 이 같은 현상이 당시 제도 변화와 정부 정책 효과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우선 1984년 건축법이 개정돼 지하층 주거용 건물 건축이 쉬워졌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주택 매매, 전세 가격이 급등하자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전국 주택 200만호 공급정책도 영향을 줬다. 정부는 당시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택지개발과 동시에 서울 시내 주택 공급물량을 늘리기 위해 1990년 다가구주택을 합법화하고 공동주택 지하층 건축기준을 완화했다.

이때부터 시내 지하·반지하 주택 건축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당시 주택공급이 늘어 시장은 점차 안정화됐지만 침수, 화재 등 각종 재난 리스크에 노출된 열악한 주거 유형도 늘어난 일부 부작용도 있었다는 의미다.


반지하주택 가장 많은 자치구는 관악구, 노후도는 금천구가 가장 높아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 중 지하·반지하주택이 가장 많은 곳은 관악구로 1만6265호에 달한다. 이어 강북구(1만4121호) 중랑구(1만2793호) 성북구(1만2604호) 은평구(1만2499호) 광진구(1만1165호) 동작구(1만553호) 순으로 많다.

노후 지하·반지하주택 비중 높은 곳은 금천구(57.2%) 강동구(53.4%) 성동구(49.6%) 은평구(48.4%) 광진구(47.5%)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관악구(32.7%) 강남구(33.5%) 강서구(35.3%) 송파구(39.3%) 등은 상대적으로 노후 지하·반지하주택 비율이 낮았다.



서울시는 지난달 시내 집중호우에 따른 반지하주택 거주자 인명, 재산 피해를 고려해 향후 20년간 점진적으로 지하·반지하주택을 없애 나가는 '일몰제'를 결정했다. 신규 건축을 금지하고,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통해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취지다.

/자료=서울연구원/자료=서울연구원
기존 지하·반지하주택 거주자들의 이주 수요는 현재 180~190% 용적률로 지어진 노후 공공임대 아파트를 300% 중후반대로 높인 고밀개발 방식의 재건축을 통해 추가 확보한 물량으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거실태 조사를 거쳐 연내 지하·반지하주택 관련 종합대책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반지하주택 외에도 쪽방, 옥탑방, 고시원 등 주거 취약층을 아우르는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른바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로 불리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게 소신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지하, 옥탑방, 고시원 중 제일 먼저 줄여나가야 하는 것은 반지하가 선순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14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이종배 서울시의원의 시정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9.15.오세훈 서울시장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14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이종배 서울시의원의 시정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9.15.
반지하주택 일몰제 논란에 오세훈 "억지로 퇴출아냐…정비사업 계속하면 10년간 15만가구 자연 멸실"
오 시장은 지난달 반지하주택 일몰제 발표 이후 언론과 시장에서 정책 방향을 오해한다는 견해도 나타냈다. 그는 이날 시의회 시정질의에서 "저는 억지로 (반지하주택을) 금지하거나 퇴출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그렇게 표현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오 시장은 "지금 하는 정책(재개발, 재건축 촉진)만 계속해도 앞으로 10년간 20만가구 반지하주택 중 15만가구는 자연스럽게 멸실될 것"이라며 "서울에 오래된 임대주택을 재건축하면 20만가구 정도 늘어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하에서 지상으로 주거 형태가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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