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도 모태펀드도 '뚝'…벼랑끝 스타트업 선택지는 단 둘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최태범 기자 2022.09.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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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식어가는 제2벤처붐(下)

편집자주 글로벌 금리인상과 경기부진 등으로 벤처투지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돈맥경화가 심화하면서 실탄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폐업하거나 매물로 나오고 있는 것.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들조차 성장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빠르게 식어가는 제2 벤처붐을 들여다봤다.

'마중물' 모태펀드마저 반의반 토막...스타트업 자금난 길어지나
투자도 모태펀드도 '뚝'…벼랑끝 스타트업 선택지는 단 둘


금리인상과 경기침체로 스타트업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까지 줄어들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벤처투자가 줄어든 상태에서 투자실탄 역할을 해주는 모태펀드가 축소되면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유치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14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모태펀드 출자예산은 3135억원이 편성됐다. 올해보다 39.8%, 지난해보다는 70.7% 감소한 규모다. 모태펀드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2019년 2900억원에서 2020년 1조원, 2021년 1조700억원으로 늘어났다가 올해(5200억원)부터 2년 연속 감소세다. 중기부는 "벤처펀드의 모태펀드 의존도를 줄여 민간 주도 시장으로 전환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시기가 이르다고 지적한다. 민간 유동성이 위축된 상황에서 정책 재원까지 축소될 경우 스타트업의 자금난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어서다. 이미 올해 2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1조8259억원으로 전기 대비 16.3%, 전년 동기대비 4.2% 감소한 상태다.



특히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모태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축소 속도가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결성된 벤처펀드에서 모태펀드 출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를 기록했다. 지난해 유동성 증가로 비중이 17.3%까지 감소했지만 여전히 금융기관, 연금·공제회, 등 벤처펀드 출자자 중 단일 주체로서 가장 높은 비중이다.

■ "모태펀드 줄이면 민간출자도 같이 줄어…경기위축기, 투자 늘려야"

투자도 모태펀드도 '뚝'…벼랑끝 스타트업 선택지는 단 둘
중기부는 최근 늘어난 민간 출자가 모태펀드 감소분을 상쇄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업계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모태펀드 감소가 금융권 등 민간 영역의 출자까지 연달아 감소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모태펀드 감소가 민간 출자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곽기현 한국벤처투자 연구위원에 따르면 모태펀드 출자액이 842억원 이상 증가하거나 감소할 경우 금융권도 같은 방향으로 출자규모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 연구위원은 "특히 금융권의 경우 다른 민간 부문에 비해 보수적인 투자행태를 가진다"며 "모태펀드와 같은 대형 공공 출자자에 민감하게 반응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당장 모태펀드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벤처캐피탈(VC)부터 영향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VC 관계자는 "이미 민간 출자자들에게 출자받는 게 상당히 어려워진 분위기"라며 "모태펀드 등 앵커 출자자들의 출자까지 줄어들면 당장 중소형 VC들은 펀드 결성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벤처투자 시장이 대형 VC들 위주로 재편될 경우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모태펀드가 스타트업에 흘러가 소진되는 예산이 아니라 미래에 회수되는 재원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경기위축기에 투자되는 재원의 경우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벤처투자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결성된 벤처펀드의 2021년 6월말 기준 투자배수를 조사한 결과 성과가 가장 좋았던 해는 2008년(3.58배)이었다. 1억원을 투자한 펀드라면 3억58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의미다. 이어 2013년(2.26배), 2014년(2.22배) 순이었다. 모두 글로벌금융위기와 유로존위기 등 경기침체기에 결성된 펀드다.

VC관계자는 "경기 하강기 때에는 적절한 가격으로 투자를 할 수 있어 펀드 수익률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며 "정부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도 현 시점의 투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버하거나 혹은 팔리거나…벼랑 끝 내몰린 스타트업 선택지
투자도 모태펀드도 '뚝'…벼랑끝 스타트업 선택지는 단 둘
투자 혹한기 속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스타트업의 선택지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런웨이(법인통장 잔고가 0원이 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는 기간)'를 확보하며 버티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M&A)하거나다.

당초 희망했던 기업가치(Valuation)는 아니지만 이를 감수하며 투자를 유치하고 철저한 자금 관리와 인력 감축 등으로 런웨이를 늘리는 스타트업이 있는가 하면 투자유치에 실패해 매각을 검토하는 곳들도 많다.

14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왓챠는 박태훈 대표의 지분(구주) 매각을 비롯한 M&A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회사 인력 200여명 중 100명 이상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왓챠는 올해 상반기 1000억원 규모의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 를 추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생존형 M&A'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남게 됐다. 잠재적 원매자로는 SKT의 웨이브, 쿠팡플레이, 리디 등이 거론된다.

쿠팡·위메프와 함께 3대 소셜커머스로 꼽히며 시장을 선도해온 티몬의 경우 최근 글로벌 역직구 플랫폼 큐텐(Qoo10)에 인수됐다. 기업가치가 2015년 8600억원의 4분의 1 수준인 2000억원대로 떨어졌다.

티몬은 강점이었던 여행과 티켓 부문이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지면서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난해 매출 1290억원으로 전년대비 14.6% 줄었고 영업적자는 631억원에서 760억원으로 늘었다. 실적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결국 생존형 M&A를 택했다.

■ 스타트업간 M&A 늘어난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이 같은 위기 국면 속에서 스타트업 간 M&A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금흐름이 양호한 선두 스타트업이 경쟁 열위에 있는 동종업계 스타트업을 인수할 최상의 타이밍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 민관협력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7월 총 79곳의 스타트업이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 됐으며, 이중 절반은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대출 비교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핀다는 상권 분석 스타트업 오픈업을 인수하며 소상공인 맞춤형 대출 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했다.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중개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명함 및 커리어 관리 플랫폼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는 지난 4월 전문가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 이안손앤컴퍼니를 시작으로 신입·인턴 채용 전문 플랫폼 슈퍼루키, 자소설닷컴을 잇따라 인수하며 채용시장 '공룡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금환급 서비스 '삼쩜삼' 운영사 자비스앤빌런즈는 아르바이트 급여·일정 관리 앱 '하우머치'를 인수하며 긱워커 잡매칭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영상통화 기술을 보유한 스무디를 끌어안아 전문인력을 보강했다.

VC 업계 관계자는 "업종 1~2위 스타트업들이 동종 업계 스타트업을 흡수하며 시장 우위를 가져가고 있다. M&A를 통해 실력 있는 개발자 등 인재를 영입하고 신사업 기회도 창출하려는 전략"이라며 "위기를 겪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M&A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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