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시기가 이르다고 지적한다. 민간 유동성이 위축된 상황에서 정책 재원까지 축소될 경우 스타트업의 자금난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어서다. 이미 올해 2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1조8259억원으로 전기 대비 16.3%, 전년 동기대비 4.2% 감소한 상태다.
■ "모태펀드 줄이면 민간출자도 같이 줄어…경기위축기, 투자 늘려야"
실제 모태펀드 감소가 민간 출자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곽기현 한국벤처투자 연구위원에 따르면 모태펀드 출자액이 842억원 이상 증가하거나 감소할 경우 금융권도 같은 방향으로 출자규모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 연구위원은 "특히 금융권의 경우 다른 민간 부문에 비해 보수적인 투자행태를 가진다"며 "모태펀드와 같은 대형 공공 출자자에 민감하게 반응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당장 모태펀드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벤처캐피탈(VC)부터 영향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VC 관계자는 "이미 민간 출자자들에게 출자받는 게 상당히 어려워진 분위기"라며 "모태펀드 등 앵커 출자자들의 출자까지 줄어들면 당장 중소형 VC들은 펀드 결성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벤처투자 시장이 대형 VC들 위주로 재편될 경우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모태펀드가 스타트업에 흘러가 소진되는 예산이 아니라 미래에 회수되는 재원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경기위축기에 투자되는 재원의 경우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벤처투자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결성된 벤처펀드의 2021년 6월말 기준 투자배수를 조사한 결과 성과가 가장 좋았던 해는 2008년(3.58배)이었다. 1억원을 투자한 펀드라면 3억58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의미다. 이어 2013년(2.26배), 2014년(2.22배) 순이었다. 모두 글로벌금융위기와 유로존위기 등 경기침체기에 결성된 펀드다.
VC관계자는 "경기 하강기 때에는 적절한 가격으로 투자를 할 수 있어 펀드 수익률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며 "정부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도 현 시점의 투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버하거나 혹은 팔리거나…벼랑 끝 내몰린 스타트업 선택지
당초 희망했던 기업가치(Valuation)는 아니지만 이를 감수하며 투자를 유치하고 철저한 자금 관리와 인력 감축 등으로 런웨이를 늘리는 스타트업이 있는가 하면 투자유치에 실패해 매각을 검토하는 곳들도 많다.
14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왓챠는 박태훈 대표의 지분(구주) 매각을 비롯한 M&A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회사 인력 200여명 중 100명 이상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왓챠는 올해 상반기 1000억원 규모의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 를 추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생존형 M&A'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남게 됐다. 잠재적 원매자로는 SKT의 웨이브, 쿠팡플레이, 리디 등이 거론된다.
쿠팡·위메프와 함께 3대 소셜커머스로 꼽히며 시장을 선도해온 티몬의 경우 최근 글로벌 역직구 플랫폼 큐텐(Qoo10)에 인수됐다. 기업가치가 2015년 8600억원의 4분의 1 수준인 2000억원대로 떨어졌다.
티몬은 강점이었던 여행과 티켓 부문이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지면서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난해 매출 1290억원으로 전년대비 14.6% 줄었고 영업적자는 631억원에서 760억원으로 늘었다. 실적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결국 생존형 M&A를 택했다.
■ 스타트업간 M&A 늘어난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 민관협력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7월 총 79곳의 스타트업이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 됐으며, 이중 절반은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대출 비교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핀다는 상권 분석 스타트업 오픈업을 인수하며 소상공인 맞춤형 대출 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했다.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중개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명함 및 커리어 관리 플랫폼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는 지난 4월 전문가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 이안손앤컴퍼니를 시작으로 신입·인턴 채용 전문 플랫폼 슈퍼루키, 자소설닷컴을 잇따라 인수하며 채용시장 '공룡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금환급 서비스 '삼쩜삼' 운영사 자비스앤빌런즈는 아르바이트 급여·일정 관리 앱 '하우머치'를 인수하며 긱워커 잡매칭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영상통화 기술을 보유한 스무디를 끌어안아 전문인력을 보강했다.
VC 업계 관계자는 "업종 1~2위 스타트업들이 동종 업계 스타트업을 흡수하며 시장 우위를 가져가고 있다. M&A를 통해 실력 있는 개발자 등 인재를 영입하고 신사업 기회도 창출하려는 전략"이라며 "위기를 겪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M&A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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