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왜 괴롭혀" 흉기로 왼팔 관통…깨어보니 숨져 있었다

머니투데이 이세연 기자 2022.09.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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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 있는 상태에서 만났는데 상대가 죽어버리니 피고인도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피고인은 죽어가는 강아지를 데려와 5년 동안 보살펴 키우는 성향을 가졌어요."(변호인)

20대 남성 A씨가 법정에 섰다. 방청석에서는 A씨 부모의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A씨(27)는 지난 5월 자신의 반려견을 괴롭히는 남성을 과도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와 피해자 B씨는 지난 5월13일 처음 알게 된 사이다. 동성애자인 A씨는 B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다음 날인 14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자신의 주거지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B씨는 같은 날 오후 3시경 A씨의 주거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과다출혈. 왼팔에는 칼에 찔린 흉터가 있었다. 검찰은 A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사진=뉴시스/사진=뉴시스


사건 당일 오전 7시경 둘 사이에는 다툼이 있었다. A씨의 반려견 때문이었다. A씨는 5년 전 피부병 등으로 아픈 강아지를 집에 데려와 살뜰히 보살피고 있었다. B씨는 A씨의 반려견이 자신을 귀찮게 하고 두 사람을 방해하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반려견을 밀치고, 목을 조르는 등 거칠게 대했다. 격분한 A씨는 주방에서 칼날 13cm의 과도를 들고 왔다. A씨가 휘두른 칼은 B씨의 왼팔을 관통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조용래)는 지난 7월5일 A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검사는 A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봤다.

검사는 "A씨는 주방에서 과도를 들고 와 B씨를 향해 휘둘렀고, 이를 방어하던 B씨의 왼팔 전완의 바깥 부위를 질러 관통시켰다"며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작은방으로 이동했고 A씨가 작은방을 나서자 B씨는 추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방문을 잠갔다"고 했다.

검사는 A씨가 B씨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사는 "집안 곳곳에 B씨의 피가 낭자할 정도로 B씨에게 심한 출혈이 발생했으며, B씨의 휴대폰도 안방에 있었기 때문에 B씨는 직접 119 신고 등을 통해 구조요청을 할 수도 없었다"면서 "A씨는 B씨를 그대로 두면 사망할 수 있었다는 사정을 인식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자신은 안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 등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B씨를 살해했다"고 했다.


A씨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A씨는 반려견과 관련해 B씨와 언쟁이 있었던 점, 그 과정에서 과도를 들고 온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B씨를 향해 과도를 휘둘렀거나, 몸싸움을 벌이며 추가로 가격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기억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출혈이 있는 B씨를 그대로 두면 사망할 수 있다는 사정은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A씨의 변호인은 "두 사람이 서로 칼을 들려고 하는 다툼 과정에서 실수로 B씨에게 관통상이 생겼다"며 "A씨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잠들었고, B씨는 반려견을 추가로 괴롭히기 위해 스스로 작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A씨가 B씨를 일부러 찌르지도 않았고, 살인의 고의 역시 없었다는 것이다.

A씨의 변호인은 "두 사람 모두 혈중알코올농도가 만취 수준이었고, B씨 역시 자신이 찔린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A씨는 아픈 반려견이 성소수자로 사회에 나서지 못하고 움츠러든 자신과 닮아 보여 데려와 키울 정도의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며 "누군가 다치거나 아프면 나서서 치료해주는 A씨의 평소 성격에 비춰봤을 때 (A씨가) B씨를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호했다.



A씨는 재판 내내 고개를 떨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공판은 오는 14일 열린다. 이날은 혈흔 분석관에 대한 증인신문과 A씨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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