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사일에 맞아 죽을 수 있어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09.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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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 26-②우크라이나 유학생의 조국 방문기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찐터뷰'의 모든 기사는 일체의 협찬 및 광고 없이 작성됩니다.

르비우 시내에 전시된 우크라이나군이 노획한 러시아 장갑차/사진=린다 제공르비우 시내에 전시된 우크라이나군이 노획한 러시아 장갑차/사진=린다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린다입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학생이에요. 고향은 남부 헤르손(Kherson)입니다. 네, 최근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그 도시가 맞습니다.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이 발생한 후에는 수많은 한국 언론들을 접촉해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알리려 노력해왔습니다. 한국분들의 관심과 지지에 항상 감사하며 유학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7월8일부터 8월14일까지 여전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약 2년만에 방문했어요. 너무 그리웠습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간 상황이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남아 계세요.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인들께서 이 전쟁을 잊지 않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크라이나를 다녀온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기사는 10일 나온 '키이우(Kyiv)와 부차(Bucha) 방문기' 이후 두 번째 글입니다.



chapter 5. 전쟁과 삶
우크라이나에서 다행히 이반 외에도 몇몇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냐고요? 주요 대화 주제는 '피난'이었습니다. 친구 본인이, 혹은 가족·지인이 피난을 떠난 얘기들이죠. 군대에 가 있는 친구에 대한 소식, 주변에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오갔습니다.

(AFP=뉴스1) 김민수 기자 = 3월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리차키프 묘지에서 러시아 침공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 테오도르 오사치의 장례식에 유족들이 참석하고 있다. 2022.03.29/뉴스1  (C) AFP=뉴스1  (AFP=뉴스1) 김민수 기자 = 3월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리차키프 묘지에서 러시아 침공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 테오도르 오사치의 장례식에 유족들이 참석하고 있다. 2022.03.29/뉴스1 (C) AFP=뉴스1
하루는 제가 친구들에게 "같은 별 아래에서 마리우폴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어. 하늘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에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여전해. 차가운 땅에서 잠을 자고 있는 군인들도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해.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말했어요.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내 이웃이 군대에서 죽었다"는 말들을 굉장히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5분 정도 침묵을 지키다가 일상을 다시 시작하곤 합니다.


chapter 6. 미사일이 떨어지는 마을
할머니께서는 크로피우니츠키(Kropyvnytskyi)라는 도시에 피난을 가 계십니다. 헤르손이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뒤에도 고향을 지키셨지만,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학살' 소식에 어쩔 수 없이 피난을 떠나신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를 열흘간 찾아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건강하셨지만, 크로피우니츠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헤르손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셨습니다.

크로피우니츠키는 키이우와 헤르손의 중간 지점 쯤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제가 이 도시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러시아 미사일이 마을에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도착한 다음날 마을에 공습 사이렌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크로피우니츠키에서는 러시아의 미사일에 의해 5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크레멘추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6월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미사일 포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 쇼핑몰의 식료품 진열대에 새카맣게 탄 제품의 모습이 보인다.  (C) AFP=뉴스1  (크레멘추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6월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미사일 포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 쇼핑몰의 식료품 진열대에 새카맣게 탄 제품의 모습이 보인다. (C) AFP=뉴스1
정말로 많은 사이렌 소리를 키이우에서도, 크로피우니츠키에서도 들었습니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밤에 사이렌이 울리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안전한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chapter 7. 참았던 눈물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길에는 르비우(Lviv)를 들렀습니다. 폴란드 국경과 가까운 곳입니다. 키이우나 다른 도시들보다 폭격을 당할 확률이 떨어지는 도시입니다.

르비우에서 하루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모습을 고향 헤르손에서 봤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눈물이 흐를수밖에 없었습니다.

르비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나는 날, 배웅을 나온 친구와 포옹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하필 공습 사이렌이 울리더라고요. 친구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처럼 말해줬습니다.

"뭐…지금 러시아 미사일에 죽어도,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으니까."

전쟁 중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키이우의 시민들/사진=린다 제공전쟁 중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키이우의 시민들/사진=린다 제공
그 말이 많은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어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 미사일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chapter 8. 그리운 내 고향 헤르손
고향 헤르손은 러시아에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크림반도의 입구에 위치한 대도시로, 지금은 전쟁의 최고 격전지가 됐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전면적인 공세를 펴고 있고, 러시아군이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유학생인 저는 이번에 조국을 방문한 게 2년 반만입니다. 그런데 헤르손의 고향집에 못 간다는 점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이 점을 잊으려했지만, 쉽게 잊기 힘들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헤르손에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탈환된 헤르손의 모습은 전쟁 전과 같진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긴 수많은 장소들이 불에 탔을 것입니다. 재건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헤르손=AP/뉴시스] 지난 3월 5일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 없는 세계"라는 손팻말을 들고 반러시아 집회를 하고 있다. 2022.04.28.[헤르손=AP/뉴시스] 지난 3월 5일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 없는 세계"라는 손팻말을 들고 반러시아 집회를 하고 있다. 2022.04.28.
많은 분들이 이런 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도시라는 것은 그저 '다른 깃발 아래'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고향의 사람들은 강간을 당하고 있고,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쟁을 잊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이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투쟁입니다.

※ 린다와의 인터뷰 내용을 방문기 형식으로 편집,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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