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데이터 '반쪽' 개방…발 묶인 보험사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2.09.0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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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모래주머니 떼야 국민도 편해진다](下)①

공공의료데이터 '반쪽' 개방…발 묶인 보험사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전면 개방해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구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공공의료데이터 개방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료데이터 '반쪽' 개방 탓에 보험사들의 데이터를 활용한 유병자·고령자 보험 개발과 양질의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 부담 낮추려는 보험사 공공의료데이터 신청 불허
6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5개 보험사(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KB생명·현대해상)가 지난해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 공공의료데이터 이용 신청을 했지만, 건보공단은 연구계획서 미흡 등을 이유로 모두 불허했다.



이후 한화생명은 과학적 연구 기준을 충족하라는 건보공단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연구계획서 등을 수정·보완해 재신청했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올해 1월 한화생명 신청 건에 대해 심의를 보류한 뒤 8개월이 지나도록 후속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계류된 한화생명의 연구 주제는 '암과 심뇌혈관 질환의 질병부담지수와 관리지표 개발 연구'다.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를 분석해 국내 다(多)빈도 질환이 국민과 가계에 미치는 부담 수준을 평가하는 '질병부담지수'를 개발하는 내용이다. 소비자 피해보단 연구결과 외부 공개 등을 통해 국민의 질병부담 완화가 기대되는 데도 건보공단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험사들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이 처음부터 막혀있던 건 아니다. 2017년 이전까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보유한 공공데이터는 보험사에 개방돼 있었다. 그러나 2017년 국정감사에서 보험사에 공공의료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이후 4년 간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은 '올스톱' 됐다.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난해부터 보험사들에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의 문이 다시 열렸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반쪽 개방'이라고 하소연한다. 데이터3법 시행 이후 심평원은 공공의료데이터를 개방했지만, 정작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건보공단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여전히 데이터 제공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보험료 할증·가입 거절에 악용 우려" vs "개인 특정 불가능"
건보공단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는 내외부 전문가 14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시민단체, 의료계, 건보공단 노동조합 등이 공공의료데이터 제공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보험사가 공공의료데이터로 개인을 특정해 보험료를 할증하고,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용도로 악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간 기업인 보험사는 국민 편익보다 이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 데이터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보험사들은 엄격하게 비식별화된 표본자료(가명정보)인 공공의료데이터로 개인을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공공의료데이터를 심평원·건보공단이 보험사에 직접 제공하는 구조도 아니다.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공용IRB)의 승인을 받고 사전에 허가받은 연구자가 직접 심평원이나 건보공단을 방문해 폐쇄망 분석에 따른 결괏값만을 반출할 수 있게 돼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업법에 따라 보험사는 산출한 위험률을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검증 받아야 하며, 신규담보 개발의 경우 금융감독원 신고를 거쳐야 상품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도 공공의료데이터 이용 시 개인정보보호법령 등에 따라 엄격한 보안 관리체계가 운영 중이어서 정보 유출 우려는 없다"며 "이러한 법·제도적 안전조치 외에도 정부, 학계, 건보공단, 심평원 등이 함께 참여하는 '빅데이터 활용 위원회' 운영을 통해 보험사의 데이터 활용 결과를 공유하는 등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의료데이터 개방, 윤석열 정부 공약 실현에 필수

공공의료데이터 '반쪽' 개방…발 묶인 보험사
보험사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인수위원회 시절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 중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을 위해서도 공공의료데이터 개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인수위는 네거티브 방식의 공공데이터 전면 개방과 함께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의료·건강 정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보건의료 빅데이터 구축과 개방을 통해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를 촉진시키겠다고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험사들은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이 국민 건강·복지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병자와 고령자 등 건강유의군에 대한 보험 보장범위가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품 다양화를 통한 소비자 선택권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예컨대 양질의 의료데이터를 보험사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의 난임 치료를 보장하는 보험이나 사춘기 장애, 동맥경화 등 소아비만 동반질환을 보장하는 신상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무조건 실제 나이에 기반해 보험료를 산출하던 방식도 변할 수 있다. 65세지만 보험사의 평가를 통해 건강나이가 55세로 판정되면 후자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출하는 보험상품 출시도 가능하다.

아울러 보험사들은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을 촉진시켜 국민의 건강유지와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스마트 헬스케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경우 국가 의료비가 2025년 기준 약 7000억원 이상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이유는 기존에 보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위험담보를 개발하는 등 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양한 보장을 통해 국민들이 제때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유지와 증진에 기여하고, 나아가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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