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대법관이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관으로는 이례적으로, 그것도 자리에서 물러나는 퇴임식에서 정치적 갈등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사법부의 힘을 빌리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은 정치의 사법화 현상 중에서도 국제 문제가 접목된 대표적인 난제로 꼽힌다. 청구권 협정이라는 외교 문제를 직접 다루는 데다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는 같은 사건을 이미 기각했다. 이번 재판에 앞서 나왔던 2018년 대법원의 배상 책임 인정 판결 이후 틀어진 한일 외교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사법부를 압박했다.
물론 소수의 권리에 대한 영역은 민주적 다수를 대표하는 정치권이 앞장서기 어려운, 사법의 전문 분야다. 그렇다고 해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를 국민이 아니라 법률 전문가에게 송달하는 게 정도일 순 없다. 법관 앞에 선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어야 할 정치가 스스로 정체성을 포기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법에 의존하면 정치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정치가 법원을 찾는 이면에는 법관을 활용해 권력 경쟁에서 손쉽게(?) 우위에 서려는 정당과 정치인의 욕망이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당 권력의 경쟁을 유권자의 지지라는 지난하고 고된 민주적 방식이 아닌 어쩌면 손쉬운, 남의 손을 빌리는 '법대로'에 의존하려는 순간 잉태한다. 최근 여의도를 강타한 사법 파동이 이런 속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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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는 필연적으로 사법의 정치화 우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재판관 구성을 두고 여야가 치열한 싸움이 벌이는 사례가 이미 흔하다. 법학 교과서에서 '정치재판소'라고 설명하는 헌법재판소는 물론이고 민형사 사건을 줄기 삼아 정치를 빨아들이는 대법원을 두고도 정치권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김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이렇게도 당부했다.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닙니다. 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둬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의 실종. '어쩌다 법대로'가 아슬아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