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우유시장의 미래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2부장 2022.09.01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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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시장은 전체 우유시장의 미래다. 지난해 분유시장 규모는 출생아수 40만명대를 마지막으로 기록한 2016년(40만6243명)보다 35.3% 축소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출생아수는 26만562명으로 2016년보다 약 35.9% 줄었다. 출생아수 감소와 거의 일치한다.

우유의 주소비층 인구가 줄어드니 분유뿐만 아니라 전체 우유소비량이 늘어날 수 없다. 게다가 지난해 총인구수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총수요가 줄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시장이 쪼그라드는데 우유가격은 수요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결정된다.



한국의 우유가격을 좌우하는 제도는 3가지다. 먼저 쿼터제(기준원유량)다. 2002년 우유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농가에 생산량을 할당하고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유가공업체가 일정한 가격에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했다.

문제는 수요가 급감했음에도 원유를 사야 한다는 점이다. 2021년 음용유(마시는 우유) 제조에 필요한 우유는 170만톤이었지만 유가공업체는 204만톤을 사들였다. 남은 34만톤은 가공유(치즈·버터 등을 만드는데 쓰는 우유)로 활용했다. 저렴한 수입산을 쓰지 못하니 비용이 더 든다.



다음은 원유가격연동제다. 2013년부터 생산비가 오른 만큼 원유가격을 올릴 수 있게 했다. 2010~2011년의 구제역 파동을 계기로 생산량이 줄고 낙농가가 타격을 입자 정부가 증산과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실시했다. 유가공업체도 원유확보가 급하니 따라야 했다.

낙농가가 생산비를 아끼고 경영효율을 높일 유인이 사라졌고 수요와 무관하게 생산비가 뛰면 원유가격도 높아졌다. 2020년 기준 미국과 유럽의 원유가격이 각각 리터당 491원, 470원인데 국내 원유가격은 1083원으로 2배 이상 비싸다.

나머지 하나는 정부의 차액보전이다. 유가공업체가 쿼터만큼 매입하다 적자가 나니 음용유로 사용되지 않는 물량에 대해 정부가 구매금액을 보조한다. 간접적으로 낙농가를 지원하는 것이다. 2020년 정부가 세금으로 지급한 금액이 336억원이다.


그렇지만 시장의 수급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콩, 귀리 등으로 만든 대체음료나 수입산 멸균유 등으로 수요가 옮겨갔다.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2026년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산 유제품은 무관세가 되니 시장을 더 잃을 처지다.

우유는 매일 젖을 짜지 않을 경우 젖소의 건강이 위협받기 때문에 일정량을 생산해야 하고 장기저장할 수 없어 수요에 대한 탄력성이 떨어진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생산자 위주의 정책을 썼지만 시장의 수요와 괴리가 커지면서 제도의 생명력이 다했다.

이미 태어난 출생아수를 달라지게 할 수 없으니 수요를 증대시킬 방법도 없다. 오히려 비싼 가격으로 인해 우유소비가 위축되는 지경까지 왔다. 유가공업체들은 음용유시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커피, 단백질음료 등으로 제품을 다변화해 손실을 만회하고 있다.

[광화문]우유시장의 미래


수요가 사라졌는데 쿼터를 무한정 유지할 수 없으므로 유가공업체가 쿼터를 감당할 수 없는 날도 멀지 않았다. 소비부진과 재고부담으로 2015년 경북지역의 영남우유가 폐업하고 낙농가들이 납유처를 잃은 일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누고 음용유가격은 현 수준인 리터랑 1100원을 유지하되 가공유는 이보다 낮은 800원 수준으로 매기겠다는 것이다. 낙농업의 기반을 지탱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시장의 현실에 눈감을 수 있어도 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가격과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인내에 더 기댈 수도 없다. 유통구조를 탓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공멸하지 않으려면 생산단계의 제도개편과 기술혁신 등으로 생존시간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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