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돼지띠들의 블루스

머니투데이 송정렬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2022.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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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열의 Echo]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는 5163만명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연령은 올해로 만51세인 1971년생이다. 무려 93만명에 달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골목길을 휘젓고 다닌 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 등 5인방이 바로 1971년생 돼지띠다.

'71년 돼지띠'의 인구수는 독보적이다. 그해 태어난 아기가 102만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이집저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출생자 수 99만명)를 훌쩍 웃돈다.



수가 많다 보니 어려서부터 피 터지는 경쟁은 기본이었다. 71년 돼지띠들의 삶이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이유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선 한 반에 60명이 모여 수업을 들어야 했다. 중학교 시절엔 86아시안게임을, 고등학교 시절엔 88올림픽을 '손에 손잡고' 봤다.

대학입시는 전쟁이었다. 4.57대1에 달하는 '사상 최고 입시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그러나 대학입학 후 그들의 삶은 달콤했다. X세대로 불리며 경제성장에 따른 문화적 풍요를 톡톡히 누렸다.

시련도 있었다. 대학졸업 무렵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다.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었다. 대기업도 쓰러지는 판에 사람을 뽑는 기업이 없었다.


그러나 71년 돼지띠들은 그 위기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어느덧 우리 사회의 중추역할을 담당한다. 문제는 71년 돼지띠들의 고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 시대에 평균수명 90을 바라보는 '긴' 노후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그동안 이들에게 노후준비는 교육투자 등에 밀려 항상 후순위였다. 국민연금마저 조기고갈을 우려할 정도로 믿고 기댈 만한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최근 국내외 경기침체는 이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71년 돼지띠들은 앞으로도 강인한 생존력을 과시하며 멋진 노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이 올 2분기에 0.75명까지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출생아 수는 24만6000명으로 예상된다. 딱 10년 전인 2012년 48만4600명에 비해 반 토막 수준이다.

심각한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나라의 인구절벽은 가파르다. 올 상반기에만 6만5000명의 인구가 자연감소했다. 인구감소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다. 아무리 과학과 산업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구는 여전히 경제, 군사력 등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출생아 수 감소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2025년 병역의무 자원이 23만명 수준으로 떨어진다. 현재 50여만명의 병력 수준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정부가 그동안 인구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수립 이후 15년 동안 3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출산율 제고에만 목을 매는 단순한 접근법에 그 원인이 있다. 사실 인구문제는 주택, 일자리, 교육, 복지 등 모든 국가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즉, 젊은이들이 기꺼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인구정책기본법 제정은 물론 필요하다면 전담부처도 신설해야 한다. 이민확대 등 인구절벽 시대에 맞는 전향적인 사고전환도 필요하다.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진, 인구절벽이라는 막다른 골목길에 갇힌 우리의 미래. 아직은 응답할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다.

71년 돼지띠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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