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교수
지난 7월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주역인 신교계 얼스터통합당(UUP)의 데이비드 트림블 전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그와 함께 평화협정을 이끈 또다른 주역 존 흄 구교계 사회민주노동당(SDLP) 전 대표는 2020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1969년 이후 30여년 동안 지속된 신·구교계 사이의 유혈충돌을 종식한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을 이뤄낸 공로로 같은 해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예컨대 1993년 10월 북아일랜드 신교도 지역인 샨킬가의 생선가게에서 2명의 아일랜드공화군(IRA) 대원이 얼스터방위연합(UDA)의 지역지도자를 목표로 폭탄을 설치했다. 그러나 폭탄이 일찍 터지는 바람에 산모 뱃속의 아기를 비롯해 무고한 시민 10여명이 죽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교도 저격수가 6명의 구교도를 암살했고 신교도 계열의 얼스터자유전사(UFF)가 구교도 지역의 그레이스틸 마을에 있는 술집을 습격해 8명을 죽였다.
트림블과 흄은 각각 신·구교계를 대표한 이 협상의 주역이었다. 평화정착 과정에서 정치지도자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기존 갈등의 요소를 한꺼번에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미래의 화합을 위한 인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즉 과거 폭력시대를 극복하고 동시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는 협상이 가져온 불확실성에 대해 상황이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1998년 평화협정에서 트림블과 흄이 온건파이자 다수파를 대표해 협상을 주도했다면 이언 페이즐리가 이끈 신교계의 민주통합당(DUP)과 제리 애덤스가 이끈 구교계의 신페인당은 소수 강경파를 대표했다. 그러나 민병대 무장해제를 둘러싸고 애초 협정에 명시한 2년의 기한이 10여년으로 늘어나고 간헐적인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온건파는 2003년 총선에서 다수파의 지위를 잃었고 2007년 실질적인 첫 연립정부는 민주통합당과 신페인당 사이에 이뤄졌다. 그리고 2022년 총선에서 신페인당은 북아일랜드 제1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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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시도를 곧 배신으로 여긴 분열의 시대에 적을 향해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적과의 전쟁 중에도 동시에 평화를 모색해야 하는 이중의 사명을 안고 있다. 온건파 트림블과 흄의 결단은 훗날 자신들의 정당이 몰락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로 나타나지만 이들의 헌신 속에 북아일랜드 정치는 상대방의 멸절과 실지회복을 통한 통일이라는 이상으로부터 상호 인정을 통한 평화공존이라는 현실의 길로 중대한 전환을 이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