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모텔 살던 스타트업 청년 금의환향…'2조원' 상장사 대표 됐다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22.08.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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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팀 황 피스컬노트 창업자 겸 CEO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팀 황 피스컬노트 창업자 겸 CEO가 8월 2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팀 황 피스컬노트 창업자 겸 CEO가 8월 2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2016년 4월, 서울 여의도의 한 강연장. 한국의 국무총리와 부처 장관들, 정당 대표와 시도지사, 대기업 임원들 앞에 24세의 청년이 마이크를 잡고 섰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피스컬노트(FiscalNote)를 창업한 4년차 CEO, 한국계 미국인 청년 팀 황(Tim Hwang, 한국명 황태일)이었다.



한국의 정책·산업 최고 리더들에게 청년은 빅데이터와 AI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한국 경제의 성장을 위해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를 만들라고 했다. 청년의 말에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컨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6년 후인 2022년 8월, 서울 광화문의 한 행사장. 청년은 뉴욕 증시 상장사 대표가 돼 한국을 다시 찾았다. 금의환향이다. 지난 1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피스컬노트는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3400억원) 이상 평가됐고, 최근 시가총액은 12억50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동시에 창업자 팀 황도 명실공히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의 위상을 얻었다.



청년은 한국에 오면 고향에 온 것 같다며, 이번에도 한국에 와서 매우 기쁘다고 했다. 순식간에 달라진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국의 위상도 기쁜 마음으로 전했다. 한국이 엔터테인먼트 등 소프트파워의 힘을 입증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과 기술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 위기감이 높아진 때라 팀 황의 성공기가 더욱 반갑고 흥미롭다. 증시 상장에 성공했지만 엑시트(exit)로 여기지 않고 더욱 공격적인 사업확장과 M&A(기업인수합병)를 펼치겠다는 청년의 패기가 부럽고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팀 황 피스컬노트 창업자 겸 CEO와 마주앉아 그의 창업기와 성공기를 들어봤다.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도 청했다.

8월 4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열린 피스컬노트 상장 기념 오프닝 벨 이벤트 / 사진제공=NYSE8월 4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열린 피스컬노트 상장 기념 오프닝 벨 이벤트 / 사진제공=NYSE

증시 상장은 새로운 성장 단계의 시작
- 2013년 창업 이후 9년 만에 미국 증시 상장을 이뤘습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우선 제가 해온 사업의 성과가 확인된 것이라 정말 기쁩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정말 많은 어려움들이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고대했던 상장을 계획했던 대로 확실하게 이뤄냈습니다.

그동안 전세계 수많은 분들이 피스컬노트가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우선 훌륭한 우리 직원들을 비롯해 초창기 고객들과 투자자들, 파트너 기업들 모두 피스컬노트가 각 단계마다 사업을 잘 펼쳐나갈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줬습니다.

- 황 CEO와 피스컬노트에 증시 상장이 갖는 의미를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피스컬노트의 새로운 챕터, 새로운 성장 궤도의 시작점입니다. 엑시트(exit)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상장은 새로운 단계의 시작입니다.

피스컬노트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글로벌 곳곳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새로운 투자와 M&A(인수합병)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관건은 미래 성장을 위한 M&A를 계속하기 위해 증시와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입니다.

- 피스컬노트의 창업부터 오늘날 상장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공동창업자인 제럴드 야오(Gerald Yao)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함께 자란 형제 같은 제럴드와 학창시절 동안 줄곧 창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세우자고 얘기했습니다.

편도 티켓을 끊어 실리콘밸리로 갔습니다. 처음엔 아파트를 구할 수 없어 반년 넘게 모텔에서 살기도 했죠.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nothing) 상태에서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회사 설립 이후 거의 매일을 오늘과 같은 피스컬노트를 만들기 위해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 잠들기 전까지 우리가 생각한 것은 오로지 어떻게 피스컬노트를 잘 키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 기업공개 이후 일반 투자자들도 피스컬노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투자자들에게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입니까?

▶전세계 주요 정치·외교 트렌드를 확실하게 분석하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 같은 이슈를 잘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한국에 특히 중요한 반도체 이슈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지정학적 이슈들을 비롯해 가상화폐 같은 와해적 기술 이슈도 우리가 잘 다루고 있습니다. 이같은 중요 이슈들에 대한 솔루션을 상품으로 만들어 선보일 것입니다.

피스컬노트의 미션(사명)은 매우 특별합니다. 피스컬노트는 단순한 IT(정보기술) 회사가 아닙니다. 피스컬노트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회사입니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법, 규제, 공공 데이터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해 중대한 의사결정을 돕고 있습니다. 전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각국 정부 및 부처, 기관들 같은 곳을요. 이들은 전쟁에 개입해야 할지 말지, 어떤 정책에 관여할지 말지, 새로운 시장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지 말지 등을 의사결정하는데, 피스컬노트가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8월2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피스컬노트 뉴욕증시 상장 기념 리셉션에서 팀 황 피스컬노트 창업자 겸 CEO가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8월2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피스컬노트 뉴욕증시 상장 기념 리셉션에서 팀 황 피스컬노트 창업자 겸 CEO가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한국인은 약점 아닌 강점…글로벌 투자자들, 한국 기업 투자 관심 커
-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입니까?

▶제 부모님은 198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저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하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번에도 한국에 와서 매우 기쁩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해 매우 특별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해준 한국 파트너들과의 네트워크가 피스컬노트에 큰 성과를 안겨줬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면서 한국과의 파트너십과 네트워크에 의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창업을 꿈꾸는 한국 청년들에게 황 CEO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과 경영에 중요한 점들을 말씀해 주신다면.

▶ 창업의 본질은 일(job)이 아니라 삶(lifesyle)입니다. 스타트업은 직장이 아니라 삶입니다. 제가 스타트업 경영자로서 경험한 중요한 것은 희생심, 결단력, 노력입니다.

계속되는 난관들을 잘 극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피스컬노트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습니다. 운영자금이 거의 바닥난 적도 여러번 있었고, 파산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회사에 이런 어려움이 닥치면 특히 창업자들이 대부분 극심한 고립감에 빠지는데, 잘 이겨내야 합니다.

- 최근 한국에선 창업 초기 단계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하는 '본 글로벌'(born global) 스타트업 창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본 글로벌 창업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창업에 지름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성공적으로 창업하려면 처음부터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피스컬노트를 시작하면서 1000여 곳의 잠재 기업고객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을 계속해서 만났습니다.

이런 게 두렵기도 하겠지만 창업 초기에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려는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시작 과정으로서 해외시장에 나가 직접 고객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국계로서 항상 차별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며 사업을 해나가야 할까요?

▶확실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긴 했죠. 차별 받은 이야기를 일일이 하기에는 그렇고, 어쨌든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다른 한국계 창업자나 한국계 투자자들과 매우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한국계 창업자나 한국 기업들이 지난 수년 동안 저를 지탱해 줬던 훌륭한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2022년 현재 한국계, 한국인은 약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큰 강점입니다. 특히 한국적 소프트파워를 레버리지할 수 있다면 엄청난 강점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정말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나요?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처럼 기업들이 많은 지역의 비즈니스 문화를 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한국 문화, 한국 스타트업, 한국 기술에 대한 투자 관심이 엄청 커졌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잘 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은 보다 더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 억만장자 마크 큐반, 야후 창업자 제리 양 등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는 등 뛰어난 투자 유치 수완을 보여주셨습니다.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어필하면 좋은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요즘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 한국 땅에도 훌륭한 투자 기회들을 찾고 있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단지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자신감만 더 가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분들은 자신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 다소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비즈니스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자격이 충분합니다. 한국은 엔지니어링, 마케팅, 세일즈 등의 퀄리티가 매우 높습니다. 노동윤리(work ethic)도 강합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확실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창업자들 앞에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 스타트업과 청년 창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원은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청년들이 창업을 하고 실패를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의 비용 부담을 키우는 세제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스타트업에 전반적으로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과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피스컬노트는 이제 막 시작일 뿐입니다. 새로운 나라들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매우 공격적인 M&A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선 특히 한국을 거점으로 사업을 확장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사업을 더 키우고 싶습니다. 앞으로 피스컬노트가 지금보다 2배, 5배, 10배 더 커지게 될 날을 기대하십쇼. 우리는 야망(ambition)이 있습니다. 포춘(Fortune) 1000대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돈 없어 모텔 살던 스타트업 청년 금의환향…'2조원' 상장사 대표 됐다
피스컬노트와 팀 황
피스컬노트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 영역을 창출한 '카테고리 크리에이터'(Category Creator)다. 정부, 의회, 법원 등의 정책, 규제, 의안, 판례 등의 정보를 AI와 빅데이터 기술로 수집·분석해 기업, 공공기관, 로펌, NGO(비정부기구) 등에 서비스한다. 지난 1회계분기 매출이 2610만달러(약 400억원)로 전년동기대비 50% 급증하는 등 거침없는 성장세다.

피스컬노트는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더들스트리트애쿼지션(DSAC)과 합병, 지난 1일 NYSE에 주식을 상장해 첫 거래를 시작했다. 2013년 창업 이후 9년 만의 상장과 함께 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 평가됐다.

한국계 청년이 미국에서 분투하며 스타트업 성장의 결실인 증시 상장을 이뤘다는 것에 국내 투자업계에서도 호평이 나온다. 머니투데이도 피스컬노트 창업 초기에 500만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SI)를 했다.

피스컬노트의 이같은 성장 비결은 단연 황 CEO의 리더십이 꼽힌다. 강력한 추진력과 실행력이 장점이다. 2018년에는 영국 유력 미디어 이코노미스트그룹이 보유한 미국 정치 전문매체 시큐롤콜(CQ Roll Call)을 인수해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집어삼킨 이례적인 M&A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도 활발히 M&A에 나서고 있으며 지난해 말에는 한국 기업인 대체 데이터 업체 에이셀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황 CEO는 이민 한인 2세로 1992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과테말라 봉사활동을 통해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세상을 보다 이롭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봉사활동 전문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역시 고교 시절인 2008년 미국 대선 때는 버락 오바마 캠프에서 데이터 정치 전략을 짰다. 이듬해엔 몽고메리카운티 교육위원에 당선돼 정책 경험을 쌓았다.

명문 프린스턴대학교에 진학해 정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근원적인 사회 변화를 원했던 그는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미국 한인사회에서 '차세대 빌 게이츠'로 불렸다. 일찍이 CNN '세계를 바꿀 10대 스타트업', 비즈니스인사이더 '25대 유망 스타트업' 등에 피스컬노트의 이름을 올렸고, 자신도 포브스 '30세 이하 30인 창업가'에 꼽히는 등 글로벌 스타트업의 대표주자 중 한명으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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