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 인력 빼갔다"…현대重·대우조선 '신사협정' 위반 논란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2022.08.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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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한 가족이 되기 위해 합병을 추진했던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이 이번엔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다. 대규모 인력 유출이 발단이다. 현대중공업은 정상적 채용이라는 입장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조직적인 유인활동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가 상호 간 부당한 방식의 인력 유출을 지양한다는 신사협정을 맺은 것 또한 갈등을 고조시킨 배경으로 풀이된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삼성중공업·케이조선·대한조선 등과 공동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사업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인력을 부당하게 빼돌렸단 이유에서다. 이번 소송은 삼성중공업이 주도하고 나머지 3개 사가 이에 동참하면서 시작됐지만 가장 격분한 곳은 신사협정을 체결한 대우조선해양으로 전해진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3월 한국산업은행 주도로 한국조선해양과 인력 유인을 금지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한 바 있다. 유럽연합(EU)의 반대로 양사의 결합이 무산된 직후였다. 다시 홀로서기를 해야 할 대우조선해양의 독자 경쟁력을 구축하는데 한국조선해양이 방해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기업결합이 무산된 직후 해당 합의서가 작성될 만큼 인력 유출은 꾸준히 지속돼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올 상반기 진행한 경력직 채용 당시에도 300여명의 경력직이 한국조선해양과 산하 조선사에 입사했다. 이 중 상당수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출신으로 전해진다.



대우조선해양은 합의서가 작성된 후에도 대량의 인력이 유출됐고, 한국조선해양이 하반기 경력직 채용에 나선다는 소식을 접하자 삼성중공업의 공동 대응 제안에 응하게 됐다.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는 채용 전형 일정은 허울뿐이며, 입사원서를 내기 전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조선해양이 필요한 인재들에 사전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별도의 사전접촉 여부는 신사협정 준수의 핵심 사항이다. 양사 간 합의가 상대방 인력의 채용을 암묵적으로 금지하자는 게 아니라, 부당한 인력 빼가기를 하지 말자는데 의의를 뒀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는 3곳 뿐이고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 역시 소수기 때문에 인력풀이 제한적"이라면서 "자연히 서로 알음알음 아는 사이가 많은데, 조선 4사는 이 같은 특수성을 이용해 한국조선해양이 인력을 빼갔을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 유인을 금한다는 합의서를 체결했을 정도로 대우조선해양의 의심은 오랜 기간 지속됐을 것"이라면서 "공정위에 제소한 다른 3개 회사는 이번 제소에 경고성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협약 위반이라는 점을 문제시하는 분위기다"고 덧붙였다.

한국조선해양은 경쟁사가 의심하는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경쟁사들이 장시간 적자에 노출되면서 임금인상 규모가 작았고, 이에 한국조선해양과 경쟁사 간 임금 격차가 벌어지자 이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자유의지로 채용에 응했던 것이란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통상적인 공개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뿐, 부당하게 인력을 빼 온 적이 없다"면서 "경력직 채용 절차는 모든 지원자가 동등한 조건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 등 4개 회사의 제소를 공정위가 받아줄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공정거래법은 다른 사업장의 사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곤란하게 할 정도의 범위의 부당 인력 유인·채용도 방해하는 행위에 포함된다. 4사가 의심하고 있는 한국조선해양의 조직적 개입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까다롭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직자 상당수가 조선소 현장에서 선박 건조를 관리·감독하거나 차세대 선박을 연구하는 과·차장급"이라면서 "허리급에 해당하는 수백여명의 근무자들이 자리를 옮기자 다른 조선사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반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조선해양으로 향했다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4개 사가 인력을 지키기 위한 처우개선에 신경 써야 할 상황"이라면서 "대우조선해양이 강조하는 신사협정 위반이나, 4사의 제소를 공정위가 받아들이기 위해선 한국조선해양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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