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스값 올리고 있는 러시아…아시아 향해선 "원유 세일"

러시아발 공급 우려에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유럽 국가들이 겨울철 공급 대란에 미리 대비하는 중에 보인 가격 움직임이다. 반면 러시아는 판로가 줄어든 원유를 아시아 국가들에 팔기 위해 싼 가격을 내세워 판촉 활동에 나섰다.

/사진=뉴스1

AFP통신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지표가 되는 9월 인도분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322유로까지 상승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직후인 3월 초 기록한 사상 최고치(345유로)에 근접했다. 1년 전 가스 선물 가격은 MWh당 약 50유로 수준이었는데 최대 6배 뛰었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1의 가동을 3일간 중단한 영향으로 보인다. 가스프롬은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유지 보수를 위해 오는 31일부터 내달 2일까지 사흘 동안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회사 측은 보수 작업을 마친 뒤 하루 3300만㎥가 공급될 거라고 밝혔다. 기존 수송량 대비 20%로 줄인 현재 공급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 공급량을 더 줄이거나 아예 잠가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가스프롬 측은 유럽향 가스 공급량을 기존의 40%로 줄였고, 7월 중순 유지보수 기간을 거쳐 27일에는 공급량을 기존의 20% 수준으로 더 줄였다.

수재너 스트리터 하그리브스 랜스타운 분석가는 "가스값은 다시 멈추지 않을 것처럼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킬 극적인 움직임"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미 독일은 거리의 조명을 어둡게 하고, 공공건물의 난방 온도를 낮추는 등 에너지 절약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줄어드는 가스 비축량을 감안하면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CNBC도 이번 노르트스트림1의 정비 작업이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의 가스 분쟁을 심화하고 경기 침체와 겨울 에너지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소비자를 옥죈다. 독일 분데스방크는 지난 22일 3분기 물가 상승률이 10%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 근본 원인으로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지목했다. 내년 초 독일과 프랑스에서 각각 전기요금이 13%와 12% 오를 예정이라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산 원유를 러시아를 거쳐 유럽에 공급하는 송유관의 가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에너지난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송유관 운영사는 지난 21일 흑해 수송터미널에 있는 계류 지점 3곳 중 2곳이 파손돼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복구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공급처로 아시아 노리는 러시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6일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세션1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공)2019.11.26/뉴스1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새로운 원유 공급처로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주요 7개국(G7)의 가격상한제 도입 등 서방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인 에너지 수출을 제한하자 역으로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들에 원유 수입 장기 계약을 하면 가격을 최대 30%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미 중국, 인도, 미얀마 등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산디아가 우노 인도네시아 관광창의경제부 장관은 지난 주말 인스타그램에 "러시아가 장기 공급을 조건으로 국제 시장 가격보다 30% 낮은 가격에 원유를 팔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해당 제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러시아 원유 수입 시) 미국으로부터 금수 조치를 당할 우려도 있어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EU 등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가격 상한제 등 제재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수입국들도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 최근 인도를 방문하는 등 서방국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한편 러시아발 유럽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며 유로화 가치도 계속 추락하고 있다.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 사이에 경기침체 우려가 크다. 이는 다시 달러 강세로 이어지면서, 한때 1유로당 1.6달러에 육박했던 달러 대비 유로 가치는 최근 '1달러=1유로(패러티)'마저 깨져 유로당 0.99달러대까지 급락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은 "에너지 위기가 지속된다면 유로화 가치는 반등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유로-달러 환율은 3분기에도 0.95~1.0달러선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