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러브'로 향하는 걸그룹 전쟁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2.08.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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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사진제공=어도어뉴진스, 사진제공=어도어


걸그룹은 수없이 쏟아지고, 소비자들은 점점 눈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에게 춤, 노래, 랩, 외모 등의 '뛰어남'은 이제 기본 옵션이 되었고, 소속사에서는 상향화된 팬덤의 취향을 실력 이상의 것으로 건드려야 한다. 반면 걸그룹에게 관심없는 대중에게는 적어도 이름을 알릴 이슈 정도는 잡아야 한다. 일반 대중은 걸그룹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어도 이슈에는 눈길을 보낸다. 소속사, 팬, 대중 모두 입력값이 명확하고, 대입한 값의 결과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과거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로 걸그룹 팬덤이 양분되던 시절, 후발 주자였던 2NE1, 포미닛, 에프엑스 등은 두 팀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새로운 것이 인기를 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적어도 확실한 취향을 공략할 여지는 충분했고, 그것이 잘 얻어 걸리면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키울 수 있었다. "오빠를 사랑해"(소녀시대 '오!') "내가 지나갈 때마다 고갤 돌리는 남자들"(원더걸스 '쏘 핫') 등 이성을 향한 유혹의 제스처가 분명했던 것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2NE1 '내가 제일 잘 나가') "스타일 하나 하나 모두 다 부럽니"(포미닛 '핫이슈') 등 스스로에 대한 우월함으로 동성들에게 동경심을 불어넣었다.



이후에도 청순과 섹시 그리고 크러시까지 다양한 콘셉트가 걸그룹 시장에서 소비되며 돌고 돌았다. 청순이 포화되면 섹시로, 섹시가 포화되면 크러시로 옮겨가며 확실한 취향의 것들을 타깃 삼아 걸그룹 시장을 보존했다. 돌고 돌는 유행 사이에서도 한 세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것들이 유입됐고, 이젠 그룹의 서사나 세계관, 그리고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하며 주체적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걸그룹 시장을 확장했다.

(여자)아이들, 사진제공=큐브엔터테인먼트(여자)아이들, 사진제공=큐브엔터테인먼트


아이브나 뉴진스 등이 나르시시즘 콘셉트로 팬덤의 취향을 노리기 전, 이미 블랙핑크가 데뷔 때부터 같은 결의 콘셉트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사이에는 (여자)아이들도 있다. 전소연의 주도 아래 본인들이 노래를 직접 만들며, 콘셉트는 분명하게 멋있고 강렬한 역동적인 것으로 채우고, 이를 자신들이 직접 메이드 하는 주체적인 모습으로 점진적인 호응을 이끌었다.

지난 몇 년 간 쌓인 데이터는 걸그룹의 인기에 몇 가지 공식이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최근에 데뷔한 걸그룹들은 그 안에서 더 좋은 답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브는 '완성형 그룹'이라는 서사로 음악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뮤직비디오에서는 우월감이 느껴지는 표정과 눈빛, 파워와 섹시를 교묘하게 섞은 역동적인 안무, 인간의 영역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신계의 출중한 미모 등으로 팬덤 취향을 저격했다. 규모는 한정되고 경쟁자는 많아지고, 소비자의 기준이 올라간 시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답이 아니라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데뷔한 걸그룹 중 뉴진스가 등장과 동시에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희진이라는 트렌드메이커와 하이브의 막대한 자본력. 이 두 개의 힘이 합세한 결과물은 당연히 완벽하거나 '완벽에 가까운' 것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을 구걸하거나 애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르시시즘에서 가까우면서 팜므파탈 원형 안에 있는 도취적 매력으로 팬덤의 구미를 당기도록 만들었다.


아이브,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아이브, 사진제공=스타쉽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시장은 갈수록 전쟁터와 비슷해지고, 싸워야할 상대는 많으며, 살아남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는 것은 더욱 난제에 가깝다. 과거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처럼 범국민적인 히트송 내놓던 걸그룹을 만나 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트와이스의 '치어 업'(2016)이나 블랙핑크의 '뚜두뚜두'(2018) 정도가 그 반열에 올랐던 곡이라 볼 수 있는 정도인데, 최근엔 이 정도 히트곡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음원차트 1위가 이제 대중성을 지표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금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은 팬덤 진영에서 싸우는, 사실상 더욱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완벽에 가까워야 그나마 발이라도 붙일 수 있는 터전이니 이슈는 최대한 지양해야 하고, 때문에 대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선택 덕분에 걸그룹의 노래는 확실히 음악성 측면에선 발전하고 있다. 걸그룹에게 섹슈얼은 어쩔 수 없는 입력값이지만, 이제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팀은 거의 없다. 그 자리에는 이제 건강한 '자기애'가 들어섰고, 그것으로 전쟁을 치르는 걸그룹들은 나름 늠름한 전사의 모습으로 긍정적인 응원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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