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탐욕 딱지 붙었다"…'시장조성자' 발 빼는 증권사, 뿔난 이유

머니투데이 정혜윤 기자 2022.08.2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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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사옥금감원 사옥


지난해 시장조성자로 참여했던 14개 증권사의 2/3에 해당하는 10개 안팎의 증권사가 시장조성자 불참 입장을 정했다. 국내 대형 증권사,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증권사 등이 시장 조성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최종 무혐의로 결론나기 했지만 금융감독원의 증권사 시장 조성 활동 검사와 과징금 조치 때문으로 풀이된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달말부터 이달 18일까지 국내외 증권사 등으로부터 시장조성자 신청을 받았다.

시장조성자 제도는 거래소와 증권회사가 1년에 한 번 시장조성계약을 체결하고 사전에 정한 종목(시장조성 대상 종목)에 대해 지속해서 매도·매수 양방향의 호가를 제시하도록 해 유동성을 높이는 제도다.



국내 증권사 중에선 5개 안팎의 증권사만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시장조성자로 활동했던 국내 11개 증권사 가운데에서 절반 이상이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골드만삭스 등 기존에 참여했던 외국계 증권사들도 시장 조성 활동 불참 의사를 밝혔다.

거래소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와 국내사 일부에서 안 하기로 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최종적으로 종목 배정, 계약 체결 절차가 마무리되면 8월말쯤 공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거래소는 △골드만삭스 △교보증권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부국증권 △신영증권 △신한금융투자 △에스지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CLSA 코리아 △KB증권 △NH투자증권 등 14개 증권사와 시장조성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의 계약 기간은 지난해 말까지였다.
[단독]"탐욕 딱지 붙었다"…'시장조성자' 발 빼는 증권사, 뿔난 이유
증권사들이 시장조성 활동 참여를 꺼리게 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정부의 요청으로 시장 조성 활동에 나섰는데 '탐욕'에 눈이 멀어 돈벌이만 했다는 비판을 받은 때문이다. '시장 조성자'가 아닌 '시장 교란 행위자'라는 딱지도 붙였다.


과징금 취소 등으로 '없던 일'이 됐지만 금융당국 일각에선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구태여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시장조성자 제도는 유동성이 필요한 특정 종목의 원활한 거래를 돕기 위한 제도다. 거래소와 시장조성계약을 맺은 증권사는 매수·매도 양방향으로 호가를 계속 제출해 호가 스프레드가 과대하게 벌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이를 통해 적정 가격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일반투자자 입장에선 거래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은 시장조성자 활동중 잦은 호가 정정, 취소 등이 시장질서에 교란을 줬다고 판단하고 9개 증권사에 487억원 규모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증권사들은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대응하며 시간, 비용 등을 모두 허비했다. 증권사 입장에선 '푼 돈' 수준의 이익을 위해 교란 행위를 하겠냐고 항변했지만 결정은 미뤄졌다.

결국 10개월이 지난 지난달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가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며 증권사 손을 들어줬다. 시장 질서 교란 행위가 아니라 시장조성자 의무 이행을 위한 시세 변동 대응으로 판단했다.

금융당국은 '면죄부'를 준 합리적 결정으로 생각하지만 업계 입장은 다르다. 면죄의 기준이 여전히 애매한 게 문제다. 호가 정정·취소 등 시장 조성자 활동이 언제든 금융당국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 지난해 시장조성자로 참여했던 증권사중 2/3 가량이 불참으로 기운 이유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시장 유동성을 통해 적정한 이익을 얻음과 동시에 공익적 역할을 했었다"며 "정부가 하자고 도입해서 참여한 것뿐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참에 문제 생길 거리를 아예 만들지 말자는 계산도 깔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장조성자가 짊어져야 할 부담과 책임만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 조성자로)참여하겠다고 밝힌 증권사들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느낌은 아니다"라며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뉘앙스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흐린 날씨 속 여의도 증권가. 2021.1.26/뉴스1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흐린 날씨 속 여의도 증권가. 2021.1.26/뉴스1
보통 시장조성 활동은 기존에 했던 증권사들이 재계약을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해엔 파생시장을 제외한 코스피, 코스닥 등 주식시장에 총 14개 증권사가 코스피 332개, 코스닥 341개 등 총 673개 종목의 시장조성자로 참여했다.

시장조성자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이 333개 종목으로 참여 종목 수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골드만삭스 174개 종목, 에스지증권 158개 종목, 한화투자증권 137개 종목, 신한금융투자 116개 종목 순이었다. 전년과 비교해서 증권사 수는 2곳 늘었고 종목 수는 176개 줄었다. 올해는 참여 증권사 수가 확 줄어든 만큼 종목 수도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곧 시장에 영향을 준다. 실제 지난해 1년간 시장 조성자 제도가 중단되자 거래량이 적은 종목들은 일부 유동성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조성자가 없다고) 체감할 수 있는 차이가 크진 않지만 유동성 지표, 계약체결률이 낮아지고 시장의 호가 스프레드(매수호가와 매도호가의 매매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등 일부 악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규제 리스크가 생기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시장조성자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시장조성제도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에 시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끌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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