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A사는 유죄, 법원은 무죄[우보세]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2.08.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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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법원 전산직 쟁의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제헌절 기념 법원 노동권 위반 모의 재판' 및 직장 갑질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 마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모의재판에서 참석자들은 "대한민국 법원이 법원 전산직 하청노동자들에게 기본권을 무시하고 간접고용이라는 제도를 악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법원에게 갑질죄, 중간착취죄, 부당노동행위 죄를 물어 선고했다. 2022.7.18/뉴스1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법원 전산직 쟁의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제헌절 기념 법원 노동권 위반 모의 재판' 및 직장 갑질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 마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모의재판에서 참석자들은 "대한민국 법원이 법원 전산직 하청노동자들에게 기본권을 무시하고 간접고용이라는 제도를 악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법원에게 갑질죄, 중간착취죄, 부당노동행위 죄를 물어 선고했다. 2022.7.18/뉴스1


국내 4대그룹 중 한 곳의 핵심계열사 A사. 최근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꼬리표를 달았다. 비슷한 소송이 회사 안팎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상황이라 새롭지도 않은데다, 일단 직고용을 요구한 협력업체 직원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 밖으로 크게 알려지지는 않은 듯 하다.

소송을 건 직원들이 다니는 협력사는 A사 PC(개인용컴퓨터)를 관리해주는 업체다. 법원이 1심에서 협력사 직원들 손을 들어주면서 A사는 11명을 직고용해야 할 상황이 됐다. 시작일 뿐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인원을 중심으로 소송이 전사적으로 확대될 분위기다. 최종 판결에 따라 직고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불법파견이란게 시효가 없다. 이전에 다녔던 직원들까지도 소제기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건 A사에 직고용 판결을 내린 법원도 PC 관리 협력 업체와 유사한 갈등에 직면해 있다는 거다. 전국 174개 법원·등기소 PC를 고쳐주는 협력사를 쓰고 있는데 직원 80여명이 파업을 벌였다. 사법부 역사상 첫 하청업체 파업이다.

법원이 자기는 '옆으로' 걸으면서 기업엔 '앞으로' 걸으라고 하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A사는 입맛이 쓰다. 법원 직원들의 갑질 내용이 보도를 통해 전해지면서다. 3급 법원공무원이 하청근로자를 집으로 불러 컴퓨터 조립을 시켰다. 거부한 하청근로자는 결국 친절교육을 받아야 했다. "(법원은) 마치 신분제 사회 같았다"는 다른 하청근로자의 인터뷰도 전해졌다.



정규직이 업무상 지휘·명령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파견 꼬리표가 붙은 A사 직원들이 보기엔 기가 찬다. 법원도 비슷한 방식으로 업무한다는게 업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A사가 계약한 협력업체는 PC유지보수 업계에서 손꼽히는 수위 기업이었다. 퇴사자가 차린 회사도, 몇다리 건넌 계열사도 아니었다. 정상적인 절차로 계약을 맺어 업무를 진행했는데도 A사는 불법파견 기업이 됐다.

반면 법원의 경우 A사처럼 파업 직원들을 직고용할 가능성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법원은 파견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다.


더 눈길을 끄는 사실은 이번에 A사 직고용을 얻어낸 하청업체가 2011~2014년엔 법원과 계약을 맺고 PC를 고쳐줬다는 점이다. 지금은 계약이 종료됐지만 업무의 성격상 고용은 승계됐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같은 회사에 소속돼 똑같은 업무를 똑같은 구조로 하던 직원들이다. 그 중 법원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얻을 것이 불투명한 파업을 벌이고, A사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글로벌 대기업 직원이 됐다.

이미 수차례 문제점을 지적받아 온 불법파견 5대 판단기준의 덫은 아직도 기업에만 유효하다.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면 개선하고 처벌해 마땅하지만 하청업체를 무조건 직고용하라고 명령하는건 경영권 침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지 벌써 수년째인데 아무 변화가 없다.

A사는 유죄, 법원엔 무죄. 법을 어이없게 적용하다보니 생긴 아이러니다. 기업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풀어주겠다며 출발한 윤석열 정부가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숙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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