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한다'는 미국에 내쫓긴 한·일·독...EV보조금, 80%가 미국車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22.08.1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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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중국 닮아가는 미국의 불공정①

편집자주 전기차 보조금을 자국내 조립 자동차로 제한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발효를 계기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조금, 국가 주도 산업 정책 등을 이유로 중국과 무역 전쟁까지 벌였던 미국이 어느새 중국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감축법에 담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뜯어보고 대응 방향을 모색한다.

'중국 견제한다'는 미국에 내쫓긴 한·일·독...EV보조금, 80%가 미국車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는 차종 중 약 78%가 미국 브랜드 모델로 나타났다. 중국을 견제해 전기차·배터리 산업 패권을 쥐겠다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행보에 정작 안보·경제동맹인 한국과 일본, 독일 완성차업계가 밀려나는 모양새다.



보조금 받는 28개 모델 중 22개가 미국 브랜드
18일 미국 에너지부가 공개한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차종 목록'에 따르면 미국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2022~2023년식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28개 차종(중복 제외) 중 22개가 미국 브랜드다. 이 중 테슬라를 비롯한 10개 모델이 '브랜드당 세액공제 혜택 최대 20만대' 기준을 넘겨 올해는 받을 수 없지만, 내년 1월 1일부터는 해당 기준이 사라지면서 수령이 가능하다.

테슬라의 경우 모델3·S·X·Y 등 전 차종이 포함됐다. 제너럴모터스(GM)는 쉐보레 볼트 EUV·EV, GMC 허머 픽업·SUV, 캐딜락 리릭 등 5개 모델이 세액공제 대상이다. 스텔란티스는 크라이슬러 패시피카 PHEV, 지프 그랜드체로키·랭글러 PHEV 등 3개 차종, 포드는 이스케이프 PHEV, F 시리즈, 머스탱 마하E, 트랜짓, 링컨 에비에이터·코세어 등 6개 모델이다. 루시드는 루시드 에어 1개 차종, 리비안은 EDV·R1S·R1T 등 3개 모델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 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6개 차종만 비(非)미국 브랜드다. 인플레 감축법 통과 전만 해도 기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던 모델은 74종으로 알려졌는데, 40여종이 줄면서 이제는 사실상 미국 브랜드만 남겨진 셈이다.

그나마 독일 3사가 BMW 3시리즈와 X5, 아우디 Q5, 메르세데스-벤츠 EQS SUV 등 각각 적어도 1개 차종이 보조금을 받으면서 선방했다. 1931년 이후 미국 자동차 판매량 1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GM을 꺾고 지난해 선두를 차지한 토요타는 보조금을 받는 모델이 없다.

올해 1분기 미국 브랜드를 모두 앞지르며 전기차 점유율 2위를 기록한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목록에서 제외됐다. 2010년 출시 이후 12년간 17만대 판매에 그친 닛산 리프만 아시아 기업 모델 중 유일하게 세액공제 대상이 됐다. 6개 중 나머지 하나는 중국·스웨덴 업체인 볼보 S60이다.


'자국 우선주의' 드러낸 미국…시장 선점효과 누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미국 전기차 시장이 점점 성장하는 가운데 미국 브랜드만 중점적으로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기 위해 준비중이지만 2025년 완공이 목표다. 아이오닉5·EV6·코나EV·GV60·니로EV 모두 한국에서 수출돼 세액공제 혜택 대상이 아니다. 올해 1분기는 전기차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지만 보조금 없이 3년의 공백기 동안 해당 순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내년부터는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부품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의 원자재를 일정 비율 이상 넣어야 한다. 미국 완성차업계는 북미 최종 조립 여건을 비교적 손쉽게 갖출 수 있기에 우위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둘 다 해결해야 하는 한국·일본·독일 완성차업계에는 비관세 장벽이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미국 완성차업계는 세액공제 대상 차량이 준다며 인플레 감축법을 비판해왔지만 내심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GM·포드·토요타·폭스바겐이 함께 소속된 '자동차혁신연합'은 이번 법안을 비판해왔지만 GM은 지난 1일 별도 성명을 내고 '미국 우선주의'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GM은 성명에서 "인플레 감축법에서 추진하는 프레임워크에 고무됐다"며 "일부는 하루아침에 이루기 힘든 어려운 내용이지만 우리의 대규모 투자와 적절한 시기에 추진되는 정부 정책이 미국을 전동화 글로벌 리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노골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보다 더한 조치"라며 "강대국이 칼자루를 쥐고 휘둘렀는데 앞으로는 이런 법안들이 유럽연합(EU)이나 동남아 등 각지에서 많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모든 국가가 자국 이익 우선주의로 가고 있다"며 "중국의 생산 보조금처럼 미국도 대규모로 자금을 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중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양국 사이 넛크랙커(호두까기) 신세가 되는 것이 우려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통상·산업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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