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근처 파출소에서 총을 받아 사냥 중이었다. 혼자였고 밤이 늦어 주위는 어둑했다. 주변 가로등과 택시 전조등은 꺼졌었다. A는 경찰 조사에서 "멧돼지인 줄 알고 총을 쐈다"고 했다. 그의 나이는 만 72세. 개인 사업을 하다가 퇴직 후 엽사가 됐다. 평소 A씨를 알던 동료 엽사는 그의 경력이 "짧다"고 했다.
"지자체 허가증 내미는데 총 안 내줄 수 없어...허가 기준을 높여야"
철제 포획틀을 이용해 실제 멧돼지를 포획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대부분 사고는 유해조수 관리 과정에 벌어진다. 멧돼지는 대표적인 유해조수다. 농작물을 헤치거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퍼뜨릴 우려가 있으면 지자체는 엽사들 단체와 '유해조수 관리' 계약을 맺는다. 긴급출동, 순찰해달라는 취지다. 지자체는 계약맺은 엽사 단체 회원들 면허 소지 여부, 수렵 성적 등을 고려해 유해조수 관리 허가증을 내준다. 허가증은 한 달, 두 달, 1년 등 단위 개념으로 발급한다.
A씨도 단체 한 곳에 속해 서울 은평구에서 1년 유해조수 관리 허가증을 발급받았다. 허가증을 받으면 사냥에 큰 제약이 없다. 지구대·파출소 경찰은 엽사가 술에 취하지 않았는지, 정신 상태는 건강한지, 사냥을 어디서 하는지만 확인한 후 총을 내준다. 경찰 관계자는 "엽사가 구청 허가증을 내미는데 총을 반출해주지 않기는 어렵다"고 했다. 경찰이 총기 반출을 제한할 근거는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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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사격 등을 막기위해 2015년 '2인 1조' 규칙이 도입됐다. 혼자 사냥할 경우 엽사들의 긴장도가 극에 달해 작은 소리에도 오인사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인1조' 규칙은 3년 만에 폐지됐다. 엽사들이 반발해서다. 엽사들은 '2인 1조'로 규칙이 있더라도 실제 사격현장에서 엽사들이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 탓이다. 2인 1조로 다니면 엽사들이 서로를 오인사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엽사에게 총기를 반출하면 취할 안전상 조치가 거의 없는 셈이다. 엽사들이 스스로 안전수칙을 지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을 깔고 총기에 GPS 장치를 부착하는 제도가 올 초 시범 운영됐지만 본격 시행은 올해 말에야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엽사가 나쁜 마음먹고 총기 반출할 때 말한 사냥 지역을 벗어나도 제재할 수단이 딱히 없다"고 했다.
철제 포획틀을 이용해 실제 멧돼지를 포획한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경기도 남양주에서 20여년 멧돼지 사냥을 한 B씨는 "대다수 지자체가 5년 이내 수렵장 이용 경험이 있으면 허가를 내준다"며 "최소 10년 이상 현장 경험이 있는 엽사만 허가를 내주는 등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단체 활동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렵 면허와 총포 소지허가 취득 과정에 교육이 있지만 실내 교육 위주고 실습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여년 경력을 가진 박모 엽사는 "예전에는 선배 엽사들과 다니며 협업과 수렵 요령을 익혔다"며 "요즘은 혼자 다니려는 엽사도 많은데 숙련된 엽사들에게 배울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사고 후 일부 엽사 단체는 자체적으로 '나홀로 사냥'을 제한했다. 단체 중 규모가 큰 편인 유해조수방지단, 야생생물관리협회, 전국수렵인참여연대는 지난 4월 후 유해조수 사냥은 반드시 2~3명이 나가도록 자체 규정을 만들었다.
한편 A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5월24일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6일 첫 공판을 받았다. 오는 24일 그에 대한 두번째 공판이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