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현진 기자 = 배우 이현욱(왼쪽부터)과 정유진, 김희선, 차지연, 박훈, 김정민 감독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크레스트72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의 신부'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블랙의 신부'는 사랑이 아닌 조건을 거래하는 상류층 결혼정보 회사에서 펼쳐지는 복수와 욕망의 스캔들을 그린 작품이다. 2022.7.13/뉴스1
그러나 차용환 전처의 아들인 차석진(배우 박훈)이 돌아오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차용환은 차석진이 자신이 원하는 며느리와 결혼만 한다면 자신의 전 재산을 준다고 선언한다(드라마에서 차석진은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렉스의 최상위 등급인 블랙이며, 블랙의 신부가 되기 위한 결혼정보회사 회원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최유진은 남편의 뜻에 따라 블랙, 즉 차석진의 신붓감을 찾는 척 하지만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과연 차석진이 최유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혜승과 결혼하기 위해 차용환 생전에 재산상속을 포기했더라도 이것이 법적으로 유효할까? 즉, 차석진의 사전 상속포기 약속을 받아내면 최유진은 원하는대로 차용환의 단독 상속인으로 재산을 전부 독차지할 수 있을까?
여기서 문제되는 상속의 포기란 상속인이 상속의 효력을 소멸하게 할 목적으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즉, 상속인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다.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게 되면 상속개시 당시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과 같은 지위에 놓이게 된다.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 그 중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면 그 상속인의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의 비율로 남은 상속인에게 귀속되게 된다.
선순위 상속인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하면 그 다음 순위의 상속인들에게 상속된다. 블랙의 신부에서 차용환의 상속인은 배우자인 최유진과 아들인 차석진이다. 그러므로 만약 차석진이 "유효하게" 상속을 포기하였다면 차석진의 상속분은 최유진에게 귀속되고, 최유진이 단독으로 상속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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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상속포기는 피상속인 생전에 미리 할 수는 없고, 상속이 개시된 이후, 즉, 피상속인이 사망한 이후에만 가능하며, 그 방식도 가정법원에 포기의 신고를 하는 등 민법이 정하는 절차와 방식에 따라서 해야 한다. 즉, 상속포기는 원칙적으로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개시지 가정법원에 포기의 신고를 하여야만 효력이 있다. 만약 상속포기기간인 3개월만으로는 상속포기를 결정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상속개시지의 가정법원에 상속의 포기를 위한 기간 연장허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상속포기는 상속포기기간 내에 법원에 신고를 하여야 하며, 이러한 절차와 방식에 따르지 않은 상속포기 의사표시는 상속의 포기로서 효력이 없다.
따라서 아들이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의 재산 상속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작성하였거나 약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효이다. 설령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법원에 아버지 재산에 관하여 상속포기 신고를 하여 법원이 이를 수리하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무효이다.
이와 같이 상속포기를 민법이 정한 절차와 방식에 의한 방법으로만 가능하게 한 이유는 상속포기가 다른 공동상속인이나 상속채권자 등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상속채권자로서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상속인들에게 상속채무 변제를 요구하게 되는데,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했는지 아닌지가 확실하지 않다면 누구로부터 채무를 변제 받아야 할지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 민법에서는 상속포기 여부를 명확히 하고 법률관계를 획일적으로 처리하고자 일정한 방식에 따른 상속포기만을 상속포기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블랙의 신부에서 차석진이 서혜승과 결혼하는 대신 아버지의 재산을 전부 포기하기로 최유진과 약속했고 그 내용을 담은 각서나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민법이 정한 상속포기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법적으로 효력이 없고, 차석진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 여전히 그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차석진이 아버지에게 직접 상속포기 각서를 써주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최유진으로서는 남편인 차용환이 사망한 후 의붓아들인 차석진이 자발적으로 민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상속을 포기해주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남편의 단독상속인이 되어 남편의 상속재산을 전부 물려 받지는 못할 것이다.
양소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