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에도 낙태약은 불법?...법정공방 시작

머니투데이 이세연 기자 2022.08.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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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비영리단체 위민온웹 사이트 접속이 차단된 모습. '불법 식·의약품 관련 정보가 제공되고 있어 접속이 차단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위민온웹 홈페이지 캡처국제 비영리단체 위민온웹 사이트 접속이 차단된 모습. '불법 식·의약품 관련 정보가 제공되고 있어 접속이 차단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위민온웹 홈페이지 캡처


시민단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낙태약 제공 사이트 '위민온웹(women on web)' 홈페이지 접속 차단 조치를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행정소송 첫 재판이 오는 10월로 잡혔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정용석)는 위민온웹국제재단 등이 방심위의 위민온웹 홈페이지 접속 차단 조치를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10월13일로 지정했다.



위민온웹은 여성들에게 임신중지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낙태가 불법인 국가의 여성들에게 해외에서 처방되는 임신 중절 약물을 배송해주는 국제 비영리단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위민온웹 홈페이지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 방심위가 지난해 12월31일 접속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이후 두 번째 차단이다. 위민온웹 등 시민단체는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방심위는 온라인에서 약물을 구매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방심위 측은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전문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을 통해 구입해야 한다"며 "(위민온웹) 사이트에서 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차단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민온웹 측은 접속 차단은 과도한 조치라고 반박한다.

소송을 대리하는 양규응 변호사(법무법인 봄)는 "사이트에서 의약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임신중절에 대한 검증된 정보도 함께 게재되어 있다"며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것은 여성들의 약물낙태에 대한 일반 정보 접근을 제한해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하는 지나친 조치"라고 했다.

이어 "방심위는 홈페이지를 차단하기 전 실질적 당사자인 위민온웹에 사전고지를 하지 않았다"며 "행정법상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소명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않은 것으로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의료현장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기피하는 상황도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후속 입법이 없어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반드시 임신중절을 해야 하는 여성들은 결국 불법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낙태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낙태죄가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제도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을 촉구했다. 2022.4.10/뉴스1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낙태죄가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제도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을 촉구했다. 2022.4.10/뉴스1
온라인에서는 가짜 미프진이 유통되고 있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50일 이내에 사용할 수 있는 임신 중절 약으로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 목록에 포함했다. 낙태가 불법이던 한국에선 여전히 합법적 처방이나 복용은 금지돼 있다. 현대약품이 지난해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심사 중 현대약품 측에 보완자료 제출을 요청했고 현대약품 측은 제출 기한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구체적인 허가 일정은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어리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취약계층 여성들이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2020년에는 가짜 미프진을 300명의 여성에게 판매해 1억여원을 챙긴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중국산 자연유산유도약을 정품 미프진이라고 속였는데, 구매한 여성 중 일부는 과다 출혈 등 부작용을 겪었다.

양 변호사는 "현재 한국 상황에서 위민온웹이 검증된 정보와 낙태방법, 약물을 제공하는 것은 긴급피난이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방심위의 차단 조치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방심위 측은 접속 차단 조치의 대상은 통신망 제공업자들이기 때문에 위민온웹에 소명의 기회를 줄 이유가 없으며, 위민온웹의 주된 콘텐츠가 약물 제공이기 때문에 일부만 차단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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