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연구에 안쓰고 '재테크'에 한눈팔아…"바이오 못믿겠다"

머니투데이 박미리 기자, 김도윤 기자 2022.08.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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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바이오, CB 시한폭탄 째깍째깍 (下)

편집자주 바이오가 한창 잘나가던 2020~2021년. 자본시장에선 바이오로 자금이 몰려들었다. 이때 바이오는 전환사채(CB)로 3조원 이상을 끌어모았다. 이후 바이오에 대한 투자심리는 차갑게 식었다. 주가는 폭락했다. 잘나갈 때 발행한 CB는 독이 됐다. 2023년 대규모 CB 상환 기간이 본격적으로 도래한다. 빨리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바이오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 된다. 시한폭탄의 시계는 빠르게 가고 있다.

돈 가뭄 온 바이오…"우선 살자" 조건 나빠도 자금조달 나선다
투자금 연구에 안쓰고 '재테크'에 한눈팔아…"바이오 못믿겠다"


#면역 세포치료제 개발기업 엔케이맥스 (2,020원 ▲176 +9.54%)는 올해 4월 360억원 규모 CB(전환사채)를 발행했다. 표면이자율은 0%이지만 만기이자율이 7%다. 10개월 전 CB 발행 때만 해도 엔케이맥스가 투자사에 지급한 만기이자율은 1%에 불과했다.

#의료용 바이오센서 제조기업 바이오프로테크 (679원 ▼48 -6.60%)는 올해 6월 15억원 규모 RCPS(전환상환우선주) 발행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 달 후 약속했던 자금이 들어오지 않았고 RCPS 발행은 무산됐다. 현재 바이오프로테크는 거래정지 상태다.



국내 바이오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최근 미중 관계 악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됐고 금리는 지속 오르는 중이다. 이 상황에선 모험자본에 돈이 몰리지 않는다.

특히 국내 바이오는 지난 10여년간 임상 실패, 의도적인 임상 실패 결과 축소 발표로 투자자 불신을 자초했다. R&D(연구개발)를 위해 투자받은 자금을 초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대규모 손실을 본 사례도 있다.



바이오 기업에 자금 조달은 필수다. 본업인 R&D(연구개발)에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기업 대부분은 현재 스스로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한다. 투자금이 없으면 R&D를 위해 인력을 채용할 수도, 임상을 진행할 수도 없다.

최근 자금 부족을 이유로 임상을 중단한 사례도 나왔다. 파멥신 (2,915원 ▼285 -8.91%)은 3년간 진행해 온 재발성 교모세포종 신약 후보물질 임상을 지난달 중단했다. 파멥신의 작년 매출액은 1억원이 안된다. 오랜 적자로 결손금만 254억원이다.

투자금 연구에 안쓰고 '재테크'에 한눈팔아…"바이오 못믿겠다"
사정이 이렇자 최근 들어 이전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한 바이오 기업이 눈에 띈다. CB가 대표적이다. 이자 조건이 줄줄이 붙었다. 작년만 해도 CB를 발행한 국내 바이오 기업 96곳 중 56곳의 만기이자율은 0%다. 여기에다 이자율이 1% 이하인 기업도 10곳이다.


올해는 CB를 발행한 32개 기업 중 3곳만 이자율이 0%다. 이자율이 1% 이하인 기업도 4곳에 불과했다. 일부 기업의 경우 10% 이상의 만기이자율을 책정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많은 바이오 회사가 자금이 필요한데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으니 CB 전환가액을 낮게 설정하고 이자율이 예전 1%였으면 요즘 5%로 올리는 식으로 대체 투자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RCPS, CPS(전환우선주) 등 발행도 늘었다. 벤처캐피탈 임원은 최근 바이오 기업 자금 조달과 관련해 "요즘엔 CB,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사채 성격보다 RCPS, CPS 등 주식 성격 상품에 대한 투자가 많다"며 "발행사(바이오 기업)보다 투자자에 더 유리하다 분류되는 상품들"이라고 전했다.

특히 RCPS는 일정기간이 지난 뒤 주식으로 전환해 경영권에 참여하거나 시세 차익을 꾀할 수 있고, 잘못돼도 원금을 상환받을 수 있다. 보유하는 동안에는 우선주로 보통주보다 배당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만큼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다.

올해 바이오 상장사 중엔 크리스탈지노믹스가 R&D 및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220억원을 RCPS로 조달했다. 전환가액을 최초 전환가액의 70%까지 하향 조정할 수 있는 조건도 붙었다. CB 하향 리픽싱과 같은 효과다.

그나마 악조건으로라도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지금은 뭐라도 발행하면 다행일 정도로 발행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 많다"며 "그만큼 시장은 얼었다"고 평가했다.

한 벤처캐피탈 임원은 "시장이 침체되기 전 펀드레이징(모금)을 받지 못한 곳들은 지금 자금 압박이 심하다"며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낮춰서 자금을 모집하는 게 한 방법인데 직전 밸류에 들어갔던 투자사들이 동의를 하지 않아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다.

결국 기업들의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이 부회장은 "비용 감축 등을 통해 자본을 집중해서 써야한다"며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대표도 "요즘 바이오 기업 대표들을 만나 '성공 가능성이 확실한 임상만 진행해야 한다'고 설득한다"며 "가외 인력을 정리하는 등 생존을 위해 최악의 방법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연구에 투자금 안쓰고 고위험상품 투자, 불신 자초한 바이오

투자금 연구에 안쓰고 '재테크'에 한눈팔아…"바이오 못믿겠다"
결국 바이오 위기 탈출 방법은 주가 상승뿐이다. 하지만 주가는 인위적으로 올리기 쉽지 않다. 전 세계적인 긴축 기조로 주식시장의 불확실성도 높다. 더구나 고금리로 인한 약세장에선 바이오 같은 성장 업종에 대한 시장 평가가 더 박한 편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바이오는 사기 아니냐"란 시장 불신을 뒤집어야 한다.

한국거래소가 2005년 기술특례 상장제도를 도입한 뒤 이를 통해 약 100개 바이오가 코스닥에 상장했다. 그러나 지난 17년간 세계에서 인정받는 신약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없다. IPO(기업공개) 당시 약속한 사업 계획을 지킨 기업도 많지 않다. 우리 바이오의 현주소다.

헬릭스미스 (3,730원 ▲410 +12.35%), 신라젠 (3,170원 ▲40 +1.28%), 티슈진 등 과거 기업가치가 수조원에 달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임상에 실패했다. 주가 폭락 혹은 주식 거래 정지로 이어졌고 개인투자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주가 상승을 이끈 기술이전이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실패한 임상을 지엽적인 지표로 성공이라 우기다 투자자 피해를 키우기도 했다.

또 국내 바이오 스스로 기업 운영에 방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고평가를 받는 지난 시기 쉽게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이 아닌 다른 쪽으로 한눈을 팔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실제 헬릭스미스, 파멥신 (2,915원 ▼285 -8.91%) 등은 투자 받은 돈을 신약 개발이 아닌 초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날렸다. 이후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 운영자금을 확보했다.

회생 가능성이 적은 좀비기업이 주식시장을 기만하며 생명을 연명하는 경우도 일부 눈에 띈다. 가능성이 없는 파이프라인을 시간을 벌기 위해 억지로 끌고 가는 행태도 고쳐야 한다.

최근 달라진 시장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도 아쉽다.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잘 나갈 때 인정받은 기업가치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높은 몸값만 고집하는 행태는 스스로 입지를 좁힐 뿐이다.

특히 위기라고 느끼면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국내 바이오 기업의 위기 인식 수준이 안타까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위기 상황일수록 더 절실하게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단 평가다.

황 대표는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계속 예전 밸류에이션을 고집하면서 시장과 눈높이 격차를 좁히지 못해 시간만 보내는 바이오도 있다"며 "무엇보다 기업 운영이 위기를 맞았다면 경영진과 임원의 보수를 줄이고 연구개발 외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투자자와 투명하게 소통하는 등 절실한 태도를 보여야 자본시장 참여자들도 믿고 투자금 상환을 연기하거나 재투자에 나설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위기라면서 경영 방식에 변화가 없는 채 시장이나 투자자에 협조해달라 하면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지금 바이오는 각자도생의 시기로 안일하게 생각하면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실력으로 신뢰를 되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행히 최근 국내 바이오 벤처 중 자체 기술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기업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 (28,900원 ▲750 +2.66%), 레고켐바이오 (80,900원 ▲900 +1.13%) 등 R&D(연구개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우량 기술이전에 성공하고 파트너와 함께 임상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예전보다 K-바이오를 보는 글로벌 시장의 평가도 개선된 측면이 있다. 최근 주요 바이오의 주가가 저점을 찍고 일부 반등에 나서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두 기업의 기술이전 성과만으로 전체 흐름을 바꾸기 역부족이다. 더 많은 바이오가 연구 성과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대표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신뢰를 잃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신뢰를 회복하려면 기본적으로 연구와 개발이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모자금은 투자자들이 R&D(연구개발)에 몰두해 성과를 내라고 준거지 사옥을 사라고 준 게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R&D 성과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인력 관리를 꼽았다. 구 대표는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라 상장만 하면 핵심 인력이 회사를 나간다"며 "이로 인해 IPO(기업공개) 때 파이프라인이 7개라고 했다가 2~3개만 남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또 "가령 한동안 기업이 임상에 올인해야 한다면 임상을 가장 잘할 사람을 과감하게 채용하고 스톡옵션 등 자원을 몰아줄 수 있어야 한다"며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아 연구 연속성을 가져가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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