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일본, '잃어버렸다'는 비관이 결정적 실패 이유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22.08.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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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김현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1.일본경제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엔화 가치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전날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외환시장에서 장중 1달러 당 135.16엔까지 하락하는 등 지난 1998년 10월 이후 약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2022.06.14.[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엔화 가치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전날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외환시장에서 장중 1달러 당 135.16엔까지 하락하는 등 지난 1998년 10월 이후 약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2022.06.14.


주요국들 대부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지만 유독 금리인상을 못하는 나라. 발행 화폐가 달러와 함께 대표적인 글로벌 안전자산이었지만 어느 순간 가치가 급락해 버린 나라.

요즘 일본 경제에 대한 이야기이고, 온통 비관론이다. 일본 내부에서 더 심각한 목소리가 나오는데, 위기·추락·죽음·침몰 같은 험한 단어들이 쏟아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지금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연말에는 진정되고 내년에는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일본은 예외"라고 단언했다. 계속 디플레이션에 갇혀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경고했다.

일본 경제는 정말 위기이고, 희망이 없는 것일까.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는 걸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일각의 걱정처럼 우리 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경제에 얽힌 여러 궁금함들을 풀기 위해 국내 최고의 일본전문가인 김현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김 소장은 일본에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아 온 일본 연구 2세대 학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이다. 일본 나고야대학교, 츠쿠바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며 일본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다. 지난 2017년 문재인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발탁돼 경제정책을 입안한 적도 있다.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저성장 시대의 생존 전략을 제시했던 김 소장의 2015년 출간 저서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는 최근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다시 읽히고 있다. 김 소장은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착안할 시사점을 찾는데 탁월해 최근 경제 이슈는 물론 아베 신조 전 총리 피격 사건 등에 더욱 눈길이 쏠린 일본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김 소장과의 인터뷰를 △일본 경제의 현황과 전망, 한국 경제와 비교 등 '일본경제편'과 △일본 정치의 문제점과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을 점 등 '일본정치편'으로 나눠 이번 일요일과 다음주 일요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현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김현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일본 경제는 침몰할 것인가
·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년'이란 말은 우리도 계속 들어왔지만 최근 일본 경제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일본 경제는 정말 위기인가요?

▶최근 일본에서 나온 저작이나 언론 보도들을 보면 일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싸구려 일본'이라는 제목의 책에선 일본의 기업들과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엔화 약세에 일본의 임금은 싼 반면 해외 임금은 더 비싸 기업들과 인재들이 일본을 버리고 해외로 나간다는 얘깁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노구치 유키오 히토츠바시 명예교수는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이라는 책을 냈고, 유명한 경영 구루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이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경고했죠. 일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만큼은 맞습니다.

· 최근 초유의 엔저 현상을 보면 일본 경제의 위기 상황이 실감나긴 합니다.

▶미국의 달러, 유럽의 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통화인 일본의 엔화는 안전자산으로서 과거 글로벌 경제위기 때마다 강세가 됐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위기 때도 그렇고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도 엔화가 강세가 아니라 오히려 약세로 저평가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엔화는 안전자산'이라는 신화는 붕괴됐다고 이야기하는 흐름이 있죠.

저는 엔화가 더 폭락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신뢰도 높은 통화이자 안전자산이라는 신화와 믿음에 크게 금이 가고 있다고 봅니다.

·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은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번에 0.75%p 인상)을, 한국은 빅스텝(0.50%p 인상)을 밟고 있는데 일본은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이고 여전히 양적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지금 많은 나라들이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일본만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경제가 아직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조적인 이유로는 정부 부채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일본 GDP(국내총생산)의 256%, 우리돈 1경원 정도에 달하죠. 이런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면 정부 부채의 원리금 상환도 일본 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 일본이 경제가 좀 어렵다고 해도 부동산과 국채 등의 해외자산을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는 등 큰 흔들림은 없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일본이 메이지유신 근대화 이후 150년 간 쌓은 축적의 힘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부동산 등 자산을 사모았고, 다국적화된 기업들은 전세계에 공장 등을 설치하고 시장을 개척해 놨죠. 이런 것이 지금까지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게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일단 엔화가 약세라 일본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는 달러표시로는 더욱더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자랑하던 해외자산의 규모도 이미 서서히 독일에 추월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경제 규모 역전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해외자산 등 몇몇은 독일이 일본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마음놓고 있을 순 없고, 과거와 같은 자신감과 여유도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일본 GDP 성장률 추이 /자료=세계은행일본 GDP 성장률 추이 /자료=세계은행
일본 기업들의 좀비화
· 소장님께선 학부와 석사 전공으로 경영학을 하셨고, 기업과 경영에 대해서도 매우 잘 알고 계십니다. 특히 일본 기업들과는 직접적인 교류 경험도 많으시죠. 일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의 사정은 지금 어떻습니까?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동안 기업들에는 크게 2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큰 흐름의 하나로 다국적기업화입니다. 토요타, 소니 같은 기업들은 정체된 일본에 남아 있다가는 결국 함께 몰락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해외로 나갔습니다. 이들은 어떻든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해외로 나가면 '일본식'을 버리고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덕분에 다국적화된 기업으로 살아남은 겁니다.

또다른 흐름은 좀비화입니다. 일본 정부는 쇠퇴해 가던 기업들에게 엄청난 저금리로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틀을 만들어 줬습니다. 이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선 경쟁력이 없는데 일본적인 토양에서 좀비처럼 살아남았습니다. 'Japan as No.1'의 기라성 같은 일본 기업들이 이렇게 해외로 나가 다국적화되거나, 국내에 잔존해 좀비화되거나 양극적으로 분화됐습니다.

· 일본이 모노츠쿠리(장인정신)의 제조업 기업이나 탄탄한 중소중견기업, 소부장(소재·부품·장비) B2B 기업들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일본이 150년 간 쌓은 축적의 힘이 기업들에도 있죠. 일본이 과거 전쟁을 일으켰던 것도 산업과 기업 기반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패전 이후 재벌이 해체되었다고는 해도 기업들의 역량은 여전해 1950~1970년대에 초고속성장을 했습니다. 나사 하나를 만들더라도 150년 간의 축적 속에서 만들기 때문에 소부장 기업들 중에 뛰어난 기업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축적이라는 것도 잘나갈 때는 축적이지만 세상이 바뀌었을 때는 경우에 따라 비효율이나 경직성으로 나타납니다. 축적의 힘이 어떤 때는 새로운 도전과 적응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 일본 경제의 돌파구로 기업들의 혁신성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평이 많습니다. 특히 디지털화가 잘 안됐다는 얘기가 많은데요. 실제로 어떻습니까?

▶토요타, 소니 같은 다국적화된 기업들은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이런 유형이 아닌 기업들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상장회사에서 목격한 건데, 임원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이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OHP(오버헤드프로젝터)로 이뤄지는 겁니다. 파워포인트를 안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선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그걸 프린트해 OHP 필름으로 다시 만들고,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쏘아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는 겁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지를 물었더니 임원들이 눈도 침침한데 파워포인트는 너무 현란해서 보기가 어려워 그런다고 하더군요. 글자는 큼직해서 보기 편한데 자세한 품목별 매출 추이 같은 시각 자료를 보며 논의하기는 어려운 회의였습니다.

· 일본은 기업들만 아니라 나라 전체적으로 디지털에 뒤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때도 정부가 팩스로 확진자를 집계하던데 옆에서 우리가 보기엔 참 기가 막혔었죠.

▶국민들한테 예방접종 안내를 우편으로 보냈는데 우리에겐 참 생경했죠. 글로벌 스탠더드에 너무 뒤떨어졌고, 정부의 방역대책으로도 부실했습니다. 일본 스스로도 너무 아날로그라고 해서 정부가 디지털청을 신설했습니다. 팩스 문화 같은 아날로그 문화 없애자구요. 하지만 변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 정말 일본 기업들은 앞으로 별 희망이 없는 건가요?

▶잃어버린 30년에 대해 일본 기업들은 처음엔 정치와 관료 탓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들 스스로 '우리가 잘못했구나', '우리가 바뀌어야겠구나' 하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발빠르게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는데 이들이 앞으로 일본을 바꾸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축적의 힘만을 믿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이 최고라고 자만하면 안되겠죠. 또 '일본은 고령화되고 활력도 없어 어쩔 수 없다'는 풍조가 일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달러/엔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일본 엔화가 달러 대비 20년 만에 최저를 경신하며 밀렸다.  이날 오전 10시 40분 기준 달러/엔 환율(엔화 가치와 반대)은 0.29% 올라 129.27엔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는 1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130엔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2022.4.20/뉴스1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달러/엔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일본 엔화가 달러 대비 20년 만에 최저를 경신하며 밀렸다. 이날 오전 10시 40분 기준 달러/엔 환율(엔화 가치와 반대)은 0.29% 올라 129.27엔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는 1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130엔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2022.4.20/뉴스1
잃어버린 30년
·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어느새 20년을 넘어 30년이 됐습니다. 지난 과정이 어떠했었죠?

▶일본 경제는 지난 30년간 4차례의 엄청난 충격을 겪었습니다. 첫번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버블 발생과 붕괴입니다. 당시 주식은 4~5배, 부동산은 3~4배가 오르다 갑자기 폭락했죠. 두번째는 1997년 외환위기입니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5%까지 뛰었습니다. 이 속에서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죠.

2008년 세번째 충격이 옵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전후 최대의 경제 하강을 겪게 됩니다. 이 충격이 얼마나 컸냐면 그렇게 보수적인 일본 국민들이 자민당을 버리고 민주당을 선택하는 정권교체까지 일어났습니다.

2012년에 일본 국민들은 다시 자민당을 선택했고, 이후 경제 부흥을 노렸는데, 2020년 코로나 충격이 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충격이었고, 그 회복도 우리보다 더디죠. 요시미 슌야 도쿄대 교수는 지난 30년이 실패와 충격의 30년이었다고 규정했는데, 일본 경제는 정말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 일본 경제가 30년 동안이나 실패한 이유는 뭘까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Japan as No.1' 같은 신화가 있었죠. 그런데 그 시기에 일본은 미국과 패권전쟁을 벌였고, 결국 패배했습니다. 이 미일 패권전쟁의 후유증으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일 패권전쟁에서 진 이후 일본은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변곡점에서도 실패했습니다. 한국이 세계화와 디지털화에 절묘하게 올라타며 승승장구한 것과 대비되는 역사입니다.

요시미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남탓만 했습니다. 1980년대까지 경제를 일으킨 건 기업들이고, 기업들이 너무 잘나가다 보니 미일 패권전쟁이 일어난 건데, 정치인들이 너무 지나치게 친미적이어서 미국에 많이 양보했고, 관료들은 뒷수습에 실패했다며 정치인과 관료 탓을 했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일본 기업들도 똑같이 휩쓸려 우를 범했다고 요시미 교수는 지적합니다. 닛산자동차, 도시바, 샤프, 산요 등 기라성 같던 기업들이 몰락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니 결국 일본 기업들도 지난 30년간 실패의 역사를 썼다는 겁니다.

· 30년 동안 계속된 실패를 겪어온 일본 국민들의 좌절감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의 '실패의 연속'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 과도한 비관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30년의 결정적 이유를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 '잃어버렸다'는 말을 꼽고 싶습니다.

버블이 발생했다가 붕괴됐으면 사실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버블은 이상한 것이기 때문에 꺼지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 정상을 '잃어버렸다'고 규정한 것이죠.

미디어들마다 일본은 경제를 잃어버렸다고 했고, 기업들도 경제가 어려우니 투자와 고용을 줄여야겠다고 했습니다. 가계도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자고 했죠. 잃어버릴 것이라는 예측이 실제로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순간 진짜 잃어버린 10년이 되었고, 그게 잃어버린 20년과 30년을 낳았습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그칠 수도 있었던 것이 잃어버린 30년이 된 경제비관론의 자기실현적 결과입니다.

연초 이후 엔원 환율 추이연초 이후 엔원 환율 추이
한국의 추월
· 과거 우리는 일본과 경제적 격차가 컸고, 어쩌면 상당히 부러워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경제를 우려하는 이야기를 나누니 참 시대적 변화가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에서 일본 경제의 침몰 가능성을 따져보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 대해 2가지 정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러움이었습니다. 우리는 추격하는 입장이었기에 세계 최강 경제국 일본이 대단히 부러웠죠. 부러움은 추격의 한 동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식민지 경험을 비롯해 후진적인 처지에서 나온 열등감이었습니다. 부러움은 때로 추앙이 되기도, 열등감은 자기비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삼성전자를 필두로 추격에 성공하고, 점점 추월하는 우리 기업들이 나타났는데 일본에 부러움과 열등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감히 일본을 이길 수 있어?'라고 반응했습니다. 저는 이런 인식틀을 가졌던 세대를 '소니세대'라고 부릅니다.

소니세대는 월급을 받아 소니 워크맨 하나 사는 게 인생 최고의 자기 선물이었습니다. 결혼할 때는 소니 TV 장만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이 세대가 일부 그런 인식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현재 10~20대와 같은 신세대들은 그런 소니세대와는 매우 달라 보입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사이 소니세대와는 완전히 다르고 새로운 세대가 탄생합니다. 저는 이 세대를 '김연아세대'라고 부릅니다. 일본에 대해 부러움, 동경 같은 것 없습니다. 스스로 열등감, 자기비하 같은 것도 없습니다. 쿨한 감각으로 세상을 대하는 이들입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인 한국의 한 선수가 피겨강국 일본의 유명 선수를 제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김연아세대는 일본과 대등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기업이 만든 TV로 한류 드라마를 보며 자랐습니다. 일본은 물론 미국이든 중국이든 동경도 비하도 1도 없습니다. 사회가 공유한 자산과 자본을 향유하면서 미래로 나갈 세대입니다.

·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국내외에서 요즘 꽤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양한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이미 2015년에 한국의 실질임금이 일본의 실질임금을 넘어섰습니다. 물가 수준을 감안한 1인당 실질소득은 2018년에 추월했습니다. 노구치 교수는 올해 한국이 명목소득을 추월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신산업이 기존산업을 대체하고 새로운 기업들이 잘 탄생하는 선순환 속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습니다.

·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변곡점에서 우리가 잘 대응한 것이 일본을 추격하고 추월할 수 있는 동인이 된 것 같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개발도상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까지는 꽤 가지만 중진국 함정에 빠져 2만달러, 3만달러까지 못가고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1만달러까지 갔던 우리나라는 1990~2000년대에 두번째 기적인 '세계화의 기적'을 이뤄내 2만달러를 넘어 3만5000달러까지 성장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 우리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고(故) 박세일 교수가 세계화라는 미래 비전을 제안했고 관련 정책을 주도하셨죠. 그 시기에 삼성전자가 드디어 반도체 결실을 냈고, 현대자동차가 세계화를 통해 자동차 수출을 늘렸습니다. LG전자가 백색가전으로 서구의 전자회사들을 따라잡고 프리미엄 가전으로 넘어가려 몸부림치며 성장하던 시기가 1990~2000년대였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우리는 세계화의 흐름에 디지털화의 흐름까지 동시에 잘 올라탄 국가가 되었습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국민소득 3만5000달러까지 성장한, 세계사적인 쾌거를 이룩한 나라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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