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파트 단지서 주민이 찍은 '동물학대 제보 사진'. 한 견주가 작은 강아지의 앞발 하나를 손에 쥔 채, 걸어가고 있다./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집안에선 아무런 소리가 안 났다. 쥐죽은 듯 조용했다. 경찰이 재차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은 같았다. 고요했다. 사람이 있는데 안 나오는 건지, 아예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학대 제보가 들어온 견주의 집으로 향하는 부산 해운대구청 공무원(왼쪽)과 경찰(오른쪽). 그러나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고, 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사진으로 본 강아지 얼굴이 떠올랐다. 잔뜩 꾀죄죄한 얼굴은 맨눈으로 보기에도 피부가 안 좋아 보였다.
게다가 제보자가 찍은 다른 사진에서, 견주는 강아지 앞발 중 한쪽 다리만 손에 쥐고 걷고 있었다. 마치 비닐봉지를 들듯이. 강아지는 대롱대롱 불안하게 매달려 있었다.
답답하고 화나고 무력하고 또 무력했다. 그러나 굳게 닫힌 현관문 앞에서 우린 아무것도 못 했다.
2년 전에도…48도 육박하는 차 안에 강아지 '방치'한 그 견주
2년 전에도, 해당 견주는 48도에 육박하는 차 안에 강아지를 방치해 크게 학대 논란이 일었다. 그 차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했다. 당시 동물보호단체가 이 강아지를 구조해, 좋은 보호자를 찾아 새 삶을 살게 해주었다./사진=동물권단체 케어
"강아지가 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잔뜩 배어 있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이 내게도 들려왔다. 한낮에 달궈진 숨 때문인지 코끝이 턱 막혔다. 다시 떠오른 사진 속 강아지 모습 때문만은 아녔다.
견주가 2년 전에도, 다른 강아지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2년 전, 아파트 주차장 차 안에 방치돼 있던 강아지의 구조 직후 병원에 간 모습(위 사진의 강아지와 동일).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이 강아지는 무사히 구조 되었으나, 다른 강아지가 그 자릴 채웠다(아래 사진)./사진=동물권단체 케어
"줘버려. (강아지) 하나 또 사줄게."
실제 그 말대로 된 거였다. 강아지는 구조돼 좋은 보호자에게 입양 갔으나, 빈자리엔 새로운 강아지가 채워졌다. 차 안에 둔 것도 동물 학대 고발은 했으나 처벌 받지 않았다. 당시 구조에 동참했던 케어 관계자는 "더운데 개를 둔 건 문제지만, 학대를 입증하기엔 증거가 미약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강아지를 48도에 육박하는 차 안에 방치했던 견주는, 동물보호단체가 해당 강아지를 구조해 데려가자 새로운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이 사진). 기사 메인 사진의 견주가 앞발 하나를 쥐고 걷는 강아지와 같은 강아지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보자가 찍은 강아지 사진을 받아, 설채현 수의사(놀로 원장, 동물 행동 교정 전문가)에게 보여줬다. 강아지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설 수의사는 "우선 앞다리 관절이 당연히 걱정되고, 얼굴도 저런 상태라면 피부 염증이나 2차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했다.
밤새 400km 달려온 동물보호단체, 그리고 함께한 좋은 주민들
강아지를 구조하기 위해 경기도서 부산까지 400km를 새벽에 달려간, 차성경 학사모 대표(맨 왼쪽)와 학사모 활동가(가운데), 정성용 캣치독 총괄팀장(가운데). 그리고 강아지를 구조하기 위해 모인 동네 주민들(사진 오른편)이 의자에 앉아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게 반복일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또 구조하러 갔다. 이 강아지에게도 새 삶을 살게 해주겠단 생각만으로. 차성경 학사모 대표와 정성용 캣치독 총괄팀장은 8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밤과 새벽에 승합차에 올랐다. 강아지가 들어가길 바라는 케이지를 싣고서, 경기도서 부산까지 400여 km 거리를 내달렸다. 그러느라 밤잠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나도 아침 10시에 서울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기차표는 밤 10시 10분 '막차'로 끊었다. 견주의 예전 강아지가 한 번 구조되었으므로, 이번엔 오죽 경계심이 심할까. 당연히 쉽지 않아 오래 걸릴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바랐다. 돌아올 땐 꼭 그 강아지와 함께 올 수 있기를.
부산역에 도착해 견주가 산다는 아파트로 갔다. 현장엔 차 대표와 학사모 활동가, 정 팀장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동네 벤치엔 같은 동네 혹은 인근에 사는 주민 10여 명이 모였다. 대부분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아, 아끼며 함께 사는 이들이었다. "여기 먼 곳까지 마다하지 않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벤치 앞 테이블엔 틈틈이 먹으라고 사주신 토스트와 커피와 물이 가득 준비돼 있었다.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했다. 점심도 못 먹었으나 배고프지 않았다. 집 안에 있으면 보기도 힘든 그 강아지를, 어떻게 하면 구조할 수 있을까. 오로지 그 생각에만 골몰했다. 차 대표도, 정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폐차 직전 견주의 차 안에…'쓰레기'가 가득했다
2일 촬영한 견주의 차량 모습. 사고로 뒤편이 다 찌그러지고 폐차 직전의 상태로 보인다. 내부엔 쓰레기가 가득해 악취가 심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일단 견주와 대화하고자 노력했으나, 제보자가 안다던 그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떴다. 경비실로 호출했으나 받지 않았다. 주민 몇몇은 거의 항상 개를 데리고 다닌다는 견주가, 혹시 근방을 돌아다니지 않는지 주위를 살피러 다녔다.
나와 차 대표, 정 팀장은 제보자 안내에 따라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견주의 차를 보러 갔다. 뒤쪽이 특히 심하게 망가진, 거의 폐차 직전으로 보이는 차. 그 안엔 쓰레기며 잡동사니 같은 게 가득했다. 가까이 가니 마스크를 뚫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 아래, 바닥까지 쓰레기가 많이 놓여 있었다.
강아지를 가족으로 오롯이 살게 해주는 이를 '보호자'라 한다면, 견주는 그리 부르기엔 다소 불안하게 느껴졌다. 강아지에 대한 '소유권'은 있을지 몰라도. 차 상태로 모든 걸 미루어 짐작할 순 없겠으나, 좋게 생각하기엔 강아지 상태가 이미 좋지 않아 보였으므로. 2년 전엔 40도가 넘었던 그 차 안에, 또 다른 강아지가 방치돼 있었으므로.
'반복 학대' 제보에도…현관문도 못 넘는 부실한 법
동물학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견주의 집을 찾은 차성경 학사모 대표와 정성용 캣치독 총괄팀장, 해운대구청 공무원과 동물보호감시원과 경찰들./사진=남형도 기자
이제 기댈 수 있는 건, 위의 동물보호법 제14조였다. 차성경 학사모 대표의 연락으로, '격리 권한'이 있는 부산 해운대구청 공무원과 동물보호전담원이 나왔다. 또 이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경찰관 2명도 함께 나왔다.
우린 학대행위가 의심되는 견주 집 앞으로 갔다. 문이 열리면, 우선 강아지 학대 여부 등을 면밀하게 살필 계획이었다. 학대가 확인되면, 구청 공무원 권한으로 격리한 뒤 병원에 데려가면 되었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갔다.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수차례 반복하고 기다렸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심지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크하면 강아지가 소릴 내지 않겠냐고 구청 공무원이 물었으나, 제보자는 "만났던 강아지는 짖는 등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것 같다고 했다.
문도 안 열리니, 별수 없이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이렇게 다 모여서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허탈했다. 속상해하던 정 팀장이 경찰에게 "어떻게든 문을 열어 확인할 방법이 없느냐"고 했으나, 경찰은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주거침입죄' 때문에 강제로 열 수 없다"고 했다. 또 "사람이 위급한 경우엔 모르겠으나, 동물이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동물보호법엔 분명히, '동물이 학대를 당했을 때 행위자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행위자가 문을 열지 않았을 땐 어떻게 해야 한단 조항 같은 건 없었다. 반면, 형법 319조엔 분명히 명시돼 있으니 이들이 깊이 몸을 사릴 수밖에. '사람의 주거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그러니 고작 동물을 보호한다는 법이, 현관문을 안 열어줬을 때 그걸 넘을 방안조차 없는 부실한 법인 거였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학대행위가 의심되는 제보가 있을 때조차도.
기다림 끝에 만난 견주 아버지, "잘 있는 애 왜 괴롭히냐"며 호통
동물학대 제보가 들어온 견주의 집 근처 계단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정성용 캣치독 총괄팀장(왼쪽)과 차성경 학사모 대표(오른쪽).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습하고 무더운 공간이라 견디기 힘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삼삼오오 아파트 앞에 모인, 강아지를 구하겠단 이들의 진심은 이미 차고 넘쳤으나, 그 뜻대로 구조하기엔 법이 너무나 무력했다. '동물 구조'가 어렵단 얘긴 많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그 벽에 부딪혀보는 건 처음이었다.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그저 멍해졌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견주를 우연히 만나거나, 아니면 견주와 산다는 아버지를 만나 설득하거나. 아무래도 밤까지 길어질 것 같아, 동네 주민들이 사다 준 토스트를 억지로 입에 욱여넣었다. 입맛도 없고 속상해서 애써 식도로 밀어 넣는데, 한 주민이 "찬물 드세요"라며 물 한 잔을 건넸다. 그 덕분에 목에 울컥하고 걸린 무언가가 겨우 아래로 내려갔다.
실은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 강아지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 그러나 도저히 모른척하지 못해 이 덥고 습한 날씨에 모인 이들. 몇 시간이 지나니 땀이 비 오듯 흘러 머리가 축축해질 정도인데도 집에 가지 않고 걱정하는 이들. 동네 인근까지 돌아다니며 견주와 강아지를 만나겠다던 이들. 그 동그랗고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차 대표가 "견주 집에 한 번 더 가 보자"고 했다. 정 팀장과 함께 다시 집 앞으로 향했다. 역시 인기척이 없어 돌아서는데, 엘리베이터가 그 층에 멈추더니, 한 남성이 내렸다. 견주 아버지였다. 버럭버럭 화를 내던, 그와 나눈 대화가 이랬다.
"안녕하세요, 동물보호단체서 나왔는데요."(정 팀장)
"가세요! 잘 있는 애를 왜 그래. 응? 잘 있다고. (강아지) 등록 다 하고 잘 있어. 왜 우리 애를 괴롭혀요."(견주 아버지)
"그게 아니고, 댁의 견주님이 동물보호법 고발을 당할…."(정 팀장)
"아니, 고발은 내가 할 거야. 당신들한테! 개인 생활을 이렇게 방해해도 되느냐고. 응? 개한테 물어봐, 개가 행복한지 안 한 지는. 가!"(견주 아버지)
그리고는, 그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동네 주민들 "견주가 강아지에게 애착 심한듯…도움 필요해보여"
강아지를 구조하기 위해 모인 동물보호단체(학사모, 캣치독팀)와 동네 주민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주민들은 "견주가 강아지에게 애착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많이 의지하는 듯 보인다는 거였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늘 강아지를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견주에겐 일종의 위안을 주는 존재인 것 같단다. 그래서 견주의 그런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강아지만 바뀔 뿐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견주 아버지도 혹여나 자녀에 대한 말 못 할 어려움이 있는 거라면, 주변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영문 모를 강아지는 아무 죄가 없지 않은가. 진정 견주에게 강아지가 위안이고 소중하다면, 제대로 돌봐야 하는 거였다.
앞발 하나를 붙잡고 걸어가고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두는 건, 동물보호법을 잘 따져 학대 여부를 제대로 판단해야 하는 거니까. 그게 학대로 판단된다면 반드시 분리하게끔 돼 있으니까. 견주와 강아지의 모든 사정은 다 알지 못할지언정 말이다. 그것도 강아지 학대 의혹이 벌써 두 번째라면.
동물보호법에 '출입·검사' 있어도…구청 공무원 "주거침입 고소당한다"며 거부
어둑어둑한 저녁에 또 다른 경찰관 두 명과, 해운대구청 공무원, 동물보호감시원이 견주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재차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들과 함께 다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나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속절없이 내려왔다. 경찰은 아버지에게 연락해보겠다고 관리실에 가더니 이윽고 돌아갔다. 구청 공무원 세 명만 현장에 남았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는 게 답답하고 속상했다. 동물 복지를 잘 아는,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에게 연락했다.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별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했다. 김 교수는 동물보호법 제39조 제1항을 알려줬다. 내용이 이랬다.
동물보호법 제39조 제1항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동물의 보호 및 공중위생상의 위해 방지 등을 위하여 필요하면 동물의 소유자등에 대하여 동물이 있는 장소에 대한 출입·검사를 할 수 있다. 그 계획을 미리 통지할 경우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엔, 착수할 때 통지할 수 있다.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김 교수도 "이런 건(동물보호법 제39조) 불법 개농장이나 도축장 정도가 아니면, 실제 적용하기 어렵다"며 "담당 공무원이 이 리스크(위험 부담)를 절대 감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주거침입죄를 방어해줄 정도의, 강력한 법은 아니란 얘기였다.
구조하려면 '개고생'에, '회의감'까지 들게 만드는…약해빠진 동물보호법
동네 주민들이 저녁 식사로 사다준 김밥과 쫄면 등 분식과 음료수. 정성용 캣치독 팀장이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는 동안 견주 아버지가 집에 다시 돌아왔다. 차 대표와 정 팀장은 "강아지를 구하려고 그 멀리서 여기까지 왔다"며 구청 공무원들에게 가서 만나보기라도 하자고 했다. 설득 끝에 견주 집에 올라갔고, 아까와 비슷한 견주 아버지의 호통이 반복됐으며, 구청 공무원들은 별다른 걸 하지 못하고 내려왔다. 계속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강아지의 안위를 살피고 구하려는 이들만 왜 이리 힘든 걸까. 아파트 주변을 빙빙 돌다, 망연자실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여름밤 모기들마저 뿌리칠 힘이 없어 놔두게 됐다. 차 대표와 정 팀장도 분개하다, 설득하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이내 말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차 대표는 "그동안 다닌 구조 현장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허탈하게 말했다. 정 팀장도 "현장에서 학대견을 구하려고 해도, 동물보호법이 미비해 힘든 일이 너무 많다"며 "한 번은 개농장 구조에 나섰다가 고발당했었다"고 했다.
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가 구조했거나 구조 중인 동물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속상하고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걸 기꺼이 한다는 건, 보람을 느끼기 전에 좌절하기 쉬운 일, 그러니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어떻게든 힘을 보태주었으면 싶다고./사진=학사모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csamo%ED%95%99%EC%82%AC%EB%AA%A8/featured)
자기 강아지를 40도 넘는 차 안에 두어도 얼마든 또 사다 키울 수 있는 나라. 학대가 의심돼 가도 현관문을 안 열어주면 문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나라. 문을 열어줘도 큰소리치면 구청 공무원조차 별말 못 하고 발길을 돌리는 나라.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경기에서 부산까지 달려가 24시간을 꼬박 보내도, 당당히 소유권을 '박탈'하는 게 아니라, 자정까지 전전긍긍하게 만들다 결국 거기서 잠을 자게끔 만드는 나라.
강아지를 장난감 취급해 논란이 되었던 '마스카라 푸들 학대'. 학사모와 캣치독팀이 함께 구조한 뒤 새 삶을 찾았다(오른쪽)./사진=학사모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csamo%ED%95%99%EC%82%AC%EB%AA%A8/featured)
그런 생각에 치여 막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내내, 몸이 미칠 듯이 피곤해도 잠이 하나도 오질 않았다.
제보자 설득으로 부산의 한 병원에 데려갔을 때의 강아지의 뒷모습./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자정이 넘어가자 주민들은 차성경 학사모 대표와 정성용 캣치독팀 팀장을 위해 숙박까지 각각 잡아줬다. 한창 휴가철이라 변변찮은 숙소도 15만 원이 넘어간다며. 차 대표와 다른 학사모 활동가, 정 팀장은 강아지를 구조하기 위해 부산에서 24시간을 더 머물렀다. 그러나 여전히 강아지를 구하지 못했다.
구조 현장에서 내내 함께하며 속상해하던 제보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우연히 본 뒤로, 그 강아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단다. 반드시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견주를 설득해 강아지를 한 번 안아봤었던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강아지가 너무 작고 가벼웠어요. 3kg도 안 됐을 거예요. 그런데요. 제 품에 안았는데, 갑자기 팔목을 혓바닥으로 핥아주는 거예요. 따뜻하더라고요."
무언가 자극에도 별 반응이 없던 강아지였기에, 제보자는 무척 마음 아파했다. 핥아준 게 왜 그리 기억에 남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저한테 꼭 구해달라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