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하락한 건 휘발유 등 정유제품의 소비 감소가 계속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고갈 에너지원인 원유는 그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 측 부족이 가격 상승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현재는 전쟁 장기화, 금리인상 기조로 수요가 줄어 유가가 하방압력을 받고 있으로 보인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7월 1주차 휘발유 수요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13.2% 감소했고 시간이 지나며 회복세를 보이는 줄 알았는데 초단기 수요가 재차 급락했다"고 분석했다.
원유 인버스·곱버스 상품에 뭉칫돈 넣는 개미들WTI 가격은 지난 6월 배럴당 120달러 선을 웃돌았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둔화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세가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강세 지지 요인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8일 배럴당 122.11달러를 기록한 이후 지난 4일까지 약 27.49% 떨어졌다.
이에 따라 원유 가격에 역으로 베팅하는 인버스, 2배 베팅하는 곱버스 상품에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7개의 원유 인버스, 곱버스 상품들의 총 거래대금은 올해 초 1월3일 25억8200만원이었으나 8월5일 674억9000만원으로 증가했다. 규모가 약 26.14배 커진 것이다.
그중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은 5일 하루 동안 217억5900만원이 거래됐고 올해 거래대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을 기록했다. 이날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은 전 거래일 보다 5원(3.85%) 상승한 135원에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아직 유가가 추가적으로 급락한다고 쉽게 예단할 순 없다. 수요가 감소해도 공급 쪽에 충격을 주는 국제정치·지정학적 요인들이 남아있어서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유 증산을 위해 중동 국가를 방문했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증산량이 발표됐다. 중동 원유 증산의 키를 쥐고 있는 산유국협의체 OPEC+(오펙 플러스)는 다음달 원유 증산량을 하루 10만배럴로 결정했다. 이는 7월과 8월 일평균 증산량 64만8000배럴의 15%에 불과한 것인데 OPEC+는 '추가 생산 여력이 많지 않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균형 수준인 배럴당 80달러 가까이 하락해 OPEC+의 대규모 증산 유인이 크지 않았다"며 "'점진적 증산을 통한 석유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하는 OPEC+ 공급 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한 상방과 하방경직성이 모두 강한 가운데 향후 12개월 동안 배럴당 80~120달러를 등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유가의 잠재적 리스크로 남아 있다는 게 업계는 관측한다. 변동성이 높은 만큼 섣부른 유가 상승·하락 베팅엔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제반 에너지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들이 에너지 가격의 하향을 시사해주고 있지만 유럽내 러시아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유가의 하방 경직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급락해 배럴당 80달러대까지 떨어진 5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