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김명민? '진짜 이순신'은 다르다…"꼬장꼬장한 노인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08.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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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23-①이순신의 모습 찾아온 김세랑 작가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찐터뷰'의 모든 기사는 일체의 협찬 및 광고 없이 작성됩니다.

왼쪽이 이순신 국가표준영정(①). 오른쪽은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미니어처(②)왼쪽이 이순신 국가표준영정(①). 오른쪽은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미니어처(②)


①하얗고 매끈한 피부. 선명한 이목구비. 온화한 눈매. 한 눈에 들어오는 미중년의 모습.



②검고 거친 피부. 깊게 파인 주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눈매. 꼬장꼬장할 것 같은 인상.

어떤 게 실제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가까울까? 안타깝게도 이순신 장군 생전 혹은 서거 직후에 그려진 초상화가 없기에 우리는 역사적 창의력을 발휘해 그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은 ①번에 가까울 것이다. 1953년 그려진 정부표준영정. 최근 개봉한 영화 '한산'의 박해일 배우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 배우도 떠오른다. 신묘한 계책으로 왜적을 박살내고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에 걸맞는 그 모습.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실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무과 급제 이후 줄곧 군인으로 살았다. 함경도부터 전라도까지 전쟁터를 돌아다녔다. 뽀얗고 말끔한 피부일리가 없다. 임진왜란 당시(47~54세)에는 각종 스트레스에 건강까지 무너져가고 있었다. 영락없이 쇠약한 노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②번이 '진짜 이순신'에 가까운 묘사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②번은 미니어처 아티스트 김세랑 작가가 2013년 발표한 실제 이순신 장군 6분의1 크기의 피규어다. 김 작가는 1991년 미니어처 아티스트로 데뷔한 후 30년째 장군에 대해 연구해온 집념의 예술가였다.


'찐터뷰'는 이런 김 작가를 지난 2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래서 '박제된 성웅'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찾는 과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당신은 '진짜 이순신'을 아는가?
"이순신은 내추럴 본 히어로(natural born hero)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비범하고, 남들이 아무도 생각 못하는 전략을 갑자기 만들어내서 왜적을 무찌르지 않았어요. 슈퍼맨이 아니란 뜻이죠."

김세랑 작가에게 '이순신에 올인한 이유', 그리고 '이순신의 실제 모습을 찾는 것의 의미'를 묻자 이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자.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사실 현대에 보여지는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는 평면적인 측면이 있다. 좀 '신선' 같은 모습 같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난중일기만 읽어봐도 이순신은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투를 앞두고 밤새 끙끙 앓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새 고민한다. 그렇게 걱정하다 보니 토했다는 기록도 난중일기에 너무 많다."

-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인가.

▷"명량대첩에 나가기 직전에는 인사불성이었다고 봐도 된다. 자기도 감당이 안 된 거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능력 밖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쓰고, 지혜를 짜내봐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그러다 신경쇠약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 이순신은 그럼 어떻게 승리한 것일까.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짠다. 지혜와 용기를 쥐어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덕을 최대한 발휘해서 부하들을 다독인다. 또 필요하면, 자신이 가진 냉철함을 최대한 꺼낸다. 군령을 어긴 부하들을 불쌍해하면서도, 결국 베어버리면서 군기를 유지한다. 그렇게 출전해서 승리했다. 이런 모습이 위대한 것 아닌가."

- 장군의 그런 면모를 피규어에 담으려 한 것인가.

▷"표준영정이나 영화·드라마에 대한 불만이 뭐냐면, 그분의 인생과 고뇌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깨부셔야지만, 이순신의 실체, 즉 본질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다. 인간적인 한계를 어떻게든지 극복하고, 이겨내고, 그걸 뛰어넘는 모습. 그게 바로 이순신이다.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은 꼬장꼬장한 노인네"
실제 '난중일기'를 보면 우리가 가진 '성웅 이순신'의 모습은 많이 깨진다. 김 작가가 언급한 대로 전투를 앞둔 부담감에 토하고 잠을 못 이루는 건 예사다. 앙숙 원균에게 '음흉하다'며 악담을 늘어놓을 뿐만 아니라, 조력자 권율에게도 '망령되다'는 혹평을 남겼다. 그가 비난을 하지 않은 인물은 선조와 절친 류성룡 밖에 없다고 봐도 된다. 본인에 대한 평가 역시 '자기학대에 가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격하다.

김세랑 작가는 이런 이순신의 모습을 "꼬장꼬장한 노인네"라고 평가했다. "늙고 지쳤으며 짜증·두려움·신경질·화병과 싸우고 있는 날카로운 한 사람"이라고도 설명했다.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이면서, 욕도 잘하고, 동시에 몸은 망가져서 신경쇠약에 걸린 한 명의 인간. 그러면서도 임금과 백성에 대한 충성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그런 군인.

김세랑 작가의 2013년 이순신 장군 미니어처(6분의1 크기). 얼굴 윤곽 등은 이순신 장군의 5대손 이봉상 장군의 초상화에서 따왔다. 표정에는 자신이 연구해온 '이순신 캐릭터'를 담았다. 18~19세기 두정갑을 입힌 것에 대해 김 작가는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타협'했다고 했다. 오는 10월 공개될 신작(4분의1 크기)에는 조선 초기 두두미갑에 약간의 창의력을 가미한 갑주를 입힐 것이라 한다./사진=김세랑 홈페이지김세랑 작가의 2013년 이순신 장군 미니어처(6분의1 크기). 얼굴 윤곽 등은 이순신 장군의 5대손 이봉상 장군의 초상화에서 따왔다. 표정에는 자신이 연구해온 '이순신 캐릭터'를 담았다. 18~19세기 두정갑을 입힌 것에 대해 김 작가는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타협'했다고 했다. 오는 10월 공개될 신작(4분의1 크기)에는 조선 초기 두두미갑에 약간의 창의력을 가미한 갑주를 입힐 것이라 한다./사진=김세랑 홈페이지
김 작가는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캐릭터, 한 가지 성격만 갖고 있지 않잖나. 양면성과 복합성을 갖고 있는 게 인간"이라며 "그렇게 봐야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순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인물의 얼굴을 표현할 때 그런 모습들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을 자꾸 이순신을 '내추럴 본 히어로'로 묘사하려 한다. 그렇게 우러러보려고 한다"며 "그런 식으로 할수록, 이순신의 이미지는 왜곡된다. 이순신의 진짜 본질과는 계속 멀어진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의 경우 고등학생 때 난중일기를 직접 읽어본 후 '진짜 이순신의 모습'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니어처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고 관련 작품을 만들어온 이유라고. 특히 2013년 6분의1 피규어를 만드는 것에 공을 들였다.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인 이봉상 장군의 초상화에서 얼굴을 따왔고, 자신이 연구한 '인간 이순신'의 캐릭터를 쏟아부었다.

그는 "단순 외모만 표현한다면 이봉상의 초상화 그대로만 모사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순신을 올바로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다"며 "한국 전통 초상화의 전신사조(傳神寫照)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외형을 모사하는 것은 기본에 깔고,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표현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인간 이순신, 한계를 뛰어넘은 그 순간
김세랑 작가가 발표한 2013년 작품은 그 당시 충격이었다. 그을린 피부를 묘사한 것을 두고 "이순신이 흑인이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은 입체적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세간에서 '진짜 이순신'에 가장 가까운 모습 중 하나로 김세랑 작가의 작품을 거론한다.
김세랑 작가가 오는 10월 공개할 이순신 장군 미니어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김세랑 작가가 오는 10월 공개할 이순신 장군 미니어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그는 10년만에 새로운 이순신 장군의 미니어처를 만들고 있다. 이르면 오는 10월 공개될 게 유력하다. 일단 크기를 6분의1에서 4분의1로 키운다. 2013년 작품에서는 18~19세기 두정갑을 입혔었지만, 이번에는 조선 전기 고위급 무관이 입었던 홍색 두두미갑을 준비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도 업그레이드 작업 중이다. 10년 전 평상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묘사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명량대첩 당시의 표정을 재현한다는 계획이다. 12척의 배로 적군 133척을 물리친 그 기적적 전투. 그때의 이순신 장군.

그러면서 김 작가는 작업 중인 '이순신의 얼굴'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아랫 입술을 치아로 깨물고 있는 표정.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김 작가는 다음처럼 설명을 이어갔다.

"이순신의 강인함이 가장 크게 드러난 순간이 명량해전 때라고 봅니다. 신체적으로 가장 취약해져 있었고, 정신력이 극도로 분출된 시기죠. 이순신은 왜적 마지막 한 놈까지 다 잡아죽여야 한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분입니다. 절제된 순간이 아니라, 무인으로의 기질이 폭발하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새 작품의 얼굴에는 확실하게 '분노'가 담겨있었다. 어찌보면 고통받는 것 같기도, 다르게 보면 슬픈 표정 같기도 했다. 김 작가는 단순한 분노를 표현한 게 아니라고 했다. 백의종군을 거쳐 온갖 질병을 앓던 상황, 선조에게 질투를 받는 상황, 원균의 잘못된 선택으로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궤멸했던 상황,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감정이 담긴 표정이라는 것이다.

"명량해전은 진짜 말이 안 되는 전투아니겠습니까. 무신(武神), 전쟁의 신이 결과적으로 탄생한 것으로 봐야 하죠. 쇠약한 한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고 무신이 되어버리는 그 순간이거든요. '슈퍼맨'이 아니라 '결과적인 영웅'의 탄생이죠.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 순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김세랑 작가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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