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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실손보험 원죄론과 결자해지

머니투데이 이학렬 금융부장 2022.08.0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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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자해지. 문제를 일으킨 원죄를 지녔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쉽지 않더라도 매듭을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풀지 않으면 악업이 쌓인다고 책임감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1999년 9월 출시된 실손의료보험은 현재 단체보험까지 포함해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손보험 덕분에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에도 부담없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일부 가입자의 의료쇼핑으로 멍들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된 적자만 10조원이 넘는다. 손해율은 130%를 넘는다. 보험료로 100원을 받으면 보험금으로 130원을 쓴다는 말이다. 이같은 추세면 수년내 망하는 보험사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한 보험사도 수두룩하다. 대다수 가입자인 2600만명 이상이 보험금을 한번도 받은 적 없이 매년 보험료 상승이라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과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실손보험 위기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특히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한 백내장 수술은 최근 도를 넘어섰다. 올해 백내장수술이 가장 많았던 지난 3월 서울의 한 안과병원에선 의사 한 명이 총 954건의 백내장 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고 부산에선 의사 2명이 총 1688건을 집도했다. 가능한 일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상품 설계에도 문제가 있다. 실손보험금 누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올 때마다 '나오지 말아야 할 상품이 나왔다'라는 '원죄론'다.

2009월 9월 표준화 실손보험이 나오기 전까지인 1세대 실손보험은 자기부담금이 없다. 과잉진료를 유도할 것이란 비판은 치열한 경쟁 속에 묻혔다. 손해보험사의 전유물이었던 실손보험을 생명보험사가 팔게 된 것도 원죄 중 하나다. 2003년 보험업법이 26년만에 개정됐는데 생보사의 실손보험 판매 허용이 담겼다.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생보사가 강력하게 요구했고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노무현 정부는 실손보험이 과잉진료를 유발하고 있다며 100% 보장에 제동을 걸었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도 같은 이유로 100% 보장이라는 설계를 손보려고 했다. 당시 정부는 자기부담률을 20%로 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10%로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보험사가 강력하게 반대해서다. 당시에도 손해율이 높았지만 보험사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외면했다.

논의가 길어지면서 영업현장에선 '앞으로 100% 보장 상품이 나오지 않는다'며 1세대 실손보험 가입을 부추겼다. 그 결과, 실손보험 중 손해율이 가장 높은 1세대 실손보험 비율은 22.1%(3월 기준)에 이른다.

2009년 자기부담률 10%의 표준화(2세대) 실손보험이 나왔음에도 과잉진료는 사라지지 않았고 2017년 4월 '착한 실손'이라는 이름으로 3세대 실손보험이 나왔다. 3세대 실손보험은 1세대와 2세대 만큼 손해율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수치료와 백내장 등 비급여 과잉진료를 해결하지 못하고 손해율이 100%를 넘었다.


결국 지난해 7월 4세대 실손보험이 나왔다. 보험료는 착한 실손보다 더 저렴하다. 무엇보다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금을 많이 받는 사람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해 실손보험 가입자간 형평성을 해소했다.

[광화문]실손보험 원죄론과 결자해지


금융당국과 보험사는 매듭을 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보험사는 올해부터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하는 가입자에게 제공하던 1년간 보험료 50% 할인 혜택을 연말까지 연장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 전환 현황을 점검하고 실적을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최근 전환 가입자가 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적극적인 결자해지 자세를 기대해본다. 그래야 실손보험이 제2의 건강보험으로 계속 남을 수 있고, 보험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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