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환경적인 배터리' 올인한 유럽의 노림수, 한국도 '발등의 불'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2.08.0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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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환경적인 배터리' 올인한 유럽의 노림수, 한국도 '발등의 불'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유럽에서 '친환경 배터리' 바람이 불고 있다.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노스볼트는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배터리를 만드는 것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EU( 유럽연합)가 2024년 배터리 공급망의 탄소발자국 신고를 의무화하면서 이 같은 흐름이 확산될 전망이다. 국내 배터리 3사도 동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노스볼트는 스웨덴 북부의 기가팩토리 생산능력을 연내 16GWh(기가와트시) 규모에서 60GWh까지 확대하고, 100% 청정에너지로 가동할 예정이다.



노스볼트는 지속 가능한 배터리 생산을 위해 '노스볼트 루프(Northvolt Loop)'라는 모델을 도입했다. 배터리 셀의 제조·운송 과정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며 사용된 배터리를 회수해 재활용하는 체계다. 지난해 말엔 배터리 폐기물에서 재활용된 니켈, 망간, 코발트를 사용해 배터리에 쓰이는 음극 소재를 첫 생산하기도 했다. 노스볼트는 장기적으로 금속을 채굴해 제련하는 과정을 없애고 전면 재활용함으로써 순환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스볼트는 노르웨이 하이드로(Hydro)와 합작사인 '하이드로볼트(Hydrovolt)'를 설립하고 올해부터 노르웨이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전기차 증가율이 빨라 수명이 다한 배터리를 공급받기 쉽고 수력발전 등 청정에너지원이 풍부하다.



하이드로볼트는 청정에너지를 사용해 연간 약 1만2000톤의 배터리 팩을 재활용 중인데 2030년까지 연간 배터리 팩의 재활용을 30만 톤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노스볼트는 2030년까지 150GWh 이상의 셀 제조 능력을 갖추고, 재활용 부품을 50% 이상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EU 배터리 공급망 규제 곧 시작된다
노스볼트가 친환경 배터리 공급망 투자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EU가 배터리 생산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전체 라이프 사이클의 친환경성 및 안전성 입증을 EU 시장 진출 조건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탄소배출량, 윤리적 원자재 수급, 재활용 원자재 사용 등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만 EU 내 유통을 허가하는 것이다.

EU는 2024년 7월부터 전기차 및 충전식 산업용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공개를 의무화하고, 2027년 7월부터 배터리 탄소발자국의 상한선을 제시할 방침이다. 2030년부턴 재활용 원자재 의무 사용 비율을 적용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배터리 제조공장 부지를 선정할 때 인건비와 지리적 조건 이상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EU는 EU의 배터리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수립하고 배터리 시장의 패러다임을 EU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친환경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면 기술력 및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아시아 배터리사와 차별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노스볼트가 있는 스웨덴은 정부 주도로 배터리 밸류체인 전 주기에 탄소중립을 적용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K-배터리, 폐배터리 재활용은 진척 있지만 RE100은 아직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친환경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EU의 규제가 시작되는 2024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은 힘들다고 보고 있다. 특히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사용하는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Li-Cycle)'에 투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수산화리튬 추출 기술 등이 포함된 BMR(Battery Metal Recycle)을 앞세워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의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0년 천안 및 울산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의 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을 재활용 전문 업체가 수거해 광물 원자재를 추출한 뒤 원부자재 제조 공정에 재투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발전원 사용 측면에선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큰 진척이 없다. 지난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에 가입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폴란드 공장, 2020년 미국 공장의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달성했다. 한국과 중국 공장도 오는 2025년까지 전환을 목표로 빠르게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SK온과 삼성SDI는 아직 RE100 가입을 검토 중이다. 삼성SDI는 삼성전자가 RE100에 가입하면 그에 맞춰 RE100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 RE100에 가입하더라도 EU의 규제가 시작되는 2024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직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에서도 RE100 문의가 오고 있고,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원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도 "배터리 생산 거점마다 다르지만, 우리나라처럼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7.5%로 해외 주요국들에 비해 재생에너지 사용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부지도 좁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도 상대적으로 높아 RE100 이행에 높은 비용부담을 져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할 수 없고 한전을 통해 우회해야 하는 것도 기업들의 RE100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REC(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구매와 한국 에너지공단의 녹색프리미엄 제도(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위해 별도로 추가 비용을 납부하는 녹색요금제) 참여를 통해 국내 공장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재생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REC를 구매하는 경우에도 이를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로 인정하고 세제 혜택도 줘야 기업들이 RE100에 나설 것"이라며 "글로벌 고객사들이 RE100을 요구하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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