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남석 전 LG화학 고문
당시 석유화학 중심이던 회사에서 최 박사님은 고 구자경 명예회장님과 뜻을 합쳐 우리나라에 생소하던 신약분야를 선두에서 이끄시며 오늘날 신약강국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연구소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가야 한다!' 라는 신념 하에 신약에 이어 90년대 들어 전자재료의 씨앗을 심어 이후 LG화학이 배터리를 포함한 세계적 소재회사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장기적 안목과 치밀한 추진력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장했던 우리 동료들은 이후 'LG 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바이오벤처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바이오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당시 멤버들은 이후 'LG생명과학 OB모임'을 만들어 최 박사님을 모시고 주기적으로 만났으며 지난 2018년에는 최 박사님의 회고록 '비행기에는 백미러가 없다' 출간 작업도 같이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립습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김용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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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출신 바이오벤처 창업가들의 멘토 최남석 박사초대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을 지낸 최남석 박사가 지난 24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 최 박사는 1935년 태어났으며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와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미국으로 유학해 브루클린 공대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4년 한국에 돌아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서 일했다.
이후 1980년 민간연구소인 럭키중앙연구소 연구소장으로 이직했다. 이후 1995년 LG화학 부사장 겸 기술연구원장까지 15년간 최장기 민간 연구소장 기록을 세웠다. 이후 LG화학 고문을 맡다가 1999년 퇴직했다.
그는 바이오업계의 멘토로 유명하다. 2000년대 초반 LG화학에서 LG생명과학이 분사되고 바이오벤처 붐이 일면서 적잖은 연구원들이 창업의 길을 걸었다. 또 2005년 이후에는 LG생명과학이 선택과 집중에 나서면서, 항암제 분야 등 선택되지 못한 분야의 연구원들이 이탈해 창업에 나섰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최 원장님이 과거에 구애받지 말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라고 강조하셨다"며 "주위 동료들이 창업한 사례가 많아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다"고 말했다. LG생명과학 출신들은 엑스LG(Ex-LG)라는 이름으로 최남석 원장을 모시고 1년에 한 두번 모임을 갖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