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풍년'의 상징이 된 날씬한 생선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2022.07.2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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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바다이야기, 어록(魚錄) 시즌2](6) 멸치

편집자주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우리 수산물.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경북 경주시 감포항에서 어민들이 멸치 그물을 털고 있다./사진=뉴스1지난해 12월 28일 오후 경북 경주시 감포항에서 어민들이 멸치 그물을 털고 있다./사진=뉴스1


"멜이 들어와야 하간 것들이 들어온다"

제주 지역 속담에는 멸치(멜)가 연안어장으로 들어오면 다양한 물고기들이 따라와 많이 잡힌다는 말이 있다. 작고 개체수가 많아 다른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는 특성 상 멸치가 많다는 말은 곧 그를 먹기 위한 큰 물고기도 많다는 얘기다. 하잘 것 없다는 이름과 생김새와는 달리 '풍어'(豊魚)의 상징인 멸치의 모습이다.

"너도 생선이냐?" 한마리에 알만 5000개 다산의 상징
멸치는 분류학적으로 청어목 멸치과에 속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은 물론 일본과 중국 태평양 서부에 걸쳐 폭넓게 분포한다. 따뜻한 바닷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물고기로 주로 0~60m(미터)수심에 살다가 밤이 되면 먹이인 동물성 플랑크톤을 따라 표층 가까이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멸치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체구와 개체수다. 멸치는 한마리가 보통 4000~5000개 알을 품고 사는데 한겨울을 제외하고 1년 대부분을 산란한다. 알에서 부화한 뒤 6개월이 되면 약 8㎝까지 자라며 평균 수명은 4년이다.

멸치는 우리나라 수산물 검사법상 건조된 멸치 기준 전장(길이)에 따라 △7.7㎝ 이상은 대멸 △4.6~7.6㎝ 중멸 △3.1~4.5㎝ 소멸 △1.6~3㎝ 자멸 △1.5㎝ 미만 세멸로 불린다. 어업현장에선 가장 작은 멸치를 '실치'로 부르고 일본어와 혼용해 △지리멸 △시루쿠 △가이리 △가이리고바 △고바 △고주바 △주바 △오바 등으로도 부른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서는 멸치에 대해 '업신여길 멸(蔑)'자를 쓰거나,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는다'는 의미로 '멸할 멸(滅)'자를 써서 '멸어'라고 썼다. 멸치 이름의 다른 유래로는 물을 뜻하는 옛말인 '미리'에 물고기를 뜻하는 '치'를 써서 '물에서 나오는 물고기'라는 설도 있다.

'볼품없다' 혹은 '죽는다'는 이름의 유래와 달리 멸치는 '풍어'의 상징이라고 한다. 바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단계인 식물성 플랑크톤과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으면서 다른 육식성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특성 때문이다. 예로부터 멸치가 많이 잡히는 해는 다른 물고기도 잘 잡힌다는 속담이 있는 것도 이 덕이다.

'정어리 쌈밥'이라고 먹었는데 멸치라고?
멸치와 정어리의 생김새 비교 /사진제공=국립수산과학원멸치와 정어리의 생김새 비교 /사진제공=국립수산과학원

멸치는 정어리와 생김새가 비슷해 '큰 멸치=정어리'라는 잘못된 상식이 알려지기도 한다. 봄에 잡히는 가장 큰 멸치를 정어리라고 속여 파는 유통업자가 있는가 하면 일부 음식점에서는 '멸치 쌈밥'을 '정어리 쌈밥'이라고 판매하기도 한다.

멸치와 정어리를 구분하기 위해선 위턱의 돌출모양과 몸의 표면에 있는 무늬 등을 확인해야 한다. 멸치는 등이 파란색에 배는 은백색을 띠고 있고, 등은 다소 둥글고 위턱은 아래턱 앞으로 돌출돼 있다. 몸 측면에는 굵은 파란색 무늬가 아가미 뒤에서 꼬리까지 이어져있다.

반면 정어리는 등쪽이 두껍고 위턱과 아래턱 길이가 거의 같다. 몸 측면에는 동공 크기의 검은 반점이 일렬로 배열돼 있어 멸치와 구분이 가능하다. 배는 멸치보다 푸른 빛이 있는 은청색을 띤다.

청멸과 반지도 멸치와 생김새가 비슷한 어종이다. 청멸은 주둥이가 멸치나 정어리에 비해 뾰족하고 위턱이 아래턱보다 현저히 돌출돼 있는 게 특징이다. 반지는 몸이 긴 타원형이며 등이 연한 흑갈색을 띤다. 몸 중앙에 검은 무늬가 있는 것도 반지의 특징이다.

한 대형마트에서 멸치를 정어리로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성용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한 대형마트에서 멸치를 정어리로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성용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
신선한 멸치회무침과 쌈밥…일본식 '시라스동'은 어때요

자산어보에 멸치를 국이나 젓갈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1800년대 초 학자 이규경이 쓴 '유서'에 "멸치를 날 것으로 먹을 수 없으나, 살아있는 채로 탕제하고 말리면 반찬이 된다"는 표현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시대부터 멸치를 식용으로 소비한 것으로 보인다. 1993년 이후에는 어업기술 발달로 멸치의 연평균 생산량이 22만1000톤으로 증가, 2011년 29만톤까지 생산량이 늘기도 했다. 최근 5년간 평균 생산량은 18만5000톤 정도로 지역별로는 경남이 생산량의 54% 정도를 차지한다.

멸치는 밑반찬 뿐만 아니라 무침부터 찌개, 쌈밥, 구이까지 다양하게 조리할 수 있는 생선이다. 4~6월 멸치의 주산지인 통영과 남해 미조, 기장 대변 등에서 잡은 생멸치의 내장을 제거하고 호박, 양파, 깻잎, 된장, 고춧가루를 넣고 소금과 후추 등으로 간을 맞추면 칼칼한 생멸치 찌개를 만들 수 있다. 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는 멸치구이와 반건조 잔멸치를 물에 데쳐 밥위에 올리는 일본식 '시라스동'도 입맛을 돋게 한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이달말까지 소비자 체감 물가 완화를 위해 '2022년 대한민국 수산대전 - 7월 여름 휴가 특별전'을 개최 중이다. 행사 품목은 △오징어 △고등어 △명태 △갈치 △조기(굴비) △마른 멸치 등 대중성 어종 6종과 우럭과 광어 등 포장회로, 반찬용 멸치를 싸게 구입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오프라인 할인행사는 27일까지, 온라인 할인행사는 31일까지이며 해수부는 1인당 1만원 한도로 20% 할인을 지원하고 참여업체 자체 할인을 더하면 소비자들은 품목별로 최대 40%까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감수 = 문성용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해양수산 연구사

지난해 4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 판매를 위한 멸치가 진열돼 있다./사진=뉴스1지난해 4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 판매를 위한 멸치가 진열돼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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