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는 어떻게 '레전드'가 되었나?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2.07.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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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에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제공=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녀시대는 S.E.S와 보아를 이을 SM엔터테인먼트의 특급 여성 프로젝트였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라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들은 괄목할 만한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그나마 소녀시대를 천상지희와 엮을 수 있는 건 한자(漢字)로 쓴 팀 이름 정도일까. 물론 그 이름은 SM을 설립한 이수만이 동방신기처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쓴 만큼 쉬 흘려보낼 건 아니었다. 이수만은 소녀시대를 통해 SM의 글로벌 시대를 꿈꾸었다.

압도적인 비주얼, 칼 같은 군무, 일사불란 가창력 3박자를 고루 갖춘 소녀시대는 한류 사이트 올케이팝(allkpop)의 지적대로 글로벌 지명도에선 트와이스나 블랙핑크 같은 후배 걸그룹들에 못 미쳤을지언정 그들이 당대 누린 인기는 실로 "파격적"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후배들의 인지도를 위한 분명한 밑거름이 된 이들 행보는 '다시 만난 세계'에서 시작해 'Holiday Night'까지 10년 동안(활동 초기 언행 차원에서 몇몇 보이밴드 팬덤과 갈등을 제외하곤)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웬만해선 고개숙인 적이 없었다. 그런 소녀시대의 멤버 수는 슈퍼주니어와 같은 9인조. 태연, 제시카, 써니, 티파니 영, 효연, 유리, 수영, 윤아, 서현은 닮은 듯 다른 저마다 상황을 거쳐 SM의 품으로 들어왔다.



리더 겸 메인보컬인 태연은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밴드에서 노래를 했고 어머니는 어린 시절 전국 동요 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것이다. 그는 2004년 열린 제8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노래짱'을 차지해 SM의 연습생이 된 뒤 소녀시대를 거쳐 2022년 7월 현재까지 솔로로서도 가장 오래(또 두드러지게) 마이크를 잡고 있는 멤버로 남아 있다. 유리 역시 태연과 비슷하게 2001년 제1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댄스짱에 올라 소녀시대에 합류했고, 초등학생 때부터 S.E.S나 핑클의 퍼포먼스를 곧잘 따라했던 윤아는 6학년이었던 2002년 SM의 공개 오디션에 응해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윤아는 음악보단 연기 쪽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제공=에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제공=에스엠엔터테인먼트


22년 전 경기도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캐스팅 담당자 눈에 띄어 SM에 들어온 제시카는 '댄싱 퀸' 효연과 마찬가지로 7년 이상 연습생 생활을 한 끝에 팀에 합류했다. 재밌는 건 언니가 데뷔하고 2년이 지나 동생 크리스탈도 에프엑스 멤버로 SM에 둥지를 튼 일이다. 캐스팅 담당자의 눈에 띈 건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해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을 서현도 매한가지였다. 서현은 서울 롯데월드에 놀러 가기 위해 탄 지하철에서 SM 직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인데, 당시만 해도 가요와 멀게 살았던 그는 오디션에서 동요 '들꽃이야기'를 부르고 춤은 발레를 선보여 이수만을 만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티파니 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제시카처럼 미국 LA에서 태어난 한국계 3세다. 그는 2004년도에 LA에서 열린 한 축제 오디션에 나가보라는 친오빠의 권유에 응해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티파니는 해당 축제에서 SM과 보아의 음악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대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그의 나이 16살 때 일이다. 이처럼 해외파 멤버들과 달리 써니는 이수만의 친조카로 유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한 기획사 스타월드에서 춤과 노래를 갈고 닦은 그는 준비했던 듀엣 데뷔가 무산되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를 소녀시대로 이끌어준 사람은 2000년대 초 데뷔한 아이돌 그룹 슈가의 아유미로, 써니는 선배가 권한 SM 공개 오디션을 본 뒤 비로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수영 역시 써니처럼 준비된 멤버였는데, 그가 12살이었던 2001년 일본 TV도쿄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사얀(Asayan)'이 기획한 한일 울트라아이돌 오디션에서 7100여 명을 제치고 뽑혀 마찬가지로 8600여 일본인 참가자를 따돌린 다카하시 마리나와 듀오 루트 영(Route0)을 결성하고 일본에서 2년간 활동한 것이다. 루트 영은 싱글 3장과 DVD 한 장을 발매하며 나름 활동을 이어갔지만 가시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렇게 아홉 멤버로 걸그룹 소녀시대는 출발한다. 배우 서현진이 몸담았던 걸그룹 밀크가 부를 뻔 했다 5년을 묵힌 '다시 만난 세계'를 들고 2007년 7월 27일 엠넷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비공식 데뷔를,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SBS 인기가요에서 공식 데뷔를 치른 이들은 마치 18년 동안 자신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이승철의 '소녀시대'를 리메이크 하면서 'Tell Me'로 후크송의 기원을 만든 원더걸스와 케이팝 걸그룹계 필연적 양강 구도를 짊어졌다. 소녀시대 덕후를 가리키는 이른바 '소덕후'도 그들의 데뷔 때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등장했다.

하지만 'Nobody'로 해외 진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JYP와 달리 이수만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교훈 삼은 '숙성' 쪽을 택했다. 소녀시대의 숙성은 안명원과 김영득(ED)이 결성한 창작 그룹 이트라이브가 만든 'Gee'에서 비롯됐다. KBS 뮤직뱅크 9주 연속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 'Gee'는 이후 소녀시대의 시그니처 노래를 넘어 케이팝 명곡으로 남아 SM과 소녀시대의 복안에 희망이 되어준다. 이후 연습생 때부터 연기자, 모델, DJ 등 전방위로 훈련 받은 멤버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적시에 출연한 예능,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소녀시대는 대중과의 사이를 눈에 띄게 좁혔고, 태연이 11살 연상인 정형돈과 출연한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기점으로 터진 삼촌팬 신드롬은 이들을 쉬 건들 수 없는 영역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소녀시대의 숙성은 제시카가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에서 박명수와 함께 부른 '냉면'이 음원 차트 1위에 3주 동안 머물면서 정점을 찍는다. 급기야 '소원을 말해봐 (Genie)' 발표 즈음엔 군인들 사이에서 "나라와 상관(上官), 그리고 소녀시대에 충성한다"는 말까지 나돌며 그간 10대 소녀들의 전유물 정도로 치부된 아이돌 그룹 문화가 성인 남성 층으로 이관되는 드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시 소녀시대는 오랜 라이벌이었던 원더걸스와 신예 투애니원 사이에서 최전성기를 누린다.


사진출처=써니인스타그램사진출처=써니인스타그램
자국의 대중을 완전히 점령한 소녀시대는 마침내 해외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숙성'이 끝난 셈이다). 2집 'Oh!'와 검은 가죽 의상으로 "블랙소시"를 선보인 'Run Devil Run'을 앞세운 이들은 특히 태국에서 진가를 발휘한 유튜브 마케팅의 혜택을 톡톡히 보기 시작했다. 태국에서의 선전은 곧 중국의 1만석 규모 공연장에서 3시간 콘서트로 이어졌고, 유튜브를 통해 소녀시대를 충분히 섭취한 일본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일본은 소녀시대를 크게 반겼다. 세 차례 쇼케이스에 2만 2000 여 관객을 동원한 소녀시대는 보아가 닦아놓은 일본 시장에서 심상치 않은 인기를 예고했다. 실제 해당 쇼케이스는 NHK 9시 뉴스에서 5분 간 메인으로 다룰 만큼 나라 차원에서 화제가 됐다. 한편에서 '미스터(Mr.)'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카라에 'Genie'로 맞선 2010년 일본의 소녀시대는 결국 골든디스크('Genie'의 10만장 판매고 돌파)까지 인정받으며 일본 팝 시장을 흔들었다. 소녀시대의 일본에서 성공은 중국과 미국의 관심을 확인케 해준 'SMTown Live 10 World Tour'를 거쳐 이수만이 그토록 꿈꾸어온 동서양 단일 시장 전략, 이른바 '버추얼 네이션'의 실현을 눈앞에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2022년 8월. 그런 소녀시대가 데뷔 15주년 기념 음반을 들고 완전체로 돌아온다고 한다. 빌보드로부터 '지난 10년간 최고의 케이팝 걸그룹'으로 선정된(소녀시대는 이 리스트에서 미쓰에이, 에이핑크, 포미닛, 에프엑스, 카라, 애프터스쿨&오렌지캬라멜, 브라운아이드걸스, 원더걸스, 투애니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2017년,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난" 이후 약 5년 만의 복귀다. 걸그룹계 전설의 귀환. 당신이 큰 기대를 하건 그러지 않건 팬들과 시장은 이미 술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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