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배 다가오자 알아서 척척"…선장없는 AI '보트' 타보니

머니투데이 인천=최민경 기자 2022.07.13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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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탑승한 아비커스 자율운항 레저보트/사진=최민경 기자기자가 탑승한 아비커스 자율운항 레저보트/사진=최민경 기자


#수십여대의 선박이 정박한 복잡한 왕산 마리나에서 아비커스(Avikus) 선박엔 선원을 포함해 8명이 탑승했지만 아무도 조종키를 쥐지 않았다. 목적지를 입력하자 아비커스 선박은 인공지능(AI)이 안내한 최적 경로를 따라 다른 선박들을 피해 바다로 나아갔다. 운항 도중 큰 배를 맞닥뜨리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원래 경로로 다시 돌아왔다. 숫자만 입력하면 속도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항구로 무사히 복귀한 선박은 정박까지 스스로 마쳤다.

12일 인천 왕산 마리나항에서 진행된 현대중공업그룹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보트 시연회에선 자율운항 레저보트에 직접 승선하고 상용화를 앞둔 자율운항 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바이킹'의 어원인 'AVVIKER'에서 이름을 따온 아비커스는 2020년 12월 현대중공업그룹 사내 벤처 1호로 출범한 선박 자율운항 전문회사다. 첨단 항해보조 및 자율운항 솔루션 분야 선도 기업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아비커스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장애물이 표시된 최적 경로를 안내했다./사진=최민경 기자아비커스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장애물이 표시된 최적 경로를 안내했다./사진=최민경 기자
이날 시연한 10인승 레저보트는 2단계 자율운항 기술이 적용됐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을 크게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수준 △2단계는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원격제어하는 수준 △3단계는 선원 없이 원격 제어하는 수준 △4단계는 선박의 운영체제가 스스로 결정·운항하는 수준이다. 1~3단계를 부분 자율운항, 4단계를 완전 자율운항으로 분류한다.



아비커스 나스 2.0 시스템아비커스 나스 2.0 시스템
2단계 자율운항은 목적지를 입력하면 경로를 만들어 시스템이 경로에 맞춰 제어할 수 있다. 최적 경로엔 수심 정보와 어민들의 그물 등 장애물까지 표시된다. 운항 중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자동으로 인식해 보트가 스스로 피하고, 마리나에선 자동으로 도킹한다. 디바이스만 있으면 조종석까지 가지 않더라도 원격 조종할 수 있고 핸들을 건드리면 즉시 수동 전환도 가능하다. AI가 선박의 상태와 항로 주변을 분석해 이를 증강현실(AR) 기반으로 항해자에게 알려주는 '나스(NAS)'와 선박 이·접안 지원 시스템인 '다스(DAS)'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아비커스 다스 2.0을 활용해 배를 접안하고 있다./사진=최민경 기자아비커스 다스 2.0을 활용해 배를 접안하고 있다./사진=최민경 기자
나스엔 인공지능이 스스로 데이터를 쌓으며 학습하는 '딥러닝' 기술이 적용됐다. 선원이 선박의 기존 센서로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시스템이 자동 탐지해 충돌을 방지, 좌초 위험을 경고한다. 다스는 선박 측·후면에 설치되는 4대의 카메라를 활용, 선박의 주위 상황을 탑뷰(Top View) 형태의 실시간 영상으로 구현해 선박의 이·접안 시나 좁은 항로에서의 충돌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또 AI 기반으로 선박 간의 거리와 선박의 속도 등의 정보도 분석·제공한다.

아비커스는 이미 지난해 6월 경상북도 포항운하에서 12인승 크루즈 선박을 사람의 개입 없이 완전 자율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 6월엔 세계 최초로 대형선박의 2단계 자율운항 대양횡단에 성공했다. 아비커스는 하반기엔 2단계 자율운항 기술 '하이나스(HiNAS) 2.0'이 적용된 대형선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계획이다. 내년엔 자율운항 레저보트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아비커스 임도형 대표(오른쪽)와 칼 요한슨 이사/사진=최민경 기자아비커스 임도형 대표(오른쪽)와 칼 요한슨 이사/사진=최민경 기자
아비커스의 수주는 순항하고 있다. 이미 상용화된 1단계 자율운항 기술 '하이나스 1.0'의 수주 실적은 209척에 이른다.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자율운항 선박은 이제 시장이 막 열리는 상황"이라며 "대형 선박 같은 경우 3단계 이상 자율운항 기술이 적용되려면 선교에 사람이 있어야한다는 해사법이 바뀌어야 상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이 바뀌고 시스템이 정착하는 시점을 2030년 이후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선박 자율운항은 딥러닝 기반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데 아비커스는 해상 비전 데이터 쌓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터 리더십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율운항은 조종·제어 기술도 중요한데 시뮬레이션, 모형 시험 핵심 인력도 세계 어떤 회사보다 많이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10월엔 북미 국제 보트쇼에 참가해 북미 레저보트 시장에 진출한다. 임 대표는 "실제 10월 미국에서도 오늘과 비슷한 시연회를 진행하고, 내년부터 북미 시장에 본격적으로 자율운항 시스템을 판매할 것"이라며 "레저보트에서도 자율운항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현대중공업 등에서 건조하는 고부가가치 대형 선박은 1년에 500척 미만이 건조되는데 레저보트는 전 세계 1000만 척 이상이 돌아다니고 신조 수도 20만 척을 훨씬 넘는다"며 "개조하는 선박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가 200만 척에 달해 시장 규모가 크고 수요가 많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어큐트마켓리포츠(Acute Market Reports)에 따르면, 자율운항선박 및 관련 기자재 시장은 연평균 12.6%씩 성장해 2028년에는 시장규모가 2357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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