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박은빈은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극본 문지원, 연출 유인식)에서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우영우를 연기한다. 극 중 우영우는 다섯 살 되도록 “엄마, 아빠” 한 번 한 적 없던 인물. 집주인 아저씨가 아빠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상해죄”라는 외침으로 처음 말문을 연다. 그런 우영우에 집주인 아주머니는 “변호사 되겠다”며 기특해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법정 드라마지만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기에,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극할 만큼의 엄청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귀여운 고래들은 등장하지만) 시청자를 유혹할 만큼의 화려한 CG도 없다. 단지 무척이나 솔직해서 때로는 상대방을 당황케도 하지만, 지극히 순수한 그리고 법을 사랑하는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도전이 따뜻하고 유쾌하게 전개되며 작은 미소를 안긴다. 잔잔하지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힐링’의 힘, 이는 타이틀롤을 맡은 박은빈이 지닌 바지런함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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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캐릭터 이야기는 이미 여럿 있었다. 다만 누군가에겐 매 순간 아픔이 될지 모를 이야기를 만들고 연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작업. 박은빈 역시 “대본을 보고 어떻게 연기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이내 현명하게 답을 찾았다. 연기에 대한 접근이 아닌 우영우의 진심을 가장 먼저 알아주는 것, 여기에 자신의 진심을 더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또 캐릭터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자신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 신중을 기했다는 그는 누군가의 연기를 참고하기보다 장애에 대한 진단 기준을 찾아 글로 공부하고, 교수 자문을 받아 ‘박은빈만의 우영우’로 체화했다. 박은빈이 깔아 놓은 단단한 기본은 첫 화 첫 등장부터, 아니 내레이션부터 그렇게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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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무렵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박은빈은 연기 경력만 무려 27년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수의 사극을 통해 쌓아 올린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구암 허준’ ‘비밀의 문’ 등에 출연, 쟁쟁한 선배들과의 호흡에도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증명했다. 그렇게 쉼 없는 연기 활동을 이어온 그이지만 다수의 시청자에게 어른 박은빈의 얼굴을 각인시킨 작품은 아무래도 ‘청춘시대’가 아닐까 싶다. 엉큼한 말들을 여과 없이 툭툭 던지는 송지원 캐릭터와 만나 그간의 이미지에서 180도 변화를 꾀한 덕이다. 이후 ‘스토브리그’ 이세영을 선택했을 땐 ‘송지원의 성장’ 정도로 본 시청자도 제법 있다. 앞선 두 작품이 제법 큰 변화였긴 하지만, 이들만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채송아가 된 박은빈의 모습은 놀라웠을지도. 다시 가장 잘하는 사극(‘연모’)을 택한 그였지만, 이마저도 여자라는 비밀을 가진 채 조선의 왕세자가 된 캐릭터라니, 또 한 번의 놀라움을 안겼다.
사진제공=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지난해 방송된 ‘연모’에서 박은빈이 연기한 이휘는 언제나 위엄 있고 기품 넘치는 왕세자. 이 작품에서 박은빈은 긴 시간 쌓아온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완벽한 발성과 톤을 구사, 저음의 탄탄하고 묵직한 음성으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성대마저 완벽하게 캐릭터화하는 그의 바지런함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유의 리듬과 쉼표가 존재하는 우영우 식 화법을 박은빈이지만 박은빈이지 않은 목소리 톤으로 소화, 다시 한번 ‘박은빈의 우영우화’에 힘을 보탠다. 그러고 보니 박은빈은 매 작품, 매 캐릭터마다 캐릭터만의 발성으로, 톤으로 완성도를 높인다. 이 역시 박은빈이 지닌 무기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구축된 캐릭터로 꾸준히 불리길 바라고, 또 누군가는 매번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그 속에는 여러 계산법이 존재할 테다. 박은빈 또한 계획에 따라 변신을 꾀하는진 알 수 없지만, 왠지 그의 작품과 캐릭터 선택에서는 ‘모종의 어떤 이유’보다 순수함이 먼저 느껴진다. 드라마를 사랑하고 캐릭터에 빠져들어 ‘나’로 만들고 싶은, 연기자로서의 순도 99.5% 정도의 순수한 마음 말이다. 쉬운 선택지를 마다하고 쉽지 않은 도전을 하는, 이마저도 매번 감탄을 자아내는 바지런한 배우라니. 작품마다 빠지고 또 빠져들지 않는 방법을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