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CB, 주식전환 대신 현금상환 급증…바이오 줄도산 우려도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박미리 기자 2022.06.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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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CB, 주식전환 대신 현금상환 급증…바이오 줄도산 우려도


"빨리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면 바이오 줄도산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발행한 전환사채(CB) 다 토해내야 해요. 지금 속이 타는 바이오가 한둘이 아닐 겁니다."(바이오 기업 대표 A씨)



"내년 초 조기 상환 기간이 되면 수백억원 규모 전환사채 모두 풋옵션(매수청구권) 행사하려고 합니다. 주가가 너무 빠져 어쩔 수 없어요."(바이오에 투자한 자산운용사 대표 B씨)

바이오 업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주가 폭락의 여파가 심상찮다.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싶어도 자본시장을 통한 조달이 어렵다.



현금을 토해내야 하는 기업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1~2년 전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조기상환 기간이 도래하면서 풋옵션을 행사하는 사채권자가 늘고 있다. 통상적으로 전환사채는 발행 뒤 1~2년이 지난 시점부터 사채권자의 풋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 카이노스메드 (3,600원 ▼5 -0.14%), 지티지웰니스 (1,425원 ▲200 +16.33%), 올리패스 (675원 ▲11 +1.66%), 코아스템 (10,590원 ▼240 -2.22%) 등 바이오 기업이 만기 전 전환사채를 취득했다. 쉽게 말해 CB투자자가 투자금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현금으로 돌려 받은 것이다.

만기 전 전환사채 취득이 무조건 악재는 아니다. 자금 여력이 넉넉한 기업이 전환사채를 조기상환 할 경우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 희석 가능한 잠재적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기업 상황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단 뜻이다.


다만 채권자가 주가 급락으로 보통주 전환 의미가 사라진 전환사채에 대해 원리금 상환을 요구한다면 의미는 다르다. 채권자가 만기까지 CB를 계속 보유해도 실익이 없다 판단하고 원금이라도 건지겠다 생각한 셈이다. 채권자가 해당 기업의 미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단 의미도 내포한다.

한 바이오 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바이오는 돈을 벌지 못하면서 임상시험 등으로 자금이 많이 필요한 업종"이라며 "더구나 지금은 대다수 바이오의 주가가 급락한 상황이라 앞서 발행한 전환사채를 조기상환 하는 경우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사채권자의 요구에 의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주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더 많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20~2021년 발행한 바이오 기업의 CB는 대부분 현재 주가가 조정 가능한 최저 전환가액 밑으로 떨어졌다. 전환사채 투자자 입장에선 주식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어서 주가를 회복하거나 채권자에게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면 언제든 조기상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국면에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서 유치한 투자금을 토해내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단 의미다.

A대표는 "내년 중순까지 어떻게든 가시적인 사업 성과를 내 주가를 끌어올려야 한다"며 "주가 급락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자자가 조기상환을 요구할까 떨고 있는 기업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발행회사가 자금력이 충분치 못한 상황이라면 채권자의 조기상환 요구가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금이 없다면 유상증자나 채권 발행으로 빚(사채)을 갚을 돈을 마련해야 한다.

실제 카이노스메드, 에스디생명공학은 채무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백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카이노스메드는 485억원을 조달해 200억원으로 채무를 상환하고 277억원을 운영자금, 8억원을 기타자금으로 쓸 계획이다. 에스디생명공학은 352억원을 조달하는데 모두 채무상환에 쓸 예정이다. 회사의 미래를 위한 시설이나 R&D(연구개발) 투자가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한 자금 조달이란 의미다. 앞서 좋은 조건으로 발행한 전환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현재 낮은 주가를 기반으로 더 나쁜 조건에 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브릿지바이오, 넥스턴바이오, 지더블유바이텍, 크리스탈지노믹스, 쎌마테라퓨틱스 등 다수 바이오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더구나 최근 주식시장을 보면 자금조달 환경이 1~2년 전보다 무척 나빠졌다. 주가가 역대 최저가까지 떨어진 바이오 기업이 적지 않다. 그래서 지금 증자를 하는 경우 발행 조건이 이전보다 나쁠 수밖에 없다. 같은 금액을 조달하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주식이 희석된다. 주주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으로 주가가 추가로 급락한 바이오도 있다.

이재문 카이노스메드 사장은 "주가가 낮아 채권자들의 조기상환 요구가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하는 차원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증자를 결정했다"며 "그동안 재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만회의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한 바이오 투자 전문가는 "주가가 너무 하락해 보통주 전환이나 만기까지 보유할 이유가 사라진 전환사채에 대해 사채권자의 조기상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엔 자금 확보가 중요한데 앞서 좋은 조건으로 발행한 전환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해야 하면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좋은 방법은 주가를 올려 보통주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바이오 주가 침체가 더 장기화되면 유동성 위기로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기업이 꽤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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