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린이 신드롬' 대해부…예쁜 옷에 혹했다? "쳐보면 알아요"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황예림 기자, 양윤우 기자 2022.06.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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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19-① 대한민국 '테린이' 리포트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김연아도 '테린이'/사진=뉴발란스김연아도 '테린이'/사진=뉴발란스


인스타그램에 '#테린이'라고 검색을 해보자. 테니스를 치는 매력적인 MZ세대 남여들의 사진이 매일같이 업데이트된다. 아재들의 스포츠였던 테니스. 이제 명실상부 가장 '힙'한 스포츠 중 하나가 됐다.



생활 스포츠로 테니스의 유행은 여타 종목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이다.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 축구의 박지성,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등 'OOO 키즈'의 후광 없이 독자적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 수요자인 MZ세대가 직접 '픽'을 해서 '힙'의 단계까지 올라간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다.

상당수의 MZ세대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퇴근시간 이후에, 30분~1시간씩 짬을 낸다. 그리고 실내 테니스장에서 라켓을 휘두른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번 찾아보라. '퇴근 후 부어라 마셔라' 대신 자기계발과 몸 관리 차원에서 '테니스'를 택한 20대, 30대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테니스일까. '찐터뷰'는 지난달 말부터 복수의 '테린이'들과 테니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그 답을 들었다. 요약하면 △나를 과시할 수 있으면서 가족과 연인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운동효율이 좋으면서 특유의 쾌감이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물이 들어왔다"는 테니스 업계
테니스 등 스포츠 마케팅 에이전시인 라이언컴퍼니의 최형진 대표는 '테린이' 열풍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테니스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그에게 관련 질문을 던져봤다.

- 테니스 업계 분위기가 어떤가.


▶"우리끼리는 반 농담으로 '물이 들어왔다'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

- 어느 정도로 체감하고 있나.

▶"갑자기 테니스 인구가 유입되면서 실내 테니스 레슨장은 코치가 부족할 정도다. 코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라켓과 같은 장비 역시 수요 증가 때문에 없어서 못 구하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실외 테니스장은 예약 자체가 어려워졌다."

- 테니스 열풍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개인 스포츠'라는 점이 각광 받으며 테니스가 주목받은 거 같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전국에서 실내 테니스장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BTS 진도 '테린이'/사진=스타뉴스BTS 진도 '테린이'/사진=스타뉴스
- 왜 '테니스'였을까.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주로하는 2030세대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테니스 옷이 예쁘지 않나. 자기과시의 성향이 강한 2030세대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 테니스 열풍을 '테린이'가 주도하는 상황인가.

▶"그렇다. 테린이들이 참가하는 테니스 대회도 굉장히 많이 생겼다. 거의 매달 대회가 열린다. 각 단체마다 '테린이 대회' 개최 움직임이 있을 정도다. '테린이' 용어 자체로 5060세대 등 어른들의 스포츠였던 테니스가 젊어졌다."

옷이 예쁜 테니스, MZ세대 눈에 띄다
최 대표의 말대로 코로나19 발발 이후 비대면 활동을 원하던 2030세대의 눈에 들어온 게 '실내 테니스장'이었다. 넓은 실내공간에서 1대1 레슨을 받으며 팬데믹 시대에 운동을 할 수 있는 곳.

경기 하남의 실내 테니스장인 위아테니스의 이승택 대표는 "코로나19가 유행한 뒤 사람들이 답답해지지 않았나. MZ세대들이 여행도 못가는 상황 속에서 운동 할 거리들을 찾다보니까 테니스를 접하게 됐다"며 "헬스장은 좀 지루할 거 같은 사람들에게 뭔가 배울 수 있고, 꾸준한 루틴처럼 운동을 할 수 있는 스포츠로 테니스가 떠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돈을 덜 쓰며 배울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레슨 초기에는 라켓을 실내 테니스장에서 빌릴 수 있다. 구매한다고 해도 10만~30만원 정도 쓰면 된다. 신발 역시 10만원 대에 사는 게 가능하다. 레슨비는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한다. 실외 테니스장을 빌리는 것도 1인당 수만원 수준. 반면 골프의 경우 골프채 세트에만 수백만원을 써야 한다. 필드에 한 번 나가면 수십만원, 많게는 백만원 단위로 돈이 든다.

확실한 대세가 된 것은 분명 SNS의 영향력이다. 몸매 라인을 살려주는 테니스 옷은 그 자체가 나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였고, 내 노력의 산물인 예쁜 몸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멋진 옷을 입고, 테니스 레슨을 받으며, 땀을 흘린 모습을 MZ세대 '테린이'들이 경쟁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쿨'하고 '힙'한 스포츠가 되기 시작했다.

'테린이' 열풍에 기여한 주요 인프라 '실내 테니스장'. 경기 하남 위아테니스의 모습./사진=최경민 기자'테린이' 열풍에 기여한 주요 인프라 '실내 테니스장'. 경기 하남 위아테니스의 모습./사진=최경민 기자
잘 모르는 사람들 보다 '내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았다. 가족과 연인끼리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경기 고양의 실내테니스장인 바른테니스의 황성민 대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못하는 운동이 많은데, 테니스는 같이 하는 게 가능하다. 1대1도 단식도 가능하고, 2:2 복식조도 가능한 게 테니스"라며 "부부나 커플들의 문의가 많다. 레슨을 받는 '테린이' 중에는 노부부 커플도 있다"고 말했다.

"라켓으로 공 맞출 때,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테린이'들이 '흥미'를 넘어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테니스를 배우면서 해당 종목 본연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스포츠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테린이'들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테니스를 친 지 이제 세 달쯤 됐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 정도 레슨을 받는다. 한번 쳐보니 너무 재밌었다. 라켓을 휘둘러 공을 맞췄을 때 '펑'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와 느낌이 굉장히 상쾌하더라. 그게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테니스는 공도 크고 라켓도 크지 않나. 막 휘둘러도 일단 공을 맞추긴 한다는 점이 크다. 배울수록 어려워질 거 같은데, 일단 시작할 때는 쉽고 재밌다는 느낌이 든다."(회사원 백수정씨, 여, 37세)

"레슨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다. 주 2회 점심시간에 레슨을 받고 있다. 활동량, 움직임이 많은 게 테니스 장점인 것 같다. 실내외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테니스화 정도만 구입하면 초기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어서 2030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회사원 정혜미씨, 여, 39세)

배우 문가영의 테니스 화보/사진=르꼬끄 스포르티브배우 문가영의 테니스 화보/사진=르꼬끄 스포르티브
"지난해 4월부터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시작했다. 주 1회 저녁에 레슨을 받고, 주 2회 정도 퇴근 후지인들과 테니스 게임을 한다. 주말에도 내내 테니스를 친다. 다른 단체 스포츠와 달리 본인 스스로 컨트롤만 잘 한다면 부상의 위험이 적어서 좋다. 혼자서 게임을 만들어 나가야 해서 한 포인트, 한 포인트 따내는 스릴과 성취감이 있다."(회사원 주용석씨, 남, 37세)

접근성이 좋고, 운동이 많이 되며, 성취감과 스트레스 해소까지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인 셈이다. 테니스 심판 자격증이 있는 이승택 대표는 "운동이 많이 되는 스포츠다. 일단 해보면 재미가 있다"라며 "한 테린이 회원은 레슨을 하루하고 나서 지인들을 다음날 다 등록시키더라. 그만큼 너무 재밌다고 하더라. 나도 신기할 정도"라고 언급했다.

'보라색 코트' 성지순례에 '테린이 대회'까지
그렇게 '테린이'는 신드롬이 됐다. 영향력은 이미 SNS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앞다퉈 테니스 패션 라인업을 강화하며 테린이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윌슨의 김인호 차장은 "최근 2~3년 동안 MZ세대 위주로 테니스 수요가 매년 20~30%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식스코리아의 장민호 부장은 "그동안 테니스 의류를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의류 쪽 상품도 검토하고 있다. 런닝 다음으로 테니스가 큰 시장이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성지순례' 장소도 생기는 중이다. MZ세대들의 수요에 '찍으면 화보가 되는' 테니스 코트들이 만들어진다. '보라색 코트'로 유명한 경기도 하남의 TS스포츠 테니스클럽은 주말 예약이 단 몇 분 안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곳의 홍음파 코치는 "주말 예약은 항상 꽉 차있다. 가격이 다른 코트 대비 조금 더 비쌈에도 테린이들이 어쨌든 한 번은 와보는 곳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테린이들의 성지순례 장소가 되고 있는 경기 하남 TS스포츠 테니스장/사진=최경민 기자테린이들의 성지순례 장소가 되고 있는 경기 하남 TS스포츠 테니스장/사진=최경민 기자
문제는 '실내'를 벗어나 '실외'에서 진짜 게임을 즐기고픈 테린이들의 수요를 받아들일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실외 코트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되어가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테니스 코트 관계자는 "최근들어 대기자가 2배 정도 늘어난 거 같다"고 귀띔했다. 주용석씨는 "테린이 인구에 비해 코트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테니스 업계에서 최근들어 '테린이 대회'를 앞다퉈 개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린이들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연다면, 야외 코트에서 진검승부를 펼쳐 보고픈 MZ세대의 욕망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다. '승부'가 걸린 것이기에 흥행 요소가 될 여지도 있다. 실제 구력 1년 미만의 사람들도 어설프게나마 '마음은 로저 페더러'의 자세로 '테린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황성민 대표는 "테린이 회원들이 시합 전날 원포인트 레슨까지 받아가며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이 기사는 일체의 광고·협찬 없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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