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쇼크 독트린'과 부자감세

머니투데이 이종우 경제평론가 2022.06.2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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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경제 평론가이종우 경제 평론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본에 외환위기는 축복이었다. 비정규직 도입, 자유로운 해고, 높은 환율과 낮은 금리 등 꿈조차 꿀 수 없던 숙원 사안들이 한꺼번에 해결됐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기업의 이익이 10배 넘게 늘어났다.

금융위기는 또 다른 형태의 축복이었다. 어지간히 쇼크에 단련됐다고 자신하던 사람조차 미국이 망할지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3년간 저금리가 이어졌고 돈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존재가 되면서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혜택은 대부분 자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자연재해나 경제적 충격으로 쇼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이용해 힘 있는 세력이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쇼크 독트린'이라 부른다.

정부가 경제운용 방향을 내놓았다. 당면한 경제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저성장 극복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경제운용 기조를 바꾸는 걸 목표로 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고 종부세 인하를 통해 부동산 보유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매출액이 1조원 넘는 기업의 가업승계 시 상속세 완화도 포함됐다. 세금부터 규제완화까지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부자감세'다.



정부가 경제운용 방향을 내놓은 이유로 국내외 경제의 복합적 위기상황 극복을 들었지만 위기극복과 감세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2~3단계를 넘어가면 연관성을 찾을 수 있지만 이런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부자감세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경제위기를 끌어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실제 그랬다면 정부의 경제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는 3가지 요인이 겹칠 때 발생한다. 위기상황이 있어야 하고 이 상황에 대해 정책당국이 안일하게 대응해야 한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 미국 정부는 주택 관련 부실대출 문제를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물가상승이 일시적인 상황에 불과하다고 얘기했다. 정책을 책임지는 곳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안일한 자세로 일관한 것인데 이런 안일함 때문에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은 위기발생 이후 대응력 부재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금리인상과 예상되는 경기침체, 자산가격 버블 등을 감안할 때 경제가 위기상황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대로 된 상황파악과 대응이 필요한데 이번에 내놓은 경제운용 방향을 보면 정부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부자감세가 목표라면 떳떳이 부자감세라고 얘기해야 한다. 감세도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좋은 내용의 정책을 만들어 사람들을 설득하면 얼마든지 정책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그런 노력 없이 부자감세를 경제위기 방안이라고 주장하면 정부가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쇼크를 이용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사안을 통과시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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