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통제안 발표에 경찰 즉각 반발…"역사적 발전에 역행"

머니투데이 강주헌 기자, 김성진 기자, 하수민 기자 2022.06.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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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시민단체도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국회 패싱' 논란 지속 전망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김창룡 경찰청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행정안전부 장관 산하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경찰 통제 방안을 담은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2022.6.21/뉴스1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김창룡 경찰청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행정안전부 장관 산하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경찰 통제 방안을 담은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2022.6.21/뉴스1


행정안전부가 경찰 통제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찰청이 즉각 반발했다. 일선 경찰들의 반대 성명이 전국적으로 번지는 가운데 시민단체에서도 비판에 나섰다. 행안부는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경찰 통제를 밀어붙일 전망이라 이를 두고 경찰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경찰청은 21일 '행안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 권고안'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권고안은 역사적 발전과정에 역행하며 민주성·중립성·책임성이라는 경찰제도의 기본정신 또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행안부 자문위의 권고안 발표 이후 전국 지휘부 회의를 진행한 뒤 이같은 입장문을 냈다.



경찰청은 "나아가 국가 조직의 기초이자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찰 운영의 근간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어느 때보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주요 치안정책에 대한 심의·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우려를 표했다. 국가경찰위는 "경찰행정제도를 32년 전의 과거로 되돌리려 한다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며 "권고안은 경찰행정을 과거와 같이 국가권력에 종속시켜 치안 사무 고유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자문위는 행안부 장관의 경찰 통제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대로 이행될 경우 행안부 장관은 경찰 인사, 예산, 감사 등에 전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권고안에는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 조직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사실상 31년 만의 경찰국 부활이다. 아울러 경찰청장, 국가수사본부장 등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인사를 위한 후보추천위원회 또는 제청자문위원회 등을 설치하도록 했다. 또 경찰의 권한 남용과 부패를 막기 위해 경찰 감사 강화는 물론 감사원 등의 외부감사도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권력에 약한 경찰 됐다"…경찰, 전국적 반발
전국 일선 경찰들은 행안부의 경찰 통제 추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경찰 직장협의회(협의회)는 이날 오후 서울시 중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회견을 열고 "국민적 합의 없는 행안부의 독단적 경찰 통제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권력에 취약한 경찰 탄생과 직결될 것"이라며 "행안부가 경찰국으로 경찰 인사와 예산, 감찰 사무에 관여하겠다는 발상은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 민주 견제 원칙을 훼손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운영되는 경찰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자치경찰제를 이원화 자치경찰로 바꾸는 등 실질적 견제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며 "경찰 권력 견제에 관한 의견은 오직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 국민 합의에 의한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경찰은 "지금 경찰청이 행안부의 외청인데도 정권의 눈치를 보고 '권력의 시녀', '정치 경찰'이라는 얘기를 듣는데 행안부 소속으로 격하되면 권력의 입김에 더 휘둘릴 건 불 보듯 뻔하다"며 "직원들 사기가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이는 치안 공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지휘부가 사퇴를 결단하는 등 행안부의 방침에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소속 또 다른 경찰은 "이미 임기가 한달 남은 김 청장이 용퇴를 각오하고 적극 경찰의 입장을 대변하고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민변·참여연대 "행안부 직접 통제 반대…민주적 통제가 개혁"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도 자문위 권고안에 대한 비판에 힘을 실었다. 행안부의 경찰 통제 권한이 강화될수록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약화하고 경찰이 정치 권력에 직접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경찰개혁네트워크(이하 개혁네트워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안부의 경찰 직접 통제는 경찰을 대통령,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직할체제로 편입시켜 권한 행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의 강화가 필요하다"며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인 국가경찰위를 통해 경찰의 인사와 예산을 통제하고 옴부즈만과 시민이 참여하는 다수의 장치로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의 권한을 분산하는 방법으로는 △사법경찰과 행정경찰의 조직 분리를 전제로 한 독립적 수사청 설치 △자치경찰제도의 지방 이양 △정보경찰의 폐지 △보안경찰의 축소 등을 제안했다.

시행령으로 경찰 통제?…'국회 패싱' 논란 이어질 듯
행안부 자문위가 내놓은 권고안을 두고 '국회 패싱'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상위법령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지 않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행안부가 경찰권을 통제하면 법 위반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행안부는 법 개정이 아닌 하위 법령인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행안부 자문위는 '각 행정기관의 장은 소속청의 중요정책 수립에 관해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한 정부조직법 제7조를 들며 이 조항이 행안부의 경찰청 지휘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조직법 제34조에는 행안부 장관의 사무가 열거돼있는데 치안, 경찰 등의 내용은 없다. 당초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내무부(현 행안부)에서 외청으로 독립할 때 내무부 장관의 사무에서 '치안'을 삭제한 정부조직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권고안 논의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비판한다. 행안부 자문위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했을뿐 국회 논의 등 국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아 민주적 절차성을 담보하지 않았다는 것.

개혁네트워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문위라는 형식만 거쳤을 뿐 밀실에서 논의된 내용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회에서 민주적 통제강화 방법에 대한 논의를 거쳐 입법을 통해 경찰에 대한 개혁방안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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