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日전통제약사의 정밀의료 혁신-엔허투

머니투데이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주) 대표이사 2022.06.2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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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이찌산쿄는 최근 항암제 분야에서 가장 칭송받는 회사가 됐다. 엔허투(Enhertu)라는 획기적인 항체약물중합체 약물을 통해서다. 다이이찌산쿄는 다이이찌제약과 산쿄가 2005년 합병해 탄생한 회사로 2021년 매출 약 1조40억엔, 연구·개발비 2600억엔, 그리고 영업이익 730억엔을 기록한 일본 제약사 순위 2~3위(부동의 1위는 다케다제약) 기업이다.



엔허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2019년 3월 아스트라제네카와 체결한 협력계약 때문이다. 당시 엔허투는 2017년 HER2라는 유전자가 고발현된 말기 유방암 환자 대상으로 한 임상결과로 '혁신신약지정'(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을 받았으며 2019년 계약 직전에는 임상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 신청을 앞뒀다. 그리고 계약 후 예상대로 2019년 12월 FDA로부터 신약허가를 받았다.

계약조건은 놀라웠다. 양사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을 양사가 공동부담해 진행키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지급하는 업프런트 금액이 13억5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추가 마일스톤이 55억5000만달러(약 6조원)였다. 전 세계 실시권을 넘긴 것이 아니고 공동개발하는 계약이었기에 업프런트 금액의 많은 부분이 '공동개발비'로 다시 지출되는 구조기는 하지만 아직도 전 세계 제약순위 24위 정도의 '글로벌 2부리그' 회사 입장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라는 우군을 맞이하면서 재무적인 부담을 함께 질 수 있는 획기적인 계약이다. (참고로 아스트라제네카는 이 계약을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35억달러를 조달했다.)



일반적으로 항체약물중합체(Antibody Drug Conjugate·ADC)는 '표적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에 매우 독성이 강한 '약물'을 연결해 '약물'이 '표적단백질'이 많이 있는 암세포에서만 작용하도록 설계된 정밀유도폭탄에 비유되는 혁신적인 개념으로 이미 최초 치료제가 2001년에 허가받은 개념이다.

엔허투는 HER2라는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로슈가 이미 허가받아 팔고 있는 항체를 활용)에 상대적으로 독성이 약한 '약물'을 결합한 형태였다. 이번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된 엔허투의 임상결과는 참석한 전문가들의 기립박수를 유도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이로써 1998년 스위스 로슈가 HER2에 대한 항체인 허셉틴의 FDA 허가를 받으면서 맞춤의학-지금은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는 개념이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혁신적인 개념이었다. 즉 유전자 형태에 따라 환자를 선택해서 치료한다는 의미-시대를 열고 '항체항암제 시대'를 열었다면 다이이치산쿄는 이번 엔허투로 본격적인 항체약물중합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항체약물중합체는 2001년 화이자가 허가받았고 가장 주목받은 ADC 전문회사인 시애틀제네틱스의 애드세트리스(Adcetris)가 2011년 허가받았는데 두 약물 모두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회사가 ADC의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기반기술들의 고도화를 위해 노력했고 뜻밖에도 성공적인 ADC의 첫 사례로 일본 전통 제약기업 다이이찌산쿄가 의미있는 첫 승자가 됐다. HER2에 대한 항체로 항암제 시장에 '항체치료제'와 '맞춤의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든 로슈는 1990년 혁신연구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벤처였던 제넨텍의 주요 지분을 인수했고 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아바스틴, 리툭시맙과 허셉틴이라는 대형 품목의 글로벌 판권을 확보하며 '항체항암제'의 최장자로 성장했다.

이제 로슈가 개척한 HER2 분야에서 일본 다이이찌산쿄가 혁신을 이루고 있다. 아직도 글로벌 진출의 첫걸음을 떼고 있는 한국 제약·바이오업계가 주목하며 연구해야 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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