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되면 나가'…홈쇼핑 신화 쓴 중소기업들 '피터팬 신드롬'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22.06.25 06:18
글자크기

[이재은의 '똑소리'] 홈쇼핑 중소기업 의무편성비율 70% 달해…중견기업으로 성장시 편성 쉽지 않아져

편집자주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 '똑소리'는 소비자의 눈과 귀, 입이 되어 유통가 구석구석을 톺아보는 코너입니다. 유통분야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똑소리 나는 소비생활, 시작해볼까요.

TV홈쇼핑 방송 화면 (기사와 직접 관계 없음)TV홈쇼핑 방송 화면 (기사와 직접 관계 없음)


'중견되면 나가'…홈쇼핑 신화 쓴 중소기업들 '피터팬 신드롬'
"홈쇼핑 중소기업 의무편성비율 덕에 중소기업들은 좋아하겠어요, 도움이 많이 될 테니까요."

얼마 전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와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글쎄요, 잘 나가는 중소기업들엔 '양날의 검'과 같은 정책일 수도 있죠"라고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만든 정책인데 말이다.

홈쇼핑 사업자들은 공공재 방송을 이용하고 있어 방송 공적 책무를 부과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중소기업 판로확대 및 유통구조 개선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0년도 TV홈쇼핑 7개사 중소기업제품 편성비율은 전체 방송시간 중 70.6%를 차지했다.



의무편성비율은 홈쇼핑사마다 다르지만,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설립된 홈앤쇼핑은 80%에 이른다. 공영쇼핑은 방송 제품의 100%가 중소기업 협력사의 제품이거나 농·수·축산물이어야 한다. GS샵과 CJ오쇼핑은 55%이고, NS홈쇼핑은 농·수산물·식품 의무편성 비율이 60%다. 재승인 심사 때 의무편성비율이 다시 정해지는데, 롯데홈쇼핑은 전신인 우리홈쇼핑 시절 65%이었다가 2018년 조건부 재승인 당시 70%로 높아졌다. 10개 T커머스 채널도 중소기업 상품 편성 비중은 70%를 웃돈다. 이를 통해 홈쇼핑 업계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홈쇼핑 방송을 보다 보면 대부분의 방송 시간에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소형 가전제품부터 화장품, 식료품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중소기업 상품을 자주, 많이 팔다 보니 홈쇼핑 채널을 통해 히트를 친 중소기업 브랜드나 상품도 매우 많다. 해피콜, 휴롬, 자이글, 파세코 등은 홈쇼핑 판매를 발판으로 급성장한 브랜드다.
파세코 '프리미엄 창문형 에어컨', 자이글(왼쪽부터)파세코 '프리미엄 창문형 에어컨', 자이글(왼쪽부터)
예컨대 1999년 설립된 주방용 조리기구 제조업체 해피콜은 붕어빵 기계에서 착안한 '양면 압력팬'이나 '직화 오븐기', '다이아몬드 프라이팬' 등 10만원 안팎의 조리기구를 앞세워 홈쇼핑에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면서 '홈쇼핑 중소기업 신화' 역사를 썼다. 2002년에는 방송 1시간 만에 1만2800개가 팔려 홈쇼핑 방송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2001년 45억원에 불과했던 해피콜 매출은 2003년 450억원을 기록하며 2년여 만에 10배 성장률을 보였다. 이후 여러 홈쇼핑 채널에서 주방용품 부문 1위를 달성하며 2010년 매출 1200억원, 2013년 1269억원, 2015년 1321억원 등으로 승승장구,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중견기업으로 컸다는 건 사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했단 것이지만 중소기업들에겐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홈쇼핑 의무 편성비율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홈쇼핑에서 대다수 매출을 끌어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그 이후 다수가 휘청거렸다. 중소기업에만 부여되는 다수의 금융 세제, 예산 등 지원은 더 이상 받지 못하는 데다가 홈쇼핑 채널 판로까지 막히니 당연한 결과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기업이 중소기업일 경우엔 의무편성비율을 높일 수 있어 열심히 해당 기업의 제품 판매방송을 편성에 넣지만,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의무편성비율 밖에서 편성하는 것이기에 대기업 상품이나 타 중소기업의 미투 상품과 경쟁을 해야한다"며 "이 때문에 중견기업의 제품은 중소기업일 때만큼 판매방송이 편성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거나 중소기업 상태에 머무르려 하는 '피터팬 신드롬'이 생긴다. 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실제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경우는 매년 100여개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 기업의 허리가 끊어져 경제 전반에 걸쳐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김홍주 산업통상자원부 중견기업정책관은 "중견기업은 중소→중견→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사다리의 핵심 연결고리"라며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사다리를 강화하기 위해 중견기업이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계는 이에 중소기업 의무편성비율에 중견기업 상품을 넣어 파는 것을 일부 인정해주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TV홈쇼핑협회 관계자는 "홈쇼핑사들은 재승인을 받기 위해 편성 비율을 지킬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 의무편성비율 중 5~10% 등 일정 수준은 중견기업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피터팬 신드롬'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