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 '이브' 속 '문제적인 그녀' 서예지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06.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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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D 영상급 실재감 선사하는 연기 화제

서예지, 사진제공=tvN서예지, 사진제공=tvN


눈앞에 펼쳐지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복수 그리고 치정. 단단히 마음을 다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한 호흡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이 감정의 파고를 어떠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배우 서예지가 돌아왔다. 깊은 심연과도 같은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때로는 빨갛게, 때로는 하얗게 등장한다. 이윽고 상대의 허리와 어깨를 감아도는 매혹적인 탱고 선율에 몸을 실었다. 2020년 8월9일 막을 내린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이후 그의 모습은 지난 6월1일 시작한 tvN 수목드라마 ‘이브’에서 다시 안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태양의 신부’ ‘잘 키운 딸 하나’ ‘미녀의 탄생’ 등을 쓴 윤영미 작가와 ‘몽정기2’ ‘미스터 주부’ ‘캐치미’ 등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박봉섭 감독의 연출로 탄생한 ‘이브’는 고품격 격정 멜로 복수극을 표방하고 있다. 과거 재벌가 욕망의 희생양이 돼 모든 걸 잃고 사라졌던 이라엘 또는 김선빈(서예지)이 복수를 위해 철저히 계획된 행보를 통해 재벌가의 회장 강윤겸(박병은)을 유혹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다분히 ‘문제작’의 면모를 보인다. 우선 그 자극의 높이였다. 드라마는 1회부터 ‘19금’을 표방했다. 내용을 열어보니 복수를 위해 접근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남편과 관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파격적인 엔딩이 화제를 만들어냈다. 파트너와의 농밀한 호흡을 바탕으로 하는 탱고의 성향답게 드라마는 초반, 유혹을 위해 뒤도 안돌아보고 내달리는 라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서예지, 사진제공=tvN서예지, 사진제공=tvN


그 과정에서 산부인과 성형이라든가 자해 등 자극적인 요소는 집대성되고 있었다. 거기에 촬영감독 출신으로 유독 빛과 색이 만들어내는 ‘콘트라스트’에 집중하는 연출자의 성향으로 클로즈업 숏과 디졸브, 슬로우 모션 등 감각적인 편집 역시 몰려들었다. 드라마는 그런 이유로 감정도, 화면도, 인물들의 표정 역시 ‘과잉’된 다소 부담스러운 에너지의 작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서예지 역시 문제적인 배우다. ‘이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예지로부터 시작하고, 서예지로 인해 작동하는 작품이다. 그가 연기하는 라엘이 윤겸의 곁으로 다가가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기회는 다시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마치 가스라이팅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전력 때문이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통해 주연으로서 크게 입지를 다진 서예지는 바로 이듬해 다양한 논란에 휩싸인다. 연인이었던 배우 김정현에게 드라마 ‘시간’에서 스킨십 연기 거부를 사주했다는 ‘가스라이팅 논란’과 학교폭력의 주인공이었다는 논란 그리고 촬영장에서의 갑질 논란이 뒤를 따랐다.

여기에 서예지는 학력 논란에도 휩싸이며 짧은 시간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그가 문제적이었다는 의미는 이러한 봇물 터지는 논란 속에서 명확한 입장을 전하지 않고 그저 몸을 숨기는데 급급했다는 데 있다. 그는 ‘이브’ 출연에 앞서 남긴 사과문에서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아 드라마를 앞둔 많은 시청자들에게 선입견을 남기고 말았다.


서예지, 사진제공=tvN서예지, 사진제공=tvN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욕망을 위해 달리는 캐릭터가 이상하게 서예지의 실제 행동과 맞물려 기묘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라엘이 윤겸에게 속삭이며 선택을 강요할 때, 마치 과거 연인에게 가스라이팅 의혹이 있었던 실제 서예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 얼굴로 두 개의 인격을 ‘연기’하고 있는 라엘에게서 수수했던 이미지와 달리 학교나 촬영장에서 구설에 올랐던 서예지의 실제 논란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마치 한 인물에 대한 4D 영상급의 실재감이자 돌비 서라운드 음향급의 깊이였던 것이다. 정작 논란 속에서 컴백한 서예지는 논란이 가득할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갖고 마치 작품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가 드라마의 제작발표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그 외의 반응을 일절 내지 않는 침묵과 결부돼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서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들은 TV 속 라엘을 보고 있는 것인지, 실제 서예지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착각은 다소 환각적인 편집으로 이러한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출자의 ‘과잉’ 편집을 통해 더욱 배가된다. 단순히 자극의 크기로만 가늠할 수 없는 이 작품의 ‘문제성’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 속 인물의 성격은 실제와는 다르다’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신화를 과감히 깨내는 원동력이 된다.

서예지. 사진제공=tvN서예지. 사진제공=tvN
이 문제적인 작품 안에는 ‘문제적인 그녀’ 서예지가 있다. 이제 막 초반을 벗어난 드라마가 과연 어디까지의 파국으로 극을 몰고 갈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우리가 서예지를 보는 시선도 역시 그러하다. 과연 서예지라는 배우가 ‘이브’라는 작품을 통과하고 그 작품을 통해 더욱 굳어질 하나의 이미지를 갖고, 과연 앞으로의 배우 행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이브’와 서예지는 작품을 보는 내내 기묘한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과연 캐릭터와 배우는 어디까지 동일시될 수 있고, 어느 시점까지 동일시될 수 있을까. 문제적 작품 ‘이브’와 문제적 배우 서예지의 결합은 2022년 6월 우리의 가장 큰 의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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