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6조 증발…"혈관 막혀 심장 멈춘다" 파업 중단 호소한 기업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2.06.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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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이하 화주협의회)는 14일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단 호소문'을 내고 화물연대 파업중단을 촉구했다/사진=김성은 기자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이하 화주협의회)는 14일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단 호소문'을 내고 화물연대 파업중단을 촉구했다/사진=김성은 기자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로 우리나라 산업 각 분야별로 공급돼야 할 주요 소재들이 적기 공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경제의 혈관이 막혀 심장이 멈춰설 지경에 이르렀다."(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를 비롯해 국내 대표 산업계 주요 관계자들이 화물연대 파업 중단을 강하게 호소했다. 정부가 전일 추산한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 1조6000억원은 빙산의 일각으로 파업 지속시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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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이하 화주협의회)는 14일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단 호소문'을 내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국의 주요 항만 및 국가의 주요 생산시설들이 1주일 넘게 마비된 상태"라며 "기간 산업들 피해도 크지만 수출 중소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는 더 심각하고 중소기업에겐 1~2건의 선적 취소도 기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철강협회,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 관계자가 모여 화물연대 파업 중단을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우선 산업계 전반에 끼치고 있는 막대한 피해는 물론 2차, 3차 업체로까지 퍼질 후폭풍이 우려됐다.

전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타이어 업종을 대상으로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피해 추산액을 1조5868억원으로 밝혔다. 자동차 5400억원, 철강 6975억원, 석유화학 5000억원 등이다.

단 이는 상당 업종이 대표 몇 기업 중심으로 조사한 수치로 기업 수와 파업 일수가 늘어남에 따라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란 전망이다.


예를 들어 전일 석유화학 업종에서 이 기간 약 5000억원의 매출액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지만 이는 8개사를 대상으로 파악한 것으로 32개사 기준으로는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철강업종도 대상 기업 수를 2곳에서 5곳으로 늘리고 피해 기간을 7~13일로 기준으로 할 경우 피해 규모는 7000억원이 아닌 1조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출하차질 물량만 이 기간 70만톤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문제는 물류가 막힘으로써 재고 적체 공간이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곳이 늘어나면 그 피해 여파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이미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매일 2만여 톤의 제품을 출하하지 못해 전일부터 선재공장과 냉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포스코에 따르면 선재공장은 제품 창고가 부족해 제철소 내 주차장, 도로에 제품을 야적중이며 1선재 공장부터 4선재 공장까지 전 공장 가동을 중단시켰다. 가전, 고급 건자재용 소재를 주로 생산하는 2냉연 공장 가동은 중단시켰다. 파업이 지속되면 열연, 후판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도 운송이 거부돼 일반 직원들이 완성차를 한 대씩 외부 적치장으로 이동시키고 협력사로부터 부품이 입고되지 못해 조업 중단이 반복되고 있다.

울산, 여수, 대산 산업단지 주요 화학기업들도 출하량이 평소의 10% 수준에 멈춰 있다. 새벽에 화물차를 급조해 화물연대 가입원들의 저지를 피해 물량을 출하하려다 가로막힌 사례도 보고됐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NCC(나프타분해설비)를 운영하는 업체는 총 8개사인데 이 가운데 한 두 곳은 이르면 15일 밤을 마지노선으로 가동을 중단하는 곳도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은 우리나라 제조 4위, 수출 2위의 대규모 업종이다. NCC는 나프타를 분해해 석유화학제품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제조하는 설비로 철강업의 용광로에 비유되는 근간 시설이다.

NCC는 고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특성상 정기 보수 시기를 제외하고 24시간 내내 가동돼야 한다. 중단시키는데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재가동시키는데는 통상 2주 가량 걸린다. 만약 예상치 못한 시점 한꺼번에 시설이 중단되면 가동에 더 많은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 NCC 한 개가 멈추면 일 평균 피해규모는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자칫 잘못 중단되면 폭발 등 사고 위험도 크다.

주요 생산 시설 가동 중단으로 그 피해가 2, 3차 협력사, 고객사로 번질 것이 명확한데다 수출 약속을 어기고 잃게 될 외국 고객까지 감안하면 그 피해 규모는 상상도 못할 "천문학적 수치"라는 게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자동차 업계는 전일까지 5700여대 생산차질이 발생중인데다 이미 완성차 업계는 가동률 조정에 돌입했다. 이번주부터는 일부 업체 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으로 생산차질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윤경선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부품업체는 줄도산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영민 한국시멘트협회 이사는 "시멘트 업계는 중요 생산설비인 킬른(소성로)을 국내 45기를 운영중인데 지난주 이미 2개가 중단됐다"며 "재고 보관 공간 부족으로 이번 주말이 되면 전체의 절반 이상이 가동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경우 건설현장도 전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등 후폭풍이 우려된다.

"줄도산도 불가피···우선 현업 복귀해 대화로 상생 협상 재개 촉구"
(광명=뉴스1) 김영운 기자 = 13일 오전 경기 광명시 광명스피돔 주차장에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인해 항구로 옮겨지지 못한 기아 수출용 신차들이 임시 주차돼 있다. 2022.6.13/뉴스1  (광명=뉴스1) 김영운 기자 = 13일 오전 경기 광명시 광명스피돔 주차장에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인해 항구로 옮겨지지 못한 기아 수출용 신차들이 임시 주차돼 있다. 2022.6.13/뉴스1
이날 화주협의회는 "어럽게 계약을 성사시켜 물품을 준비하고 선복 부족에도 간신히 선박을 예약했지만 항만까지 운송해 줄 화물차를 배차받지 못해 계약이 취소되고 중요한 고객들과의 거래가 중단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가계와 기업이 모두 고통받고 있는 것은 더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같은 어려운 시기 화물연대는 대승적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현업에 복귀해 멈춰서 있는 수출입 화물운송을 다시 살리고 대화로 상생의 협상을 재개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화주협의회는 화물연대 파업이 촉발된 '안전운임제'는 중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준봉 무역협회 물류서비스실장은 "지난 3년간 안전운임제를 운영해본 결과 여러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안전운임제로 인해 기본적으로 30~40% 가량 물류비가 급등했는데 여기에 다양한 할증 요인들이 중복 적용되면서 70~80%까지도 치솟았고 지난 팬데믹 기간 중엔 해상·항공료 운임 상승까지 더해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관섭 무역협회 부회장은 "화물차 운전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문제를 운임으로 해결하는 게 적절한 방법인지도 재검토해봐야 한다"라며 "주행 거리 당 일정 휴식 시간의 보장, 하루 주행 거리의 제한 등이 안전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지 등 제대로 논의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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