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한약제제 분업, 이젠 국민의 입장에서 해결해야

머니투데이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2022.06.1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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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지부가 공개한 한약 소비실태 조사결과 한약 사용 확대를 위한 개선사항으로 일반 국민과 의료공급자 모두 '보험급여 적용확대'를 첫손에 꼽았다. 콕 집어서 첩약과 한약제제 급여확대를 원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첩약 건강보험은 첨예한 직능갈등 속에 2020년 11월부터 제한적인 시범사업 형태로 겨우 출발했고 1984년 26개 처방으로 시작된 보험 한약제제는 1990년 56종의 처방으로 확대된 후 2022년 현재까지 32년 동안 단 한 개의 처방도 추가되지 못했다. 급여 한약제제 진료비는 연간 400억원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약국에서 주로 소비되는 비급여 한약제제를 모두 합쳐도 2017년 기준 3619억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급여의약품 총청구액 중 급여 한약제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0.2%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중국은 2014년 기준 823개 중성약(한약제제)에 보험이 적용됐고 매년 대폭 추가돼 2022년 현재 무려 1374종으로 증가했다. 중국 전체 의약품 시장규모는 2017년 기준 482조원이며 이중 중약제품은 127조7000억원으로 26.4%를 차지했다. 한의사제도가 없는 일본은 의사들이 화한약(한약제제)을 치료에 사용하는데 2017년 기준으로 148개 처방이 보험적용을 받고 있다. 일본 한약제제 시장규모는 2017년 기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직능간 갈등이 첨예하다. 중국에서 중성약은 서의사, 중의사가 다 같이 쓴다. 일본에서 화한약은 의사들이 처방한다. 중국·일본의 약사들은 한약과 양약 구별 없이 모두 조제 또는 판매한다. 한국은 천연물신약 사용권을 두고 의사와 한의사가 싸운다. 한약제제의 처방조제를 두고 한의사, 약사, 한약사가 싸운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 선을 그으니 그 선을 따라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남북이 갈라져 있으니 DMZ라는 넓은 띠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그만큼 활용성이 떨어지고 국민의 후생은 줄어든다.



정부가 2007년, 2011년 관련 TF를 구성해 한약제제 급여확대를 추진하고자 했으나 매번 의약분업에 관한 직능간 이견으로 더 진전되지 못했다. 이후 정부는 한약제제 보험급여 확대방안은 분업을 전제로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2016년 시작된 '한약제제 발전협의체'는 관련부처, 공급자단체, 시민단체, 전문가 위원들이 모여 3년여 논의 끝에 한약제제 분업 실시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으나 또다시 직능갈등으로 인해 제자리걸음이다.

지금까지 한의계는 제제 의약분업을 반대했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제제분업은 협력과 경쟁을 통해 한약의 활용성을 높이는 정책수단이다. 제제를 두고 한의사와 약사라는 두 직군의 이해관계자가 생기므로 그만큼 건강보험 진입 가능성이 커진다. 국민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진다. 정책차별이 없으면, 다시 말해 한약이나 양약이나 동일한 분업체계에서 형평성 있는 급여확대가 전제되면 한약 스스로의 경쟁력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 한약이 더 많은 국민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 소비자 후생 증가는 한의학이 국민에게 더 크게 쓰인다는 의미다. 한약이 더 발전하고 한의사가 국민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사실 한의학은 원래 속병을 고치는 학문이다. 한약은 한의학의 특성을 드러내는 가장 다이내믹한 도구다. 그런데 한약(첩약과 한약제제)은 대부분 보험에서 제외되고 침·뜸만 보험이 되다 보니 국민 대다수는 근골격계 치료를 위해서만 한의원을 찾는다. 한의학을 반도 못 쓰는 셈이다. 한의계 스스로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첫발은 제제분업으로 떼는 것이 마땅하다. 속병 잘 고치는 한의학을 온전히 쓰는 것이 국민에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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