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불리는 물가상승세는 보통 경기 호황에서 주로 나타난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이 달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어떤 이벤트로 인해 공급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충격 속에서 발생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경기 침체를 이끈 것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전쟁이 발생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곡물, 원유, 천연가스 등을 생산하는 자원 부국이다. 러시아는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12%, 유럽에서 소비되는 천연가스의 40%를 공급한다. 또 러시아는 철강 수출 1위, 밀 수출 1위, 팔라듐 1위, 니켈 3위, 알루미늄 3위, 석탄 3위를 차지한 핵심 광물 자원국가다. 우크라이나도 철강 수출 4위, 밀 수출 5위 등 자원부국이다.
현재 경제 상황을 경제학원론 교과서에서 보던 기본 그래프로 설명해보면 시중에 풀린 유동성으로 인해 총수요 자체가 오른 쪽으로 이동해 물가 상승이 발생한 와중에 공급 충격으로 총공급 곡선이 급작스럽게 왼쪽으로 더 큰 폭으로 이동하면서 물가가 일반 인플레이션보다 더 크게 치솟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물가 상승세는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자산시장 거품을 야기했던 대규모 자본이 회수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은 가장 먼저 휘청였다. 여기다 공급충격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져올 가혹한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더해지면서 증시는 연초부터 끝모를 폭락을 이어가고 있으며, 달러를 제외한 각국 통화 가치는 폭락했다. 기업들도 원자재 조달에 애를 먹기 시작했고, 물가는 더 치솟는 악순환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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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감당할 수 없이 오르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상을 통한 더 빠른 긴축(유동성 회수)에 나섰다. 이번 물가상승세가 양적완화만의 일방적인 영향이었다면 긴축 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란 공급 충격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으로 악화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금방 끝날 것이란 예측과 달리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고, 세계는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에는 미국 등이 원유 생산을 늘려 가까스로 공급 측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복합위기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 예컨대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증산을 선언하긴 했어도 하루 1100만배럴에 달하던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번 공급 충격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신냉전 체제의 도래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의 갈등의 골이 너무나도 깊기 때문이다. 유엔(UN)은 사실상 조정기능을 상실하고 유명무실해졌다. 글로벌 경기침체란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각국의 이성적인 대응과 해법 모색이 필요하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강국들은 저마다 패권만을 외치면서 자존심 싸움에서 좀처럼 물러나지 않으려 한다. 북한도 덩달아 미사일을 쏘더니 핵실험을 한단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