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km 파이어볼러...‘스포츠의 MRI’ 운동 역학을 주목하라 [韓日 투수 160km ⑥]

OSEN 제공 2022.06.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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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km 파이어볼러...‘스포츠의 MRI’ 운동 역학을 주목하라 [韓日 투수 160km ⑥]



160km 파이어볼러...‘스포츠의 MRI’ 운동 역학을 주목하라 [韓日 투수 160km ⑥]
160km 파이어볼러...‘스포츠의 MRI’ 운동 역학을 주목하라 [韓日 투수 160km ⑥]
160km 파이어볼러...‘스포츠의 MRI’ 운동 역학을 주목하라 [韓日 투수 160km ⑥]
160km 파이어볼러...‘스포츠의 MRI’ 운동 역학을 주목하라 [韓日 투수 160km ⑥]


[OSEN=이후광 기자] 모든 프로세스가 철저한 사실 확인과 분석에 의해 이뤄지는 시대.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젊은 선수들은 더 이상 지도자들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지금 이 운동을 왜 해야 하고, 기량 증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납득해야 비로소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운동마저도 이른바 ‘알고’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파이어볼러는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인 노하우와 우수한 신체 조건이 합쳐져야만 95마일(152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탄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런 투수들이 즐비한 곳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이며, 최근에는 100마일(161km)이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도 제법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작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이웃 나라인 일본 또한 파이어볼러를 대거 양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50km를 훌쩍 넘기는 투수들이 잇따라 등장해 빅리거와 비슷한 수준의 공을 던졌고, 한국과 미국 모두 높은 수준을 실감하며 무릎을 꿇었다. 동북아시아 선수도 미국 선수처럼 강속구를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다는 게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평균 체격 조건이 열세인 국가. 160km 이상을 던지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 모두 일본인이다.



▲운동 역학의 정의와 지향점


그렇다면 어떤 육성법이 한국산 160km 파이어볼러의 탄생을 앞당길 수 있을까. 최근 떠오르는 분야는 스포츠계의 MRI로 불리는 운동 역학이다. 현장 지도자의 경험과 감각만이 아닌 개개인의 운동 능력과 습관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를 파헤친 뒤 보다 효율적인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객관적이면서 과학적인 수치를 도출한다.


1987년부터 이 분야를 연구한 이기광 국민대학교 스포츠건강재활학과 교수는 “운동역학의 궁극적 목표는 경기력 향상과 부상 예방”이라며 “내가 쓰는 힘만큼 아웃풋이 나와야 하는데 그만큼 구속이 나오지 않는다면 효율이 높지 않은 것이다. 자동차로 빗대면 연료만 많이 먹고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비효율적인 동작을 역학적으로 분석하면 찾을 수 있고, 교정 및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 역학의 큰 메리트는 정보의 확장이다. 첨단 장비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영역을 분석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장에 계신 대부분 지도자는 육안으로 선수를 본다. 그런데 육안으로 못 보는 걸 고속 카메라, 3차원 카메라, 슬로우 모션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절의 위치를 수치화하고, 관절 각도와 회전력을 계산하는 것이다. 한 선수에 대한 정보를 100이라 가정했을 때 육안으로 보는 건 10에 불과하다. 운동 역학으로 정보를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운동 역학 보급, 한국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야구계에서 운동 역학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다. 수학, 물리학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분야라 어떻게 보면 평생 야구에만 전념한 현장 지도자들에게 생소한 게 당연하다. 결괏값이 곧바로 나오는 트랙맨과 달리 운동 역학은 선수가 직접 장비를 착용하고 특정 움직임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운동 역학 분석으로 나온 수치를 실제 경기력과 접목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교수 아래서 운동 역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원조 홀드왕’ 차명주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는 “지금 현장은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 느낌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사설 교육기관들이 각자의 정성평가에 의해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함정에 빠진다”라며 “운동 역학의 경우 지식이 있어야 데이터값을 해석할 수 있다. 야구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분야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은퇴 후 예능이나 해설위원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나와 같은 야구선수 출신 운동 역학 전공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의 경우도 현재 운동 역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단은 사실상 롯데뿐이다. 성민규 단장이 부임과 함께 시카고 컵스 스카우트 시절 경험한 피칭랩을 도입했는데 여기서 전문적인 운동 역학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이 교수의 제자인 김혜리 박사가 선구자로서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해 프로 선수의 메커니즘과 데이터를 연구 중이다.


이밖에 과거 SSG의 전신인 SK, KBO 유소년 캠프 등에서도 이를 도입하려 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이 교수는 “3년 전 SK 플로리다 캠프와 강화도 2군 캠프에 측정 장비를 싣고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데이터를 현장에서 적용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는커녕 서지도 못하는 단계”라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산 160km 파이어볼러, 운동 역학과 함께라면 꿈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시절부터 꾸준히 운동 역학 분석을 받으면 오타니, 사사키처럼 광속구를 던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차 이사는 “운동역학 원리만 알면 충분히 구속을 끌어올릴 수 있다. 신체 조건도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라며 “결국 중요한 건 운동량의 크기다. 여기에 회전력의 원리 등을 가르쳐주면 160km를 충분히 던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아직도 경험에 의존하는 한국 야구계의 지도 방식이다. 차 이사는 “우리나라 웨이트 트레이닝은 30년 전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미국의 경우 1913년 세이버 매트릭스 이론이 등장했고, 1938년부터 동작 분석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험에 의존하는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80년 넘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빅리그 출신의 유명 선수들이 이를 공부하면서 2000년 이후 이 분야가 급성장했다. 우리나라는 야구와 관계없는 전문가들이 이를 분석하는 보여주기식이 많다. 결국 공부하는 야구인이 나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차 이사는 현재 운동 역학 연구소인 SSL(Sports Science Lab)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선수들을 대상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운동 역학 분석을 무료로 제공한다. SSL은 차 이사가 지난 2020년 약 2억 원에 가까운 사비를 들여 설립한 연구소로, 체계적인 동작 분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차 이사는 “야구선수 출신으로서 생체 역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에게 동작 분석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라며 “다행히 수요는 많다. 최근 강릉고등학교 선수들을 비롯해 연구소에 7~80명 정도는 다녀간 것 같다. 현역 시절 야구로 받은 사랑을 환원하고, 한국 야구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개인적으로 이러한 재능 기부를 결정하게 됐다. 내 목표는 전국 고교 선수들에게 운동 역학 분석을 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야구와 운동 역학의 미래


그래도 다행히 국내 운동 역학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인터넷의 발달과 이전보다 증가한 해외 지도자 연수 덕에 운동 역학이 점차 익숙한 개념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 교수는 “아마추어 쪽의 젊은 지도자들은 필요성을 알고 있다. 미국 코치 연수가 많아지면서 지식이 많아졌다”라며 “여기에 사설 아카데미에서도 선수의 실력 향상을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높아진 관심을 공부하는 지도자 육성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시선이다. 좋은 제자 뒤에는 늘 좋은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은 스승이란 운동 역학을 비롯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후진을 양성하는 지도자를 말한다. 굳이 운동 역학이 아니더라도 선수별로 훈련을 납득시킬 수 있는 지식 정도는 쌓을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앞으로는 이유가 있는 훈련으로 가야 한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유가 없이 선배가 가르쳐 준 대로, 또 원래 이렇게 했으니까 식의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 또 요즘 선수들은 납득시켜야 하지 무조건 시키면 안 한다. 그런 과정에서 운동 역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차 이사는 “어린 선수들은 좋은 지도자가 있으면 거기에 따라가게 돼 있다”라며 “축구의 경우 FIFA 공인 지도자 시스템을 도입한 걸로 알고 있다. 반면 야구는 현역 때 인기가 좋으면 곧바로 코치를 한다. 지식이 없는 상태서 경험에 의한 지도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야구도 하루빨리 체계적인 지도자 육성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


160km 파이어볼러 육성이라는 과제와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최고 구속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빠른 구속으로 7회까지 던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무리 없는 투구 동작이 필요하다”라며 “스포츠카가 빠른 속도를 한 번 냈다가 퍼지는 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150km가 넘는 공을 100개 던져야 한다. 사사키도 최고가 아닌 평균 구속이 150km 후반대에 달한다. 그게 진짜 강속구 투수다. 우리나라도 순간 최고 구속은 그렇게 만들 수 있지만 금방 무너진다. 꾸준히 강속구를 던지는 몸과 동작이 필요하다”라고 운동 역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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