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주에 세번씩 목욕하러 오셨는데..." 송해길에 남은 흔적들

머니투데이 하수민 기자 2022.06.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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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9일 오전 서울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에 마련된 고(故) 송해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고인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 사진 = 하수민기자 한 시민이 9일 오전 서울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에 마련된 고(故) 송해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고인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 사진 = 하수민기자


"마음 같아서는 5일장이고 10일장이고 해드리고 싶어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 입구. 직장인 이만영씨(66)는 '송해(본명 송복희) 선생' 동상 앞에서 30분 넘게 자리를 지키며 고인을 추모했다. 조화에 달린 띠지가 바람에 날리면 다시 곱게 펴기도 하고 국화꽃이 바람에 날아가면 주워오는 등 고인에 대한 각별한 애틋함을 보였다.

이씨는 "유족들이 원해서 3일장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송해 선생님이 보통 명사가 아니지 않느냐"며 "정말 마음 같아서는 조화로 길을 가득 채우고 긴 현수막을 내걸고 오랜 시간 동안 가시는 길 지켜드리고 싶다. 정말 팬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송해길에 세워진 송해 동상 앞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화에는 송해길 인근 상인들이 보낸 것으로 고인이 생전에 자주 방문했던 백반집, 한식집, 카페 등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날 국화를 헌화하고 긴 시간 동안 묵념한 시민 최모씨(70)는 "고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놀랐다"며 "정말 소탈하셨고 종로에 놀러 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사진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주셨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종로 송해길 곳곳에는 고인의 흔적이 가득했다. 고인이 그려진 벽화부터 '송해 목욕탕' '송해식당' 등 송해의 이름과 얼굴을 내세운 간판들도 있었다. 건물들 사이사이에서는 고인이 과거 자주 부르던 '안동역에서' 노래가 앰프를 타고 흘러나오기도 했다.

고인이 별세하기 전날 점심을 먹은 백반집 '일미식당' 사장 고향원씨(72)도 고인을 '명예 동네 주민'이라고 표현하며 고인과 함께 나눴던 추억을 털어놨다. 고씨는 "돌아가시기 전날에 오셔서 된장찌개를 드시고 직원들과 수박을 같이 나누어 먹고 갔다"며 "와서 식사할 때마다 정말 반갑게 시민들과 인사하고 사진도 정말 잘 찍어줬다. 정말 따뜻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고인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목욕을 즐겼던 '송해 목욕탕'에서 근무하는 세신사 문모씨(67)도 '점잖고 과묵한 손님'으로 고인을 추억했다. 문 씨는 "(고인이) 지난해 1월까지는 일주일에 2~3번씩 방문해 온탕 20분 냉탕 20분에 계신 뒤에 항상 세신을 하신 뒤 나갔다"며 "조용히 오셔서 항상 얼굴 트고 지내는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도 하고 두런두런 대화도 나누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故) 송해씨는 별세하기 전날인 7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일미식당에서 식사했다. 식당 벽 한켠에는 고인과 사장 고향원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 사진 = 하수민 기자. 고(故) 송해씨는 별세하기 전날인 7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일미식당에서 식사했다. 식당 벽 한켠에는 고인과 사장 고향원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 사진 = 하수민 기자.
송해길은 '국민 MC' 송해를 위해 이름을 따 2016년 조성됐다. 황해도 재령 출신 실향민인 송해는 종로구 낙원동에 '연예인 상록회' 사무실을 두고 연극 활동을 이어왔다.

종로문화원은 낙원동 일대에 '실버세대' 문화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 노력한 송해를 기리기 위해 종로구 수표로 1.44㎞ 가운데 종로 2가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 구간을 '송해길'로 이름 붙였다.

고인이 생전에 연예인들과 함께 많이 찾았던 낙지요릿집 사장 김모씨(44)도 '송해길' 인근 자영업자들이 고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2대째 가게를 이어오고 있는 김씨는 "선생님께서 송해길을 정말 동네 주민처럼 자주 방문해 연예인들과 와서 같이 식사해주고 주변 맛집들을 널리 알려주셨다"며 "이전에 송해 선생님 얼굴과 이름을 간판에 사용했을 때도 돈을 받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승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송해길에 들러 과거를 추억할 예정이다. 고인의 운구행렬은 10일 오전 4시 30분 영결식을 마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오전 5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로 출발한다. 운구행렬이 송해길에 머무르는 동안 짧은 노제를 진행한다. 운구행렬은 송해길을 거쳐 영등포 KBS 본관에 들른다.

KBS 별관을 떠난 운구행렬은 화장장이 있는 경북 김천으로 향한다. 고인의 유해는 2018년 세상을 떠난 아내 석옥이씨가 잠든 대구 달성군 송해 공원에 안장된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일대 고(故) 송해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 옆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하수민기자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일대 고(故) 송해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 옆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하수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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