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도 시장은 못 이긴다? 하락장서 힘 못쓴 AI ETF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2.06.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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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AI(인공지능)가 운용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던 ETF(상장지수펀드)들이 하락장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시장 수익률보다 저조할 뿐만 아니라 사람(펀드매니저)이 운용하는 ETF보다 부진한 경우도 많았다.

AI ETF란 펀드매니저가 아닌 AI가 종목을 선별하고 운용하는 액티브 ETF다. 액티브 ETF는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 달성을 목표로 펀드매니저가 직접 종목을 고르고 운영하지만 인간의 편향성이나 판단의 오류 등으로 시장보다 수익률이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AI ETF다. 스스로 학습하면서 방대한 시장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시장의 탐욕이나 공포에도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투자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게 AI ETF의 아이디어다.

2017년10월 세계 첫 AI ETF인 '에이아이 파워드 에쿼티'(AI Powered Equity, 티커 AIEQ)가 출시됐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미국 기업 6000여곳의 재무제표 데이터는 물론 기사,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 비정형 데이터도 모니터링하면서 상승 가능성이 높은 종목들을 추려내는 방식이다.



상장 초기 성과는 다소 부진했지만 딥러닝이 거듭될수록 성과는 나아졌다. 2019년 수익률은 31.1%로 시장 수익률을 거의 따라 잡았고 2020년에는 25.4%가 올라 시장(18.4%) 대비 높은 성과를 거뒀다.

올 들어 본격적인 하락장에 접어들면서 AI ETF의 성과는 반대가 됐다. 올해 S&P500이 14.3% 하락하는 동안 AIEQ는 16.6% 하락으로 낙폭이 더 컸다.

다른 AI ETF도 마찬가지다. 순자산규모가 17억4000만달러(2조2000억원)에 달하는 '스파이더 켄쇼 뉴 이코노미 컴퍼지트'(SPDR Kensho New Economies Composite, 티커 KOMP)의 올해 수익률은 마이너스 23.9%로 시장 수익률에 한참 못 미친다. 이 ETF는 '켄쇼'라는 AI가 기업 성과를 측정해 인공지능, 컴퓨팅, 로보틱스 등 신기술 산업에 투자한다.


국내 핀테크 업체들이 출시한 AI ETF도 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미국 대형주 △모멘텀 △고배당 △가치주 4가지 유형의 AI ETF를 운용한다. 미국 대형주 ETF인 QRFT의 올해 수익률은 마이너스 17.3%다. 모멘텀 전략을 구사하는 AMOM는 올해 22.7% 하락해 비슷한 전략의 ETF인 MTUM(-20%)을 하회했다. 파운트의 AI ETF인 MTVR(메타버스)와 SUBS(구독경제)도 올해 각각 25.3%, 20.7% 하락했다.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액티브 ETF 보다도 수익률은 저조했다. 미국 증시의 대표적인 액티브 ETF인 '디멘셔널 유에스 코어 에쿼티 투'(Dimensional U.S. Core Equity 2, 티커 DFAC)는 올해 11.4% 하락하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다른 디멘셔널 ETF 시리즈도 마이너스 8~13%였다.

국내 상장한 AI ETF에는 'TIGER AI코리아그로스액티브 (12,595원 ▼5 -0.04%)'와 'WOORI AI ESG액티브'가 있다. 코스피를 비교지수로 하는 TIGER AI코리아그로스액티브는 올해 성과가 코스피보다 약간 나은 마이너스 9.5%다. 하지만 마이너스 7%대를 기록한 다른 액티브 ETF 대비 성과가 좋은 편은 아니다.

시장 수익률 초과를 목표로 만들어 졌지만 AI ETF도 다른 액티브 ETF 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률 편차가 발생한다. 다른 점은 AI의 알고리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영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ETF는 왜 그런 투자결정을 내렸는지 복기가 가능하지만 AI의 결정은 인간이 알기 어렵다. 단지 역추적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AI ETF의 이런 특징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AMOM의 경우 지난해 테슬라 주가 저점기에 매수하고 고점에 매도해 '테슬라 주가판독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AI의 매수·매도 결정이 납득하기 어렵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 될 수 있다.

오기석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홍콩법인장은 "AI ETF의 장점은 지속적인 학습으로 모델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AI가 에너지 업종과 방어주 비중을 늘리면서 수익률을 방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성과는 다소 부진해도 상장 이후 누적 수익률은 대체로 AI ETF가 더 나은 편이다. QRTF는 2019년5월 상장이후 현재까지 55.6% 올라 S&P500 보다 11.7%포인트 높았다. KOMP는 2018년10월 이후 현재까지 누적 53.7%로 S&P500과 비슷하지만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시장 대비 2~3배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었다.

투자판단에서 인간의 직관과 AI의 분석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짓긴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 기술이 인관의 직관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더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 법인장은 "수없이 쏟아지는 시장 데이터 속에서 노이즈를 걸러내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AI가 인간보다 더 나은 측면이 있다"며 "그동안 AI ETF가 꾸준히 초과수익을 내 온 것처럼 시장이 반등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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