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등 유럽의 명문팀에서 활약하며 축구팬들을 잠못들게 했다. 6년 이상을 유럽에서 뛴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FC를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2013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성공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은퇴한 후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는 40대의 이영표 대표는 치열하게 유럽에서 도전했던 20대의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을까. 지난달 27일 서울 압구정의 카페에서 '찐터뷰'와 만난 이 대표는 이런 질문을 받은 후 의외의 답을 다음처럼 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때는 정말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했던 거 같아요. 물론 그것도 좋긴 했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삶을 좀 더 폭넓게 보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하고 싶어요. 뭘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면서 축구를 했나, 이런 생각이에요."
'그렇게 축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질문을 했더니 이 대표로부터 "런던에서 뮤지컬 한 편 볼 수 있는 여유도 없이 축구를 했던 날을 되돌아 보니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축구를 할 걸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20년 전 2002년 월드컵 출전을 앞둔 '이영표 선수'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 당시에 기사를 보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그냥 그 다음 경기만 봤다"며 "솔직히 16강에 올라갈 때까지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난리났는 줄도 몰랐다"고 회고했다. "경기만 신경썼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프랑스에게 지고 약간 절망감 같은 걸 느꼈어요. 프랑스 선수들의 템포, 리듬, 균형, 속도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거였죠. 너무 혼란스럽더라고요. 아주 무기력감과 절망감을 느꼈죠."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자양분이 돼 '4강 신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이 대표는 "상대가 나보다 어느 정도 강하다라는 것을 알아야 두렵지 않다"고 밝혔다.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경험을 누적하고, 체력·정신력 훈련을 거친 결과, 축구 강국들이 우리보다 어느 정도 강한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두려울 게 없었다고 한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진 이후 1년 만에 프랑스와 다시 붙었어요. 2-3으로 지긴 했지만 대등했죠. 그들의 터치, 리듬이 다 눈에 들어오고 읽히기 시작했어요. 우리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죠. 그게 결정타였어요.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서 월드컵 첫 경기인 폴란드 전을 시작하는데, 선수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의 100%를 발휘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4000만명 붉은 악마와 함께 월드컵 4강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영표 대표는 "우리는 충분히 4강에 갈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고 힘을 줬다.
그러면서 4강 독일 전에서 이천수가 올리버 칸을 상대로 때린 결정적인 슛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진짜 독일 전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갔다면"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결승전은 진짜 감당하지 못했을 거야"라는 농담이 그의 입에서 곧바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