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으로 이직한 日샤프 기술자…"하늘과 땅 차이"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22.06.0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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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1단지/사진=이정혁 기자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1단지/사진=이정혁 기자


삼성이 일본 전자업체 샤프 등을 제치고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을 평정한 요인으로 △엄격한 보안관리 △원가 경쟁력 △기술 유출 방지책 △경쟁사 동향 파악 △특유의 성과주의와 높은 수준의 복지 등이 꼽혔다.

2일(현지시간) 일본 유력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샤프를 퇴사하고 삼성전자 LCD 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한 엔지니어 타케우치 카오루의 기고문을 실었다. 그는 "내가 이직한 것은 샤프가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데 비해 삼성은 실적이 좋아 기술자로서 두 회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글을 시작했다.



타케우치는 "삼성이 왜 강한지 직접 들어가서 봐야 알 것 같다는 생각에 회사를 옮겼다"며 "삼성은 기술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높았고 중요하게 여겼다. 기술자에 대한 처우도 일본 기업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회상했다.

"엄격한 보안관리"…경쟁사 동향 철저히 체크
타케우치는 우선 삼성의 '엄격한 보안관리'를 특징으로 꼽았다. 삼성전자에서 수석 엔지니어, 즉 일본식으로 부장급 대우로 일했던 타케우치로서는 PC를 사외로 반출할 수 없다는 규정이 놀라웠다.



종이 한 장에도 금속 파편이 들어 있어 복사기가 해당 금속을 감지하지 못하면 복사조차 할 수 없었다. 서류를 회사 밖으로 들고 나가려고 시도하면 센서가 금속을 감지해 경보기가 울리도록 돼 있었다. 그는 "책상에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귀가하는 샤프와는 크게 달랐다"고 했다. 또한 직원들의 스마트폰에는 전용 앱을 설치해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도록 했고, 서류를 방치하는 경우 경고를 받았다.

타케우치는 경쟁사들의 동향을 잘 살피고 있는 것도 삼성의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샤프가 근거도 없이 "세계 제일"이라고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삼성은 경쟁사들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제가 삼성에 재직할 당시) 최대 경쟁 업체는 물론 LG였고, 대만 이노락스나 AUO 등이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지만 일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고 전했다.

원가 경쟁력…샤프의 60~80% 비용으로 패널 생산
 일본 샤프의 한 직원이 2015년 11월 19일 도치기현 공장의 섭씨 40도로 설정된 룸에서 AQUOS 4K TV 제품에 대한 검수작업을 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일본 샤프의 한 직원이 2015년 11월 19일 도치기현 공장의 섭씨 40도로 설정된 룸에서 AQUOS 4K TV 제품에 대한 검수작업을 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샤프는 원래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표시장치)를 가장 먼저 개발한 곳이다. 하지만 삼성에 2000년대 이후 시장 선도 위치를 내줬다.


그는 샤프의 액정 디스플레이(패널)가 삼성 제품에 밀리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원가를 꼽았다. 편광판, 회로 재료 등의 조달비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재료비 등 변동비가 10달러가량 샤프가 더 높았다. 여기에 인건비, 설비 등의 고정비용은 샤프가 무려 2배 가까이 높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샤프의 60~80% 원가로 패널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타케우치는 당시 샤프의 한 간부가 자사 액정 패널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언급한 것을 떠올리며 "이는 완전한 망상이었으며, 샤프 패널은 생산 비용이 높아서 수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타케우치는 또 삼성은 연구개발(R&D)에만 2000명 가까이 투입했으며 연구개발을 현장, 선행개발, 연구소 등으로 나눠 향후 1~2년 후를 내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LCD 다음을 대비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개발에 경쟁사보다 먼저 착수하거나, 각 부문의 요소 기술을 묶어 하나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성하는 부문간 융합과 이를 위한 아이디어 모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샤프로부터 기술 빼갔다? 기술 유출 1990년대부터 시작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타케우치는 "일본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기술 유출을 했다는 말이 있지만, LCD 기술의 유출은 1990년대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삼성과 샤프는 가메야마 공장이 생기기 전부터 기술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샤프 재직 시절) 한국에 출장을 갔더니 샤프의 상사가 한국에서 여러가지를 가르치고 있었고, 일본 유수 기업 출신 기술자들도 삼성에서 볼 수 있었다"면서 "샤프는 시장에 투입하는 패널의 크기를 잘 읽지 못해 재고를 떠안고 손실을 내고 있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이나 대만, 중국에 가서 기술 라이선스 협약을 맺어 손실을 메우고 있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과 중국이 급속히 따라잡은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성장할 발판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마련된 상황이었고 샤프 사카이 공장이 준공될 당시에는 한국의 기술 수준이 코앞 정도까지 다가왔던 셈이라고 봤다.

실제 삼성과 샤프는 2007년부터 LCD 관련 특허로 수차례 소송 분쟁을 벌였고 2010년 2월 양사는 LCD 패널 및 모듈 관련 '크로스라이선스(상호특허허용)' 계약을 체결하면서 분쟁을 마무리지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2년 4월 삼성전자 LCD 사업부가 분사해 설립됐다. 같은 해 7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S-LCD(삼성전자·소니의 조인트벤처)를 흡수합병했다. 샤프는 2016년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이 인수했다.



성과주의, 높은 수준 복지가 삼성의 경쟁력으로 이어져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이외에도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성과 위주의 기업 문화와 높은 수준의 임직원 복지가 삼성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타케우치는 평가했다.

타케우치는 "절대적 성과주의로 임원이 되면 대우 자체가 달라진다. 차량 지원에 연봉 3000만~4000만엔(약 2억8900만~3억8500만원), 최상위 클래스의 경우 10억원대 연봉을 받는다.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상응하는 인센티브도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일한다. 다만 성과가 없으면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듣는다"고 설명했다.

타케우치는 "임원은 퇴직 후 2년간 소득을 보장해주는데 이는 타사로 이직해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면서 "회사 사정으로 정리 해고돼 타사로 옮기고 기술이 유출되는 일본 업체와는 달리 (기술 유출 방지) 대책이 있다"고도 봤다. 이어 "삼성은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고 기술의 중요성을 안다. 기술자에 대한 처우 등이 일본 기업과는 천양지차(하늘과 땅 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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